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잔등 위로 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사라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희끄무레하던 하늘이 어느새 어둑하니 물들어있다. 비가 오려나.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투둑, 투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소나기의 전조. 빗줄기가 퍽 굵다. 밀려드는 다급함에 사라는 발을 재게 놀렸다. 병상을 털고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감기에 걸리는 건 아무래도 좋지만 지금 품 안에 있는 서류가 젖는 건 큰일이다. 이게 망가지면 사가랑 아이오로스랑 기타 등등이 죽는다고. 그렇지만 결국 세인트가 아닌 일반인의 발버둥일 뿐이다. 최대한 품에 숨겼지만 점점 젖어 들어가는 감촉에 결국 사라는 걸음을 멈추었다. 서류는 물론이고 머리카락과 옷까지 쏟아지는 비에 쫄딱 젖어버렸다. 아주 잠깐 사이에 이렇게 완벽한 폭우가 되어버리다니. 아니, 소나기..
성전이 끝나고 명계와의 협정에 의해 죽었던 사람들이 모두 지상으로 되돌아왔다. 원인이 애매하고 적당한, 편의주의적 전개였지만 세인트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환호를 내질렀다. 거기에 덩달아 스펙터들까지 부활했지만 그것도 신경 안 썼다. 어차피 조약에 묶인 을일 뿐,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다 한들 나중에 처리해도 좋을 일.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전우들이 귀환했는데 사사로운 사항까지 생각하기에 그들은 너무 단순했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스펙터들이 니들 이러면 위험하지 않냐고 진지하게 충고할 정도로. 너무 긍정적인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여하튼. 덕분에 성역은 유례 없을 정도로 평화롭고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 반복되는 일상. 그리고 사건은 이러할 때만 발생한다. ..
많이들 의심하지만 세인트는 인간이다. 맨주먹으로 바위를 부수고, 물건을 얼리고, 때론 하늘을 나는 둥 비상식적인 행위를 일삼긴 해도 분명 인간이다. 때문에 세인트에게도 한계는 분명히 있었고(한계마저 넘어 기적을 일으키는 소수도 있지만), 인간으로서 막을 수 없는 사건도 당연히 존재했다. 이번 일이 그랬다. 때는 환절기, 날씨가 급격하게 바뀌는 시기. 성역에 전염성 강한 병이 돌았다. 일반인, 세인트를 가리지 않고 성역 대부분을 쓰러트린 병은 결국 골드 세인트까지 굴복시켰다. 제일 처음 쓰러진 사람은 온갖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잔뜩 약해졌던 사가. 쓰러진 곳은 집무실 책상 옆이고, 심지어 발견자는 아테나였다. 그쯤 되자 처음엔 낙관적으로 생각하던 의료진은 몇 남지 않은 생존자와 함께 투쟁에 들어갔다. 이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