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물어감에 따라 점점이 별이 떠오른다. 낮에 소나기가 내린 탓에 공기 중엔 축축한 풀과 젖은 흙내음. 조금 쓸쓸해지는 초가을의 향기에 괜히 울적한 기분이 든다. 때마침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모처럼이니 포도주 한잔 하시지 않겠어요? 지나칠 정도로 담백한 유혹에 파에투사는 잠시 틈을 두다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이란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좋은 기분전환이 되리란 건 알았다. 그대로 정원으로 걸음을 옮긴다. 딱히 거절을 예상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혼자라도 상관없었던 건지 테이블엔 이미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아 주인이 따라주는 술을 받는다. 술잔 위에서 좀처럼 없는 모양의 양각이 둔하게 빛난다. 부드럽고 깊은 주향이 코끝에 닿고, 이끌려 한 모금 마시면 매끄럽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깨닫지 못한 사이 호라이께서 자리를 옮겼네요. 벌써 수확을 시작할 계절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연히 포도밭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열매가 아주 잘 영근 게 모든 결실을 주관하는 여신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주실 듯하였습니다. 햇살 아래서 반짝이는 알갱이가 보석 같더군요. 그 아름다움을 보고 있자니 ―제게 감히 이런 부름이 허용된다면―오랜 친우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당신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요? 물론 현명하고 강한 당신들이라면 문제없이 지내고 있음을 압니다. 제가 걱정할 계제가 되지 않음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염려하는 것 정도는 제게 허락되리라 믿고 싶습니다. 당신들을 사랑하는 이로서. 쓸데없는 말이 길어졌군요. 오늘은 문제의 포도밭 주인 댁에서 묵을 예정입니다. 멍하니 포도를 바라보고 있다 보니 ..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는가요? 저는 지금 바다 위에 있습니다. 수면이 평소보다 반짝거리는 게 아주 예뻐요.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하늘도 푸릅니다. 날씨가 한동안 좋을 것 같아 안심입니다. 바다의 날씨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지만 20년 이상 배를 탄 선원도 그러리라 보장했으니 틀림없겠죠. 깊은 곳까지 나왔기 때문인지 바다의 색이 훨씬 까맣군요. 구름도 땅 위에서 보던 것과 모양을 달리합니다. 공기 중에는 항상 소금기가 떠돌고, 바람마저 모습을 바꾼 듯한 기분입니다. 신기한 일이지요. 지난 7여년 간 매일 봐왔던 바다인데, 배를 탔다는 것만으로 시야가 너무 달라졌습니다. 여기서라면 밤하늘도 분명 다르게 보이겠죠. 사실 편지란 것을 처음 써보는지라 시작하기 전부터 걱정이 한가득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