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햇살이 창으로 비쳐들고 있다. 온 방이 새하얀 빛에 잠겼다. 그 속에서 꾸벅꾸벅 졸던 세이야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테이블 위로 손을 뻗었다. 반쯤 껍질이 까진 귤이 잡혔다. 무의식중에 귤을 입속으로 집어넣는다. 직후 세이야는 좌절했다.
‘짐승이냐, 나는.’
조금 전까지 자다 일어난 주제에 이게 뭐하는 짓인지. 하지만 한탄하는 동시에 반쯤 포기하고 있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이제 임신 8개월째, 그렇게 심하던 입덧은 온데간데없고 식욕만이 왕성하게 늘어가고 있는 중이다.
식욕이 얼마나 심한지 이제는 자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의 대부분을 먹는데 쏟아붓고 있을 정도다. 그러면서도 신기하게 몸무게는 그다지 늘지 않았다. 놀라워라, 인체의 신비. 덕분에 주변에서는 타박하는 것도 포기하고 일찌감치 음식을 갖다 바치고 있었다.
“……뭐,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누구에겐지 모를 변명을 중얼거리며 세이야는 남은 귤을 집어 들었다. 새콤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그에 아까의 좌절 따윈 단번에 녹아버렸다. 기분이 좋아진 세이야는 달콤하게 웃었다.
그래,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인걸. 임신 중에 많이 먹는 게 뭐가 잘못이야. 어차피 내가 먹는 게 아니고 다 아이가 먹는 거라고. 사가도 얼마든지 먹어도 괜찮다고 했고. 의사도 떨떠름해 보였지만 일단 괜찮다고 했고. 그러니 문제없음!
그때, 세이카가 허둥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굉장히 당황해하면서도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언니의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이쪽으로 향한다.
“세이야, 손님이 왔어.”
“응? 손님?”
손님이란 어감이 굉장히 낯설었던지라 세이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언니의 뒤를 따라 들어온 인영을 보고 세이야는 반색하며 일어섰다.
“마린 씨!!”
“건강해 보이네.”
짧게 인사를 한 사람은 후보생 시절 스승이었던 마린이다. 세이야에게 있어서는 언니인 세이카를 찾아준 은인임과 동시에 또 다른 누이와 마찬가지이기도 했다.
“어쩐 일이야?”
“임무 도중에 들렀어.”
그녀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마린의 등에는 판도라 박스가 보란 듯이 메여 있었다. 복장은 성역에서와 달리 평상복이었지만 얼굴을 덮고 있는 금속질의 가면도 여전했다. 변함없다고 해야 할지 어처구니없다고 해야 할지. 일본 거리를 돌아다니기엔 상당히 눈에 띄는 차림이다. 허나 마린의 성격상 저 정도면 많이 타협한 것임을 알기에 세이야는 아무 말도 않기로 했다.
판도라 박스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마린이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았다. 세이야도 그녀를 따라서 다시 소파에 몸을 묻었다. 당연한 듯 언니가 옆에 자리했다.
왠지 이 셋이 한자리에 모인 게 신기해 세이야는 실없이 웃었다. 그를 따르듯 마린도 희미하게 피식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조용히 말을 거는 목소리가 따뜻하다.
“배가 그렇게 부른 것 치고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네.”
“그래?”
“아아. 이제 8개월이었던가?”
“응. 2주만 더 있으면 9개월이 돼.”
말하면서도 세이야는 내심 놀랐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싶었던 것이다. 임신한 사실을 알고, 이런저런 대화가 있고, 성역이 한번 뒤집어졌던 게 엊그제 같은데.
거기까지 떠올리고 세이야는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벌써는 무슨. 그동안 고생했던 걸 떠올리면 도저히 벌써라고 말할 수 없다. 세이야와 같은 것을 생각했는지 옆에서 세이카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뱉는 말은 잔소리 아닌 잔소리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게다가 쌍둥이기도 하니까.”
“……그래?”
정말이냐고 묻는 마린의 시선을 받고 세이야는 그냥 웃었다. 딱히 의도하지 않았는데 공허한 미소가 나왔다.
뭐가 힘들었냐고 한다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입덧이었다. 쌍둥이는 원래 입덧이 심한 경우가 많다지만 그래도 정도가 있지. 당시에는 정말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지나치게 잘 먹고 있어서 탈이지만.
활동량이 줄어든 것도 고생한 일 중 하나였다. 세이야는 원래 한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갑자기 함부로 몸을 움직이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으니 불편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의사에게 가벼운 운동은 허락받았으나 형제들이 그것마저 반대했다. 네가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적당히 할 리가 없다나 뭐라나. 자신을 그렇게 못 믿겠냐고 분개했던 세이야였지만 결국 사가의 울 것 같은 얼굴에 꺾여 적당히 타협하며 지금까지 왔다. 최근에는 그나마 스스로 조심하는 중이다.
