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이 끝나고 명계와의 협정에 의해 죽었던 사람들이 모두 지상으로 되돌아왔다. 원인이 애매하고 적당한, 편의주의적 전개였지만 세인트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환호를 내질렀다. 거기에 덩달아 스펙터들까지 부활했지만 그것도 신경 안 썼다. 어차피 조약에 묶인 을일 뿐,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다 한들 나중에 처리해도 좋을 일.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전우들이 귀환했는데 사사로운 사항까지 생각하기에 그들은 너무 단순했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스펙터들이 니들 이러면 위험하지 않냐고 진지하게 충고할 정도로. 너무 긍정적인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여하튼. 덕분에 성역은 유례 없을 정도로 평화롭고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 반복되는 일상.
그리고 사건은 이러할 때만 발생한다.
늦은 아침, 텐마는 콜로세움 좌석에 주저앉아 있었다.
콜로세움 한가운데에서는 야토와 융카스의 대련이 펼쳐지고 있다. 브론즈 세인트 둘이지만 나름대로 고생을 겪은 녀석들이라 그런지 만만하게 볼 수 없을 정도로 제법 치열한 접전이다. 하나, 둘을 바라보는 텐마의 표정은 지나치게 심드렁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보고 있자니 몸은 근질근질한데 저기 낄 수가 없었으니까.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 사람이 안 끼워주는 건 아닌데 성전 동안에 유명세를 너무 탄 탓에 끼워달라고 말했다간 자기랑도 대련해 달라고 덤벼들 놈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멋모르고 그랬다가 벌어진 상황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우연히 지나가던 아스미타가 수라계가 인간계에 재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중얼거릴 정도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텐마야 ―대부분의 세인트가 그렇지만―그런 거에 일일이 신경 쓸 정도로 섬세한 성격도 아니었고 달려드는 녀석들과 대련 한 번 못할 것도 아니었으니까. 정말 문제는 대혼란을 알게 된 교황이 골드 세인트, 즉 보호자 없이는 함부로 대련을 하지 말라고 텐마에게 명령한 것이었다. 그리고 제아무리 텐마라도 교황의 명령에 불복할 정도의 깡따구와 무례는 없었다.
‘……덕분에 구경꾼 신세지만.’
그래도 부탁하면 도코나 시온이 언제나 대련해주기에 큰 불만은 없다. 시지포스와 엘시드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선 거절하지 않고, 레굴루스나 마니골도나 카르디아 쪽에선 오히려 먼저 요구해 오고. 요즘에는 데프테로스도 몇 번에 한 번쯤은 승낙해주고 있다. 사실은 좀 더 자주 어울리고 싶지만 이 정도면 많이 발전한 것이기에 지금은 참는다. ……아니, 참긴 뭘 참아. 도대체 뭘? 애초에 굳이 데프테로스랑 어울릴 이유도…….
어울리지 않게 상념에 빠진 것이 문제였나. 그 순간, 텐마는 자신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코스모를 재빨리 눈치채지 못했다.
“우악?!!!”
비명과 함께 텐마는 떨어진 물체에 그대로 깔렸다. 더불어 이마도 박았다. 소소하게 아프다. 아니, 엄청나게 아프다.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장소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비명에 모두의 시선이 근원지로 향한다.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벌건 이마를 문지르며 엎어져 있는 성전의 영웅과 그를 깔아뭉개고 있는 또 한 사람이었다. 긴 머리카락에 가려져 습격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적습인가?! 누군가 무심코 외쳤다. 그에 반응해 전사들이 코스모를 끌어올린다. 신속하지만 쓸데없는 대응이었다. 정체불명의 인물이 고개를 들고 얼굴을 보인 순간 전부 얼이 나가버렸으니까.
“헉!”
“페가수스가 두 명……?!”
“어? 뭐라고?!”
뜻밖의 말에 텐마는 황급히 자신 위에서 벗어날 생각을 안 하는 자를 쳐다보았다. 상대도 마찬가지. 붉은 눈동자가 서로 맞았다. 어. 삼 초 후, 소리 있는 아우성이 빗발쳤다.
““너 누구야!!!””
멋들어진 이중주. 얼결에 도플갱어와 마주치게 된 불법 침입자가 파드득 움직여 텐마 위를 벗어난다. 텐마도 겨우 몸을 일으켜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똑같았다. 쌍둥이, 아니 그 이상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그래도 가만히 살펴보고 있으면 완전히 똑같진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일단 머리카락이 자신보다 길고, 골격은 비슷하지만 좀 더 얄팍한 느낌일까, 허리는 확실히 더 얇은 것 같고, 가슴도 있고. ……응? 가슴?
“……여자인 나?”
“……남자인 나?”
비슷한 사고를 거쳤는지 정반대의 말이 툭 겹쳤다. 싱크로가 환상적이다. 덕분에 둘은 더 혼란스러웠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게 분명 나는 맞는 것 같은데 나는 절대 아니고, 애당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고,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더더욱 모르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