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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가장 짧은 주문이라고 한다.
아르테리아. 그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태어난 직후 붙여진, 타인과 구별하기 위한, 피아의 구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을 적부터 불린 그녀의 이름. 몇 번이고,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시간 동안 그렇게 불렸다.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도,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도, 두려워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그 모두가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그녀를 계속 옥죄어오는 그 이름으로.
이제는 아주 소수의 집단만이 쓰는 언어로 이루어진 그 이름은 그녀에게 있어 절망이었다. 그 뜻을 알고 부른 자도 있었을 터고 모르고 부른 자도 있을 터였다. 어찌 되었든 이름은 계속해 불리고 불려, 그녀는 점차 지쳐갔다. 그래도 그녀가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이름을 부른 자가 전부 타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무어라 불러도, 결국은 모두 관계없는 타인이니까 기분만 조금 나빠지고 말뿐이었다.
그랬기에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만은 참을 수 없었다. 단순한 타인이 아닌 소중한 그가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겹치고 겹쳐 한계치를 돌파했고, 때문에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너는 아무것도 몰라!’
‘이름은 가장 짧은 주문이라고? 아니, 틀려. 이건 저주야, 저주!!’
‘아르테리아는 쓸모없는 것이라는 뜻이라고!!’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지르며 그녀는 울었다.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던 격정,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밀려오는 격통.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고 사지를 버둥거리며 거의 발작을 하던 그녀를 그는 변함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다만 눈동자가 흔들리는 채로. 안타까운 듯 젖어들었던 물빛 눈동자를 기억한다. 뒤에 무어라 소리 질렀는지, 무슨 행동을 했는지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모습과 팔을 붙잡던 온기와 그의 말만은 기억하고 있다.
무표정인 주제에 그녀보다 더 아픈 모습을 하고, 그는 똑똑히 말해주었다.
‘리아라고 하자. 세계라는 뜻이다. 내가 그렇게 부를 때마다 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나의 세계가 되는 거다.’
‘몇 번이고 불러줄 테니까.’
‘무엇보다, 누구보다 강하게 기원하겠어.’
입에 발린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이 가슴에 와 닿았던 건 한 치의 흐림도 없는 진심이었기 때문이겠지. 결국, 다시금 눈물이 흘러, 그녀는 눈앞이 흐려졌었다.
“─아, ─리아.”
흔들어 깨워져, 리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직 시야가 흐리다.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는 그녀를 깨우려는 듯 이름이 계속 불린다. 이명과 함께 들리는 그것이 제 풀 네임처럼 들려, 리아는 웅얼웅얼 입속말로 투정을 부렸다.
“…아르테리아라고 부르지 마.”
웃음소리가 낮게 울렸다. 눈을 비비고 난 뒤, 조금 선명해진 시야 속에 그가 제대로 보였다.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 그녀를 들여다보고 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모습을 보고 그가 리아에게 말을 걸었다.
“본명으로 불리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군.”
“응, 싫으니까……. 그러니까 어쩔 수 없어…….”
평소와 달리 솔직한 대답이 나오는 것인 아직 잠에서 덜 깬 탓이다. 소파에 계속해서 드러누운 채로 리아는 크게 하품을 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다시금 잠이 들어버릴 것 같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나른한 기분이 들도록 이마 위로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준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다짜고짜 리아라 부르라고 그랬었지.”
조금 그리운 듯한 말에 리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그렇다. 그에게는 이제 과거의 그 일은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기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실 그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 그렇다고 그에게 화를 낼 수도 없다. 모든 것은 그녀가 자초한 일. 후회와 함께 좋았던 추억마저도 무로 되돌린 것은 모두 그녀가 한 일. 말소된 과거, 그녀의 기억 속에만 있는.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리아?”
괜찮다. 그녀가 전부 기억하고 있으니까, 새기고 있으니까. 그녀에게만은 실존했던 과거니까. 그의 마음은 전혀 변하지 않았으니까.
“으응. 아무것도.”
그는 앞으로도 몇 번이고 기원하며, 그녀의 저주를 풀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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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 없음, 공미포 1508자
혹시나 해서 검색해봤는데..artería [여성명사] [경멸] 교활함, 꾀를 부림 이런게 나와서 뿜었다고 한다 왜 딱인 것 같지?? 사실 동맥이란 뜻도 있지만 딱히 알고 지은 것은 아닙니다 관계도 없구요'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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