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마와 야토와 레굴루스가 시끌벅쩍 떠들고 있을 뿐인 이야기 후반부에 시지포스 잠깐 나옵니다
아무리 소수라도 한 집단이 만들어지게 되면 사람은 저마다 그 집단 안에서 각각의 역할을 맡게 된다. 라는 글을 어디서 읽은 적이 있다고 야토는 떠올렸다. 확실히 그 말대로다. 얼핏 보면 그저 아무렇게나 어울리고 있을 뿐인 자신과 레굴루스와 텐마 사이에서도 그 역할이 분명히 존재했으니까. 상하관계는 아니다. 셋은 평등하지만, 아니 평등하니까 오히려 각자 자신만의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레굴루스가 사건을 일으키는 역할, 자신이 화내며 그것을 뒷수습하는 역할, 텐마가 그 사이에서 적당히 밸런스를 잡아주며 중재하는 역할이라고 할까.
스스로도 손해 보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지만 야토는 그래도 제게 맡겨진 역할을 열심히 해냈다.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 모두를 있는 대로 휩쓸리게 하는 사건만 저지르는 녀석이지만 어쨌거나 레굴루스는 친구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같이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즐겁다 말해도 좋았다. 그랬는데, 그랬지만─
주방작업대에 잔뜩 늘어놓아 져 있는 것은 밀가루, 설탕, 베이킹파우더, 달걀 등 전부 과자를 만들기 위한 재료였다. 그것 자체는 별로 특별할 것 없었지만 문제는 그 무지막지한 양이다. 필시 집에 있는 재료 전부를 긁어모아 온 것으로 생각되는 엄청난 양은 이 전부를 사용하면 도대체 몇 인분이 나올지 예상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걸 전부 다 하려면 힘들겠다, 라든가 정말 이걸 다 써도 괜찮을까, 라든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두서없이 떠다닌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보려고 해도 암울한 미래밖에 예상되지 않아 야토는 결국 성대한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야토도 처음엔 있는 대로 재료를 꺼내는 레굴루스의 행동을 막지 않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실패할지도 모르잖아? 라며 상큼하게 웃는 레굴루스의 모습에─정확히는 고집에─ 기가 꺾이고 말았던 것이다.
모든 사건의 제공자이자 현재도 맹렬하게 사건을 일으키고 있는 레굴루스는 저 앞에서 뭐가 그리 즐거운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팔을 걷어붙이고 있었다. 그 발랄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야토는 역시 제 옆에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텐마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쳤다.
“……텐마. 제과해본 적 있어?”
“……나는 밥도 겨우 해먹는 형편인데.”
레굴루스의 행동에 매번 화내는 야토와는 달리 대개 웃으며 어울려주던 텐마도 이번만은 도무지 그렇게 못하겠는지 떫은 대답이 되돌아왔다. 혹시나 하고 자취하는 친구에게 물어봤지만 역시나한 대답에 야토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당연하지만 야토도 제과는 할 줄 모른다. 평범한 남중생에게 그런 걸 바라는 자체가 사치다.
그나마 여기가 자신의 집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야토는 생각했다. 이 셋이서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고 일을 끝낼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했고, 그 결과 누나에게 죽기 직전까지 혼날 게 뻔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 집에서 레굴루스가 살고 있는 것은 맞지만 소유주까지 레굴루스인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실소유주 즉, 레굴루스의 보호자인 시지포스의 존재가 있다. 과연 그가 퇴근하고 엉망진창인 주방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아무리 온화한 그라지만 글쎄, 이번만은 조용히 넘어가긴 글렀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여기가 텐마의 집이었으면 그나마 나았을지도. 그런 생각을 하면 자연스럽게 투덜거리는 말투가 되어버린다.
“어째서 네 집에서 하자고 안 한 거야.”
불합리한 태도라는 건 자각하고 있었다. 비난을 되돌려 받아도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야토는 생각했다. 그러나 텐마는 의외로 산뜻한 대답을 되돌렸다.
“그야 우리 집에는 오븐 같은 게 없으니까 불가능하잖아.”
사치품이라고, 그거. 조그맣게 중얼거리면서 텐마가 한숨을 내쉰다. 당연하지만 그 한숨의 대상은 야토가 아니다.