6년 동안 자신을 가르쳤던 마린이니 이 미소의 의미를 모를 리가 없다. 스승의 눈길에는 온갖 고생으로 점철되었던 수행 시절에도 느낄 수 없었던 동정이 가득 차 있었다.
“……고생하는구나.”
세이야는 그저 아득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그날 밤, 세이야는 방에서 작은 램프만 켜 놓은 채 책을 읽고 있었다. 물론 짧은 생애를 통틀어서도 책과 친했던 역사는 없었으니 거의 폼이다. 실제로도 세이야의 신경은 전부 저택 안의 기척에 쏠려있었다.
집중하면 여러 가지가 느껴졌다. 가까운 방에 있는 익숙한 형제들의 기척, 언제나 따뜻한 언니의 기척, 좀처럼 소리를 내는 일이 없는 마린 씨의 기척. 멀리서 분주한 듯 움직이고 있는 건 타츠미일까. 꽤 늦은 시간이기에 다른 사용인들의 기척은 없다. 사가의 기척 또한.
세이야가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고 난 뒤 사가는 강제로 휴가를 받아 세이야와 함께 키도 저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몇 달 동안이나 놀릴 수 없는 고급 인력이다. 덕분에 말만 휴가지 실제로는 툭하면 성역의 문제 처리나 사오리의 보좌로 불려 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알고는 있지만─
세이야는 툭 한숨을 떨궜다.
사가가 바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자신이 어린애도 아니고, 이제 와서 그걸로 토라지진 않는다. 오히려 사가가 계속 자신의 옆에만 붙어 있으려 했다면 그게 더 곤란했을 것이다.
무슨 불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니와 형제들이 이것저것 챙겨주고 있으니 불편함이 있을 리가 없다. 한껏 물러진 저택 사람들도 자신을 걱정하며 정성스레 보살펴 준다. 오히려 너무 신경 써줘서 그게 미안할 때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해도,
가끔은 쓸쓸해서─
그때, 감각에 너무나도 익숙한 기척이 잡혔다. 세이야는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릎 위에서 책이 떨어진다. 바닥에 두텁게 깔린 카펫이 모든 소리를 흡수했다. 세이야는 그쪽은 신경도 쓰지 않고 무거운 다리를 움직였다. 지금 자신의 몸 상태는 그다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재게 발을 놀려 홀이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나가자 푸른 머리카락이 시야에 들어왔다. 거기서 세이야는 잠깐 걸음을 멈췄다. 부름도 기척도 없었는데 사가가 이쪽을 올려다본다. 남자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입술만이 움직여 자신의 이름을 그린다.
“사가!”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세이야는 다시 다리를 움직였다. 가슴 언저리가 욱신, 하고 아파왔다.
“세이야! 그렇게 뛰면……!”
당황한 사가가 달려온다. 곧 단단한 남자의 팔이 자신을 감쌌다. 익숙한 온기, 익숙한 체취, 익숙한 품. 세이야는 배가 눌리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사가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서서히 체온이 섞인다. 귓가에서 어쩔 수 없다는 듯, 나지막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손이 등을 어루만진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안정감에 마음의 끝자락이 풀려갔다. 살짝 고개를 올리면 화를 내려다 실패한 듯한 표정의 사가가 보였다. 세이야는 헤헤, 싱거운 웃음을 흘렸다.
“어서 와, 사가.”
“……다녀왔어.”
자포자기에 가까운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사가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그려진다. 인상에 남을 수밖에 없는 웃음. 하여튼 얼굴은 예뻐서. 세이야는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다 그 뺨에 짧게 입술을 눌렀다. 가벼운 소리가 났다.
“오늘따라 어리광이 심하구나.”
웃음을 섞어 입맞춤을 되돌려준 사가가 그대로 자신을 안은 채 방으로 걸어간다. 몸이 완만하게 흔들렸다. 세이야는 좀 더 편하게 사가에게 몸을 기댔다. 딱 기분 좋을 정도의 체온이다. 귓가에 속삭여지는 낮고 조용한 남자의 목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들렸다.
“저녁은?”
“먹었어. 걱정하지 마.”
“몸 상태는 어때?”
“완전 멀쩡해.”
“다행이군. 다른 일은 없었는가?”
“응, 딱히……. 아. 낮에 마린 씨가 왔어. 오늘은 자고 간데.”
“그런가.”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다 보면 금방 방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선 사가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침대 위로 내려놓는다. 등 뒤로 시트의 감촉이 느껴졌다.
설핏 얼굴 위로 그림자가 졌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사가가 자신을 내려다본다. 기다란 손가락이 슬슬, 어느새 많이 자라버린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조심스러운 손길이 마치 달래는 것 같았다.
