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카테고리에 들어가긴 애매하지만...... 12궁을 내려가던 도중, 제일 첫 번째 궁에서 아이올로스와 맞닥뜨린 사가는 걸음을 멈췄다. 순간적으로 입술이 딱 붙었다. 설마 아이오로스를 인마궁이 아니라 백양궁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기에 집무에 지친 뇌가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런 사가를 대신해 먼저 인사를 건넨 건 아이올로스 쪽이었다. “아, 사가─” 친우에게 흔히 그러듯 아이올로스가 손을 들어 인사한다. 사가도 그제야 그래, 하고 애매한 대답을 되돌렸다. 스스로도 한심한 행태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다. 삼일을 철야로 일하게 되면 누구라도 이렇게 되는 법이다. 어디를. 그렇게 묻던 아이오로스의 말이 중간에 끊어진다. 옅게 미소 짓고 있던 아이올로스의 표정은 법의가 아니라 심플한 셔츠와 바지만 ..
여체화 주의 각성은 언제나 안온한 기분으로 이루어졌다. 부드러운 시트의 감촉과 얼굴 위로 어리는 기분 좋은 햇살. 무엇보다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 그 모든 것을 느끼며 세이야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 역시. 시야에 푸른색이 한가득 번졌다. 사가. 입술이 자연스럽게 그 이름을 부른다. 깨어나면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세이야의 가슴을 간질였다. 행복함에 저절로 입술에서 미소가 샌다. 세이야는 참지 못하고 실실 웃음을 흘리며 사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서로 섞여드는 체온이 사랑스럽다. 살짝 시선을 올리자 사가가 지극히 편안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게 보였다. 항상 경직된 표정을 짓고 있는 평소완 달리, 잠들어 있을 때만큼은 사가도 어떠한 근심도 없이 무방비한 어린아이 같다. 이 남자의..
“사가는 뭔가 바라는 거 없어?” 갑작스러운 소년의 물음에 허를 찔린 사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현재 사가가 있는 곳은 교황궁의 집무실이다. 본래 사가 혼자서 서류를 처리하는 일이 많은 장소지만 최근에는 세이야가 곧잘 방문하곤 해, 이곳에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이 늘었다. 물론 세이야가 방문했다고 해도 일에 바쁜 사가로서는 소년을 제대로 신경 써줄 수 없었다. 대개는 세이야가 잡무를 도우며 수다를 떨면 사가가 거기에 짤막하게 대꾸를 해줄 뿐이다. 때때로는 직무 때문에 사가가 제대로 신경을 써주지 못해, 세이야가 혼자 떠들다 가는 일도 있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땐 세이야가 사가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사가가 세이야를 귀찮다고 여긴 적은 없다. 어쨌거나 사가는 이 소년을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