어쩐지 멋쩍어져 야토는 시선을 피했다. 레굴루스였다면 제가 툴툴거리는 걸 못 알아채고 저리 대답하나 싶겠지만 텐마는 아니다. 텐마는 제가 툴툴거리는 걸 알면서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며 답하는 거다. 차라리 화를 내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텐마가 이런 식으로 나와버리면 야토는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 순간 레굴루스가 타이밍 좋게 둘을 향해 몸을 돌렸다. 입귀에 가득 걸린 미소가 언제나처럼 반짝거린다.
“텐마! 야토! 어서 시작하자!”
상대가 거절할 거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천진난만한 목소리에 텐마와 야토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나, 그냥 얌전히 앞치마나 입는 수밖에.
“……오우.”
제발 큰 사고만 치지 말아줘.
“그래서 뭐부터 하면 돼?”
“아무것도 모르면서 시작하자고 그러냐!!!”
상큼한 레굴루스의 물음에 당연한 수순으로 야토가 버럭 화를 낸다. 그런 반응을 이미 예상이라도 한 건지 레굴루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야토의 노성을 흘러 넘기며 텐마를 쳐다보았다. 물론 텐마도 알고 있을 리가 없다.
잠깐 미묘한 침묵이 흘렀다. 서로의 시선이 와르르 흩어졌다 모인다. 누구라도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에 결국 야토는 몇 번째인지도 모를 한숨을 내쉬고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문명의 이기는 소중하다.
“……그래서 정확히 뭘 만들 건데?”
“맛있는 거! 큰 거! 이왕이면 케이크 만들자!!”
잔뜩 들떠 얘기하는 레굴루스의 모습을 무시하며 텐마는 야토에게 조용히 귓속말했다.
“제일 쉬운 걸로 찾아.”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급식실로 달려가는 속도보다도 빠르게 둘의 시선이 교차한다. 물론이지, 하고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눈빛이 되돌아와 텐마는 안심했다. 물론 이런다고 일이 안 터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어려운 걸 만드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검색을 위해 액정 위를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던 야토의 손가락이 문득 멈춘다. 그 변화를 알아채고 레굴루스는 눈을 빛내며 화면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푹 덮어버린 야토의 손바닥에 행동이 막혀버렸다. 야토는 스마트폰을 레굴루스에게 보여주는 대신 텐마에게 건네주었다.
“그걸로 하자.”
“뭐……, 이거라면.”
“자, 잠깐! 나도 보여줘!”
제멋대로 진행되는 얘기에 레굴루스는 야토의 손을 허겁지겁 떼어내며 소리쳤다. 본디 완력의 차는 어찌 할 수 없었기에 야토의 손을 떼어내는 건 간단했다. 허나 그땐 이미 텐마가 스마트폰을 제 앞치마 주머니에 넣어버린 후였다. 야토라면 몰라도 텐마는 상대하기에 만만치 않다.
자신만 따돌리는 거냐며 입술을 삐죽 내미는 레굴루스를 보고 텐마와 야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동시에 손을 뻗어 레굴루스의 머리를 꾹꾹 눌렀다. 악! 하는 비명이 손바닥 아래서 깨진다.
“주문대로 맛있는 거 골랐다고.”
“그래, 그래. 시작하자며? 빨리 시작하자.”
어르듯 말하며 야토와 텐마는 주방으로 들어섰다. 어쩐지 자신보다 더 의욕 넘치는 모습에 레굴루스는 멍청히 아픈 제 머리만 매만지며 둘을 쳐다보았다. 물론 둘이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해주겠어! 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 레굴루스가 알 리가 없다.
잠시 어리둥절한 듯 둘을 번갈아 보던 레굴루스는 이내 웃으며 둘 사이로 합류했다.
01. 밀가루(중력분), 베이킹파우더는 체에 내려 준비합니다.
여기는 분명 레굴루스의 집이건만 레굴루스가 주방의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고로 텐마는 멋대로 수납장을 뒤져서 체를 찾아냈다. 물론 뒤지기 전에 마음속으로 시지포스에게 사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옆에서는 야토가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 봉지를 뜯고 있는데 갑자기 레굴루스가 손을 번쩍 든다.
“이건 내가 할래!”
“네 맘대로 하세요…….”
