“시류,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응?” “……내가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걸까.” 사라는 시류의 팔을 꼭 붙잡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거친 돌로 이루어진 들판, 저 멀리서 보이는 완만한 모양의 돌산, 그곳까지 이어진 좁은 길, 세계 종말이라도 온 것처럼 황폐한 하늘, 생기를 잃고 걸어가는 사람들. 말로만 듣던 황천비량 언덕, 즉 명계다. 시류에게 바싹 몸을 붙이자 옆에서 쓴웃음 짓는 기척이 났다. 자신보다 훨씬 커다란 손이 상냥하게 등을 두드린다. 행동은 부드러웠지만 내뱉어진 말은 냉정했다. “그거야 사오리 아가씨가 명령했으니까.” “……이래서 신이란 족속들은!” 잔혹한 현실에 사라는 절규했다. 아직 수명이 한참이나 남은─정확히는 그렇게 믿고 싶은─ 사라가 시류와 함께 명계에 오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지금, 뭐라고?” “그러니까 우리 전부 형제라고.” 오랜만에 놀러 온 세이야들과 얘기하던 도중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사라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멍하니 벌렸다. 형제? 하고 다시 시선만으로 묻자 세이야가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그러니까 그걸 그렇게 태연하게 얘기하지 말란 말이다. 어지간히도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시류가 자신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몰랐습니까?” “응…….” 정말 몰랐다. 아무 것도 몰랐다. 전혀 들은 기억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 텐데 왜 말해주지 않았던 걸까. 알려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그냥 까먹은 걸까. 거기까지 생각하고 사라는 분명히 후자라고 확신했다. 사라는 다시 소년의 말을 곱씹으며 세이야부터 시작해서 슌, 효가, 시류의 ..
“세이야는 호박이구나.” 느닷없이 떨어진 폭탄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얼어붙었다. 하지만 여전히 공기를 읽는 능력이라곤 쥐뿔만큼도 없던 사라는 계속 입을 열었다. “어두운 데서 보면 가넷 같은데. 신기하지.” 이건 또 이것대로 말이 이상하다. 앞뒤 문맥이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호박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가넷은 왜 나오는 걸까. 하고 모두가 궁금해 하는 와중 유일하게 진상을 알아챈 사람은 스승 덕분에 비유와 선문답에 익숙한 시류였다. “……호박이라는 건 혹시 보석 호박(琥珀, Amber)을 말하는 겁니까?” “그럼 그거 말고 호박이 또 있어?” 물론 있습니다만. 채소 중에서 크고 노랗고 울퉁불퉁하고 잭 오 랜턴을 만드는 데 쓰이는 아주 유명한 호박이. 라고 시류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말은 안 해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