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거짓말을 할 거야.” 지극히 담담한 태도로 그녀가 통보했다. 그 말에 민의 눈동자에서 의아한 기색이 떠오른다. 익숙해진 그녀의 돌발 행동에 당황했기 때문이 아니라 말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민이 아는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거짓말을 싫어한다거나 혐오한다거나 하는 생리적 문제가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녀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숨을 쉬는 것처럼 본능에 가까운 이야기다. 그런 그녀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미리 예고하는 거짓말 따위, 민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당당하게 민의 앞으로 걸어와 허리를 숙인다. 그녀가 읽고 있던 책 위로 꾸욱 책을 누르는 동시에 민은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의외로 크고 둥근 눈동자..
不醉不歸 - 허수경 어느 해 봄 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 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 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우연히 읽고 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