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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색

citrus_ 2014. 2. 2. 22:33





 너의 이름이 내게 왔다.




 전쟁이 시작 된 지도 벌써 7년이 흘렀다. 처음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작은 소모전만 되풀이되는 실상이다. 다만 울음만은 처음 시작될 때와 같았다. 자그맣다고 하지만 그래도 전쟁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죽어 나가고 있고 물자는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지금 와서는 이 전쟁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릴 만큼 끔찍한 살육만이 반복되고 있었다. 아마 어느 나라가 이기든 간에 행복한 결말 따위는 없을 거라고 연燕은 생각했다. 이제는 전쟁보다는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커다랗게 느껴지는 빈자리, 난폭해지는 사람들의 마음, 황폐해진 땅. 이 모든 것들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연이 버티고 서있는 것은 그녀에게 오는 단 하나의 이름 때문이었다.



 한 번의 소모전이 끝날 때마다 병사들은 자신의 이름이 수놓아진 천을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보내곤 했다. 살아있다면 푸른색, 죽었다면 붉은색의 천을. 나라에서 병사들에게 허락한 유일한 상이자 혜택이다. 그리고 연의 연인은 징집된 이후 5년간 끊임없이 그녀에게 푸른색 천을 보내오고 있었다. 그것으로 족했다.



 본디 병사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장을 떠날 수 없다. 그 말은 연이 연인의 얼굴을 보지 못한지도 5년은 되었다는 소리다. 하지만 연은 그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 5년의 세월과 짐작도 할 수 없는 참상에 지금은 변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전의 얼굴만은 똑똑히 흐려지지 않은 채로. 그것이 가능한 것은 아마 그녀와 그가 어린 시절 연리지처럼 함께 자라났기 때문일 터다. 흙먼지가 일어나는 메마른 땅을 질리지도 않고 함께 뛰어다니며 뒹굴었다. 각자의 기억에 새겨진 것이 서로밖에 없을 정도로.



 그러니까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무엇보다 서로 소중히 여기니까, 함께하고 싶어 하니까, 곁에 있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러니까 그는 반드시 살아서 무사히 돌아올 것이다. 계속해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곁으로. 증거로 계속해서 푸른 이름을 보내오지 않는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전쟁터에서, 주변에서 하나둘씩 붉은 천이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웃으며 연은 모아두었던 푸른 천을 꺼내 들었다. 몇 개월 전에 온 천은 아직 새것 같았지만 거의 5년 전에 온 천은 아끼고 아꼈음에도 색이 바래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모든 천이 다 소중했다. 혹자는 별 의미가 없는 천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무사를 말해주는 것으로 생각하면, 그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언젠간 천 대신 그 자신이 되돌아올 것이라고 강하게 믿을 수 있는 힘이 되어주니까. 



 푸른 천을 들어 볼을 부볐다. 메마른 천의 감촉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희미하게 메마른 모래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이제는 절망을 향해 가는, 이 땅의 냄새다. 하지만 연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바라고 바란다. 이것보다 더 거친 손길이라도 좋으니 그가 돌아와 이 뺨을 쓰다듬어주기를. 뚝, 뚝 눈물이 떨어졌다. 천에 검푸른 자국이 번진다. 숨을 죽이고 울음을 참던 연은 황급히 눈물을 닦아다. 이 무슨 망측한 행동이람. 연은 스스로를 책망했다. 어째서 울음을 터트리나. 울지 마라.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니 그가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얼마 후면 다시 그의 이름이 올 것이다. 이것처럼 푸른 이름이.



 문득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연은 알아챘다. 얄팍한 문 너머에서 낯선 관리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녀는 지난 5년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황급히 달려가 문을 벌컥 열었다. 무뚝뚝한 관리가 인사도 없이 무언가를 불쑥 건넨다. 반사적으로 연은 그것을 받아들었다.



 봐라, 이처럼 여기에─ 다시금 눈물이 한 방울 흘러넘쳤다.






 건네진 그 이름의 색은─



-
공미포 1424자. 너의 이름이 내게로 왔다, 란 문장으로 시작 된 짧은 글.
어쩌다 이런 분위기가 되어버렸나싶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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