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동과 서에 제국이 있어 세계는 크게 둘로 나뉘어 있다. 두 제국 중, 동쪽에 있는 제국의 이름을 건身이라 한다. 현재 제위에 올라있는 것은 17대 황제 민의제敃毅帝, 그 덕이 높아 현제로 칭송받고 있다. 슬하에는 황자 하나와 황녀 다섯을 두었다. 그 중 황자와 셋째 황녀만이 황후의 소생이다. 황자의 이름은 발發, 자는 덕성德星, 호는 계원啟元, 건국의 현 국저이다. 셋째 황녀의 이름은 소형素馨, 호는 휘란輝爛이라 한다. 남매가 모두 용모가 수려하며 성품이 훌륭하고, 서로 우애가 좋기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리고 이것은 이른 봄, 휘란공주에게 일어난 자그마한 사건이다. 열린 창으로 햇발이 흘러 들어온다. 창가에 앉아 수를 놓던 소형은 눈귀를 조프렸다. 가만히 내리쬐는 햇살이 지금 제가 쥐고 있는 비단..
이름은 가장 짧은 주문이라고 한다. 아르테리아. 그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태어난 직후 붙여진, 타인과 구별하기 위한, 피아의 구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을 적부터 불린 그녀의 이름. 몇 번이고,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시간 동안 그렇게 불렸다.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도,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도, 두려워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그 모두가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그녀를 계속 옥죄어오는 그 이름으로. 이제는 아주 소수의 집단만이 쓰는 언어로 이루어진 그 이름은 그녀에게 있어 절망이었다. 그 뜻을 알고 부른 자도 있었을 터고 모르고 부른 자도 있을 터였다. 어찌 되었든 이름은 계속해 불리고 불려, 그녀는 점차 지쳐갔다. 그래도 그녀가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이름을 부른 자가 전부 타인이었기 ..
그는 이제야 제게 온 소포를 살펴보았다. 거기에 찍혀있는 소인은 무려 7년 전의 것. 아직 어린 소년이던 그에게 와야 할 물건이 이제야 도착한 것이다. 사실은 이미 소실되어야 옳은 것을, 어찌 된 일인지는 몰라도 어떻게든 본래 있어야 할 곳에 소포가 왔다는 사실에 그는 묘한 감동마저 느꼈다. 게다가 하필 이 날에. 1년 전도 아니고 1년 후도 아닌, 하필 이 소포를 보낸 그 사람이 죽은 지 1주년이 되는 이 날에. 이 역시 운명의 장난이라고, 그는 그렇게 가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머뭇거리며 이미 낡은 포장을 뜯어냈다. 세월에 너덜너덜해진 상자는 의외로 커다란 구멍도 없이, 내용물을 제대로 보관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잠들어 있던 것은 오랜 시간에도 빛이 바래지 않은 유리병.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