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이 듬뿍('ㅅ' 성전 후, 세이야들이 살게 된 키도 저택은 내부를 다 알기 힘들 정도로 커다랬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저택’이라고 불릴만한 규모인 것이다. 멀리서가 아니면 저택 전체를 한눈에 담기도 어렵고, 그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저택 내부에 있는 방만 해도 수십 개, 규모에 맞게 수많은 고용인이 있다고 해도 실제론 사용되지 않는 공간이 태반이다. 다들 우스갯소리로 떠들곤 했지만 저택 내부에서 미아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꼭 농담인 것만은 아니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세이야들의 행동반경은 고정되어 있었다. 기껏해야 각자의 방과 응접실, 현관 홀, 주방 정도일까. 그 외의 공간으로 발을 옮기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십 대 소년들에게 아무것도 없이 텅 빈 다른 방에까지 신경을 쓸 이..
손바닥 안에서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흩어진다. 그를 보고 므우는 조그맣게 미간을 찌푸렸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확실히 자신이 쥐고 있는 머리카락은 아름다웠다. 곱게 수놓아진 비단 끈으로 묶어 홍옥, 마노, 산호, 진주 등 갖가지 귀한 보석을 얹으면 퍽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어쩐지 그 모습이 쉽게 상상이 됐다. 한번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으나 안타깝게도 제게 그런 귀중품이 있을 리가 없다. 결국 므우는 상상은 상상으로만 끝내고 가죽끈으로 땋은 머리카락의 끝을 묶었다. 느슨하게 땋아진 머리카락이 남자의 등 뒤로 쏟아진다. 머리카락의 끝이 금색 잔상을 남기며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 감촉을 남자가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다. 허나 그럼에도 샤카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 끝났습니다.” 약간의 오기를 담..
“일어나, 세이야.” 흔들흔들 몸이 흔들리고 귓가에 이름이 불려, 의식이 천천히 부상한다. 아직 흐린 시야에 제일 먼저 뛰어든 것은 선명한 녹색. 어슴푸레한 그림자가 천천히 아름다운 용모를 가진 소년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걸 확인하며 세이야는 몸을 일으켰다. “…슌. ……좋은 아침.” 동갑내기 형제를 알아보고 세이야는 하품을 섞어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다. 방금 깨어났기 때문인지 아직 머리가 멍하다. 잠기운을 쫓기 위해 가볍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자니 그를 보고 슌이 쓴웃음 짓는다. “좋은 아침이 아니잖아. 벌써 점심시간이야.” “에……?” 슌의 말에 세이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언제나의, 키도 저택에 있는 자신의 방이 아니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장소, 교실이다. 의외의 풍경에 세이야는 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