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y and Phantom 가까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머리 위로 요정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텐마! 노을의 아이야!」 귓가에서 꽥꽥 소리가 울린다. 외친 건 녹갈색의 깃털을 가진 새의 모습을 한 요정이다. 이름은 모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없다. 요정은 원래 오롯하고 대체할 수 없는 존재나 패밀리어가 아닌 한 전체의 명칭─이라곤 해도 거의 인간이 붙인 것이지만─으로 불릴 뿐, 개개가 이름을 가지진 않는다. 이 요정의 경우는 실프나 아리엘일까. 텐마는 속으로 몰래 어치Jay라고 부르고 있다. 이유는 물론 시끄러워서다. 「텐마! 텐마!」 “……또 뭔데.” 절로 퉁명스러운 말투가 튀어나왔다. 냉담하다고 느껴질 만한 태도지만 텐마는 딱히 반성하지 않았다. 이 녀석은 자신에게 들러붙..
Sisyphus 시지포스의 어린 시절에 관한 기억의 대부분은 어머니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버지에 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시지포스가 제대로 자아도 확립하지 않은 어린 나이에 병으로 돌아가셨기에 추억을 만들 틈이 없었다. 다만 커다란 손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던 기억만은 어렴풋이 있으므로 자신이 사랑받았다는 건 알았다. 이따금 그리움도 일었다. 하지만 그건 말하자면 고작 그 정도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립기는 하지만 단지 그것뿐인, 열망도 궁금증도 다른 무엇도 없는 그런 것. 아버지에 대해 새삼 관심을 가진 것은 시지포스가 일고여덟 살이 됐을 때의 일이었다. 시지포스는 그날 처음으로 이복형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형─일리아스는 시지포스보다 열 살은 더 많아 보였고, 무뚝뚝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
Boy and Brownie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제대로 된 사고가 이어지지 않는다. 덕분에 걸음이 비틀비틀하다. 솔직히 말해 눈에 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거실 한쪽에 놓여있던 커다란 소파 하나만은 제외하곤. 더는 견디지 못할 것 같아 텐마는 앞뒤 가리지 않고 소파 위로 다이빙했다. 푹신한 쿠션에 몸이 가라앉는다. 동시에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텐마는 그제야 주변에 누군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시지포스다. “텐마. 괜찮아?” 이 목소리는 레굴루스. 힘겹게 고개를 돌리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쳐다보는 소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돌려 말할 기력도 없어 텐마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토할 것 같아.” “나도 그 기분 알아!” 즉각 반응이 돌아온다. 텐마는 좀 더 똑바로 레굴루스를 바라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