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의 일이다. 세이야는 진학문제로 담임선생님에게 불려 간 텐마와 잇키, 아론을 기다리며 다른 소꿉친구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얘기라고 해도 어차피 시간 때우기므로 대부분이 실없는 잡담이다. 실제로 세이야는 중간부터 제대로 얘기도 듣지 않고 적당히 대꾸만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슌의 말을 대충 흘려 넘기며 세이야는 교실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수업을 마친지 벌써 50분. 시간이 꽤 흘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먼저 집에 갈걸. 하지만 늦을 수도 있으니 먼저 가란 텐마의 말을 듣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말한 건 자신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무심코 한숨을 내쉬자 사샤와 슌의 목소리가 멈췄다. “왜 그래, 세이야?” 지나치게 걱정이 가득한 사샤의 목소리에 세이야는 어설프게 웃었다. “아니. 텐..
아직 겨울이긴 하지만 며칠 새 날이 많이 따듯해졌다. 이제는 추위에 몸을 벌벌 떠는 일도, 숨을 내뱉으면 하얗게 입김이 서리는 일도 없다. 단순한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하늘도 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색을 띠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하늘을 올려다보며 텐마는 멍하니 생각했다. 배고프다. 모처럼 밖에 나왔다가 귀가하고 있는 현재 시각은 오후 4시경. 성장기 청소년에겐 한창 배고플 시간이다. 자동적으로 간식 생각이 난다. 형제는 다 비슷한 법인지 때마침 옆에서 걷고 있던 세이야도 말을 걸어왔다. “텐마.” “응?” “배 안 고파?” “배고파.” 시선이 마주친다. 결심하면 행동으로 옮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로 일심동체임을 확인한 형제는 곧바로 저 앞에 있는 편의점을 습격했다. “안녕히 가세요.” 아..
자리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던 텐마는 무심코 조그맣게 하품을 했다. 반사적으로 눈물이 새어 나온다. 방금 전 수업의 여파인지 너무 졸렸다. 텐마는 애써 정신을 다잡으며 손가락으로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한번 밀려온 수면의 파도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아. 결국 텐마는 그런 생각을 하며 수마에 저항하던 것을 멈췄다. 어쩐지 옆에서 휴프노스가 상냥하게 속삭이고 있는 기분이 들지만 아무래도 좋다. 자연에 순응하여 책상 위로 엎드리면 머리카락에 따뜻한 봄 햇살이 흩어진다. 몸이 노곤했지만 이 노곤함이 오히려 기분 좋았다. 만약 5초만 더 있었다면 텐마는 그대로 잠속으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은 그리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텐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