한숨을 내쉬면서도 야토는 순순히 레굴루스에게 체를 건네줬다. 이건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괜찮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텐마도 야토와 비슷한 생각이었던 터라 그 행동을 막지 않았다. 겨우 저거 하는 데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야!! 잠깐!! 계량은 하고 부으라고!!!”
무슨 일이 일어나……
“그건 베이킹파우더가 아니라 설탕이잖아!! 그것도 구분 못 하냐!!”
무슨 일이……
“막 붓지 마!! 다 흘렸잖아!!! 악!! 봉지 터졌다!!!”
텐마는 뒤에서 들리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수납장에서 볼bowl을 꺼냈다.
02. 실온에서 부드럽게 준비한 버터에 설탕을 넣고 거품기로 잘 저어 크림 상태를 만듭니다.
“다음은?”
기대감 어린 눈동자를 빛내며 레굴루스가 물었다. 옆에 서 있는 야토는 쓴 벌레라도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밀가루 봉지를 터뜨려버린 덕분인지 둘은 완전히 밀가루 범벅이었다. 머리카락도 얼굴도 옷도 전부 새하얀 가루로 뒤덮여 있다. 물론 레굴루스는 그런 사소한 일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아슬아슬하게 밀가루 세례를 피했던 텐마는 그런 둘을 보고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야토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밀가루를 뒤집어쓴 모습이 개구쟁이들 같아서 묘하게 미소가 지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경련하는 입가를 내리누르며 텐마는 레굴루스에게 들고 있던 볼을 건넸다.
“다음 건 다 해놨어.”
엑?! 하고 레굴루스가 실망감 어린 목소리를 낸다. 아무래도 본인이 다 하고 싶었던 모양인지 옆에서 감동으로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야토와는 정반대의 반응이다.
“그렇지만 빨리 만드는 게 좋잖아.”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하자 납득한 것인지 레굴루스가 응, 하고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보던 텐마는 그러는 편이 네가 사고를 덜 치니까, 하는 진짜 이유를 애써 삼켰다.
03. 2에 계란, 우유, 바닐라 에센스를 넣고 잘 섞은 뒤 가루를 넣어 나무주걱으로 섞고 완성된 반죽을 한 덩어리로 뭉쳐 비닐에 싼 뒤 냉장고에 넣어 1시간 정도 둡니다.
“……겨우 휴식이다.”
“……1시간밖에 안 되지만.”
텐마는 힘없이 식탁 위로 엎드렸다. 직전에 온몸이 반죽투성이인데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기진맥진해서 사고를 더 이어갈 수가 없었다. 마찬가지인지 야토도 비슷한 모습으로 반대편에 널브러져 있다. 멀쩡한 건 레굴루스뿐이다.
자신들과는 다르게 쌩쌩하게 냉장고 앞으로 왔다 갔다 하는 레굴루스를 흘끗 보고 텐마는 야토에게 속삭였다.
“겨우 반죽하는 데 이렇게 지칠 줄은 몰랐어.”
“누가 아니래. 도대체 어떻게 하면 우유를 붓는 데 반 이상 흘릴 수가 있는 거야.”
“레굴루스가 계란을 산산조각냈을 땐 진짜 울고 싶더라.”
“난 반죽 섞으면서 주변으로 다 날려 보낼 때.”
야토와 텐마는 엎드린 그대로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앞으로 다른 건 몰라도 레굴루스와 요리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텐마는 굳게 다짐했다. 자신도 그리 잘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뭐든 정도란 게 있는 법이다. 뭐, 어찌 보면 이렇게까지 요리를 못 하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별로 좋은 재능은 아니지만.
겨우 한고비 넘긴 심정으로 텐마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불편한 자세지만 이대로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그 순간 레굴루스가 냉장고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 멀었어?”
“……10분밖에 안 지났어.”
슬프게도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남아있었다.
04. 반죽을 꺼내 밀대로 0.5cm정도의 두께로 밀고 반죽을 큰 하트 모양의 틀로 찍은 후 절반은 그냥 두고 절반은 작은 하트 모양의 틀로 찍어 중앙에 구멍을 냅니다.
레시피를 읽던 텐마는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트 모양의 틀? 그런 거 있어?”
