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이 내게 왔다. 전쟁이 시작 된 지도 벌써 7년이 흘렀다. 처음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작은 소모전만 되풀이되는 실상이다. 다만 울음만은 처음 시작될 때와 같았다. 자그맣다고 하지만 그래도 전쟁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죽어 나가고 있고 물자는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지금 와서는 이 전쟁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릴 만큼 끔찍한 살육만이 반복되고 있었다. 아마 어느 나라가 이기든 간에 행복한 결말 따위는 없을 거라고 연燕은 생각했다. 이제는 전쟁보다는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커다랗게 느껴지는 빈자리, 난폭해지는 사람들의 마음, 황폐해진 땅. 이 모든 것들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연이 버티고 서있는 것은 그녀..
바람이 살랑 불었다. 새하얗게 피어오른 적운의 끝자락이 살짝 일그러진다. 물감을 쏟은 듯한 하늘과 솜털 같은 구름을 보며 그녀는 눈이 부신 듯 눈동자를 가느다랗게 조였다. 손으로 작은 차양을 만들다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시골의, 그것도 평일 낮의 기차역에는 사람이 없다. 조그만 역사와 쭉 뻗은 레일만이 있을 뿐이다. 레일을 사이에 두고 승강장의 반대에 나무가 일렬로 심어져 있다. 그녀는 식물의 종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것이 벚나무라는 것 정도는 알아볼 수 있다. 그에 봄이었으면 좋았으리라고 잠깐 아쉬워한다. 허나 여름의 풍경도 나쁘지 않다. 새하얀 역사와 파란 하늘은 꽤 잘 어울렸다. 또한. 그녀는 눈을 조프리고 앞을 본다. 승강장이 끝나는 곳, 역사 앞에 노란 물결이 아른거린다. 아직 거리가 조..
1. 방 안에 눈이 내렸다. 무엇 때문인지 회색으로 물들어, 차라리 재라고 칭하는 것이 옳을 덩어리를 눈에 담는다. 흰 벽지가 발린 벽과 한가운데 도려진 회색 하늘이 눈물겨운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흑백영화처럼 명암의 차이만 뚜렷한 세상에서 소년만이 오롯이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은 상황의 아이러니에 그는 결국 눈물을 흘린다. 텅 빈 방 안에 있는 것은 새카만 소파와 소년뿐이다. 숨어버리기라도 할 듯 소년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고 있다. 다리는 편안하게 뻗어있고 손은 깍지 껴 배 위에 얌전히 얹혀있다. 서리처럼 바스락거리는 까만 바지와 새하얀 스웨터에 그는 소년의 잔인함을 다시금 상기한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눈이 흘러내린다. 종이의 질감과 닮은 소년의 속눈썹 끝에도 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