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맣게 입술을 열자 새하얀 입김이 시야를 가렸다. 이젠 겨울이구나. 무심코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세이야는 새삼스레 감회를 느꼈다. 벌써 겨울을 맞았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들뜨는 자신이 있다. 자각하자 밀려드는 쑥스러움에 세이야는 괜히 발끝에 힘을 줬다. 바닥에 쌓인 눈이 뽀드득 소리를 내며 깨진다. 어젯밤, 조금 이른 첫눈이 쌓인 거리는 하얗게 벗겨진 것처럼 보였다. 정말 믿기지 않으면서도 들뜨는 기분이다. 세이야는 눈동자만 움직여 자신보다 조금 앞에서 걷고 있는 사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걸을 때마다 그의 등 위로 푸른색 머리카락이 흔들거린다. 그 선명한 색채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어 세이야는 그냥 웃어버렸다. 설마 이 겨울에 사가와 같이 일본의 거리를 걷게 될 줄은 전혀 몰..
쉬는 시간이 되자 곧바로 학생들이 교실 밖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과 전혀 다른 복작거림은 어딘지 모르게 도심의 거리 한복판을 연상하게 한다. 실제로 밀도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들 할 일도 없는 데 어째서 복도로 나오는 걸까 잠깐 궁금해졌다. 하긴 자신도 별 이유 없이 밖으로 나도는 일이 많으니 그냥 일상일지도 모른다. 지나가던 사람과 어깨를 부딪쳐 세이야는 미안, 하고 반사적으로 내뱉었다. 익숙한 일인지 상대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짧은 고갯짓을 끝으로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그 뒷모습을 확인하고 세이야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제아무리 세인트라고 해도 이렇게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에선 제대로 된 운신은 어렵다. 아무래도 빨리 볼일을 끝내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세이야는 걷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