옆에 있는 레굴루스에게 시선을 향하며 묻자 레굴루스가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다. 그럼 그렇지, 하고 텐마는 포기했다. 처음부터 기대 안 하길 잘했다.
그나저나 틀이 없으면 쿠키를 만들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하지. 아까 수납장을 뒤질 때에도 틀 같은 건 보이지 않았는데. 곤란하네, 하고 텐마가 끙끙거리고 있는데 근처에서 야토가 툭 말을 던졌다.
“모양 같은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컵으로 찍으면 되지 않아?”
“아, 그런가?”
하긴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모양 따윈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텐마는 납득하고 컵을 꺼내 반죽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옆에서 레굴루스도 거든다. 다행히 이번엔 사고를 치지 않을 것인지 꽤 조용하게 일이 진행됐다.
양이 꽤 많아서 한참을 열중하며 찍어내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들여다보고 있던 야토가 어이없다는 목소릴 냈다.
“……너희들, 반죽이 너덜너덜하잖아.”
“……냅둬.”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모양 따윈 아무래도 좋다니까.
05. 170도로 예열 된 오븐에 8~10분 정도 구워 식힌 뒤 구멍 없는 하트 위에 딸기잼을 얹고 구멍 있는 하트 쿠키를 위에 얹어 모양을 만듭니다.
맞춰둔 타이머가 울려 텐마는 오븐을 껐다. 솔솔 맛있는 냄새가 풍긴다. 불행 중 다행인지 쿠키는 잘 구워진 모양이다. 하긴 그렇게 고생했는데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았으면 엄청 억울하다.
오븐 장갑을 끼고 쿠키를 꺼내자 맛있는 냄새가 더 강하게 풍겼다. 귀찮음과 허기가 적절하게 섞여 잼이고 뭐고 그냥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랬다간 레굴루스가 싫어할 테니까, 텐마는 틀을 얌전히 식탁 위로 내려놓았다. 저편에서 야토와 레굴루스의 목소리가 가까워진다.
“난 딸기잼보다 사과잼이 좋은데 사과잼은 없어?”
“……네 집인데 나한테 묻는 거냐.”
잼을 들고 오는 둘의 모습을 보고 텐마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다 끝났기 때문인지 이상하게 계속 웃음이 삐져나왔다. 그게 더는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라는 걸 텐마는 알고 있었다.
만드는 동안 무척 고생하긴 했지만 동시에 즐거웠던 것도 사실.
“……라는 게 지금까지 사건의 전말입니다.”
말을 끝맺으며 전에 없던 공손한 모습으로 텐마가 시선을 피했다. 야토도 마찬가지 모습이다. 오직 레굴루스만이 싱글벙글 웃고 있다.
그런 말썽꾸러기들의 모습을 보며 시지포스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그래서 주방이 엉망진창이고 설거지해야 할 것들이 잔뜩 쌓여 있었던 데다 식탁에 잼이 엎질러져 있었던 건가.”
조용한 질타에 레굴루스를 제외한 둘의 어깨가 움츠러든다. 레굴루스조차도 시지포스의 말을 듣고 심각성을 깨달은 건지 찔끔한 표정을 하고 있다. 이제서야, 싶기도 하지만 일단 반성한다면 뭐 그걸로 좋다. 물론 반성한다고 일거리가 줄어드는 건 아니지만.
청소할 거리를 생각하자 밀려드는 두통에 시지포스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를 듣고 셋이 서로 몸을 바싹 붙였다. 영락없이 사고를 쳐놓고 야단맞을까 겁먹고 있는 어린애들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독기도 빠져버려 시지포스는 어른의 관대함을 한껏 발휘하기로 했다.
“……너희가 즐거웠다면 됐다.”
시지포스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셋의 머리카락을 한 번씩 쓰다듬어 주었다. 상냥한 손길에 세 소년의 얼굴이 점차 밝아지다 마침내 환한 웃음을 머금는다.
“시지포스도 쿠키 먹을래?”
“아, 그래. 스스로 말하긴 뭐하지만 제법 잘 됐다고!”
레굴루스가 몸을 바짝 붙이며 묻는다. 옆에서 텐마가 맞장구치고 야토가 재빨리 행동으로 옮긴다. 이제는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습을 보고 시지포스는 결국 소리 높여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