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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2013.11.28

citrus_ 2013. 11. 28. 21:41





 “이제부터 거짓말을 할 거야.”


 지극히 담담한 태도로 그녀가 통보했다. 그 말에 민의 눈동자에서 의아한 기색이 떠오른다. 익숙해진 그녀의 돌발 행동에 당황했기 때문이 아니라 말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민이 아는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거짓말을 싫어한다거나 혐오한다거나 하는 생리적 문제가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녀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숨을 쉬는 것처럼 본능에 가까운 이야기다. 그런 그녀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미리 예고하는 거짓말 따위, 민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당당하게 민의 앞으로 걸어와 허리를 숙인다. 그녀가 읽고 있던 책 위로 꾸욱 책을 누르는 동시에 민은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의외로 크고 둥근 눈동자는 물감을 칠한 것 같아 제대로 빛을 반사하지 않는다. 버석한 종이의 질감을 가진 눈동자가 작은 호흡과 함께 가늘어진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녀는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난 네가 싫어. 보는 것도 역겨워. 내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어. 너를 정말 싫어해.”


 붉은 혀끝에서 가차 없는 폭언이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민은 그녀의 행동의 이유를 이해했다. 오늘은 4월 1일, April pool's day다. 어릿광대처럼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고 상대를 속여 웃고 넘길 수 있는, 동시에 본심을 거리낌 없이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녀를 놓치지 않았다. 


 뒤집어 말하자면 너를 좋아해, 같이 있고 싶어, 라고 외치고 있는 말. 서툴고, 알기 쉽고, 지독히 사랑스러운 어리광에 민은 가볍게 웃는다. 그녀의 손 위로 손을 포갠다. 잘 가꾸어진 손끝이 묘하게 차가워 민은 그녀가 내심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역시 아직도 바보 같을 정도로 겁쟁이다. 괜찮다고 말하듯 민은 그녀의 손을 꾹 쥐었다. 그녀가 내심 사람과의 접촉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만.”

 “……거짓말이야?”


 거짓말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녀는 되물었다. 그녀의 불신에 민은 화를 내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담담하게 기뻐했다. 질려버릴 정도로 인간불신과 자기불신이 강한 그녀가 칼금을 긋든 단호하게 잘라서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민은 안다. 조금씩 빛을 반사하는 눈동자에 뱃속이 간질거렸다. 손을 움직여 민은 그녀와 깍지를 꼈다. 세게 쥐어진 손끝에 둔통이 일었지만 민은 신경 쓰지 않고 그녀의 눈을 바라본다. 


 민은 자신이 말하는 것과 그녀가 말하는 것이 다름을 안다.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안다.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도 알고, 앞으로 자신이 바라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것도 안다. 그럼에도 그는 입을 열었다. 단 하나, 오직 그녀를 위해서.


 “천만의 말씀.”


 미소가 만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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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메이커 퇴고는 뭔가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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