“자, 일찍 자야지.”
“……어린애 취급하지 마.”
“하지 않는다.”
말은 저리하지만 목소리에 얼핏 장난기가 스며들어 있다. 토라진 세이야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으나 그도 오래가지 않았다. 안심이 된 탓에 슬금슬금 수마가 몰려왔다. 흐리마리 감기는 눈꺼풀을 간신히 부여잡은 채 세이야는 사가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사가도.”
우물우물 뒷말을 흘리자 사가가 달콤하게 입귀를 늘렸다. 아,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표정이다. 그 생각을 끝으로 세이야는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녘에 갑자기 잠이 깬 것은 배가 아파져 왔기 때문이었다.
눈을 떠 옆을 보니 사가가 조용히 잠들어 있다. 간접조명이 희미하게 남자의 실루엣을 비춘다. 비몽사몽 그를 바라보던 세이야는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이런 시간에 깨버려서야 계속 자긴 힘들 것 같았다.
배에 손을 얹자 건강한 아이들의 움직임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렇게 활발한 걸 보니 잇키의 말대로 자신을 무척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세이야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때, 다시 둔탁한 통증이 내달렸다.
세이야는 몸을 둥글게 웅크리고 고통을 참으려 했다. 허나 예상과 달리 욱신거림이 계속된다. 달수가 차면서 배가 아픈 건 곧잘 있던 일이지만 이렇게 계속된 적은 없다. 이쯤 되자 세이야는 덜컥 겁을 먹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게 아닐까. 아니, 그럴 리가. 며칠 전 검사에서도 전혀 문제는 없다고 했는데. 아직 예상 일까지는 시간이 남았는데.
머릿속이 뒤죽박죽된다. 뭔가 제대로 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우선순위를 세우는, 그런 기본적인 일조차 할 수 없다. 그저 손만 부들부들 떨렸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사가가 옆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인기척에 깬 모양이었다.
“세이야? 왜…….”
세이야의 안색을 확인한 사가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거의 동시에 배가 심하게 지끈거려 세이야는 자세를 무너트렸다.
“세이야!!”
사가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그 이후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딱히 정신을 잃은 건 아니다. 다만 너무 불안해선지 자신이 뭘 했는지 인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한참을 울었던 것과 사가가 계속 옆에서 자신의 이름을 불렀던 것, 희미하게 팔에 감겨들던 아이들의 감촉만은 확실하게 기억했다.
겨우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병실 안이었다. 새하얀 천장, 병원 특유의 약 냄새, 조금 불편한 병원 침대의 느낌. 세이야는 문득 허전함을 자각했다. 잔뜩 불렀던 배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납작해져 있었다. 눈꼬리에 맺혀있던 눈물이 뚝 떨어졌다.
세이야는 몽롱한 머리로 옆을 쳐다봤다. 침대 옆에 기도하는 듯한 자세로 사가가 앉아 있다. 말없이 시선을 보내자 곧 사가가 이쪽을 쳐다본다. 잔뜩 굳었던 남자의 얼굴이 자신을 확인하고 겨우 부드럽게 풀어진다. 안도의 한숨 소리도 들렸다. 세이야는 메마른 입술을 열었다.
“……사가.”
“응?”
지저분해진 앞머리를 매만져주며 사가가 여상스럽게 대답한다. 간지러움에 세이야는 두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사실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아이들은 무사한지, 무사하다면 지금 어디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쩌고 있는지. 하지만 당장 나오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맞았어?”
뜻을 알아채고 사가가 쓴웃음을 짓는다. 그 뺨에는 둥글고 붉은 주먹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아, 마린에게 혼났다.”
“마린 씨한테?”
“그래. 네가 아파하는 데 당장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뭘 그렇게 허둥대고 있냐고.”
“………….”
과연, 마린 씨. 상대가 골드 세인트라도 인정사정없구나. 새삼 스승의 위대함을 깨닫고 세이야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실버 세인트 중에서, 아니 골드 세인트까지 포함하더라도 사가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문득 사가가 뺨을 어루만졌다. 그 손길이 지독히도 애틋하다. 세이야는 그제야 사가의 모습이 평소보다 훨씬 피곤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긴 이 사람은 멀쩡한 정신으로 그 난리를 겪어야 했겠지.
세이야는 사가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마치 모자라는 온기를 나눠주듯, 말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마음을 다 담아서. 일시에 지니고 있던 모든 탄식이 터졌다.
“……미안. 걱정했지.”
“……네가 미안해할 것은 없다.”
사가가 조심스럽게 몸을 숙인다. 콩, 이마끼리 서로 맞닿았다.
“아이들도 모두 무사하다.”
“정말?”
“그래. 일찍 태어났다지만 건강하다더군.”
“다행이네.”
“당장은 무리지만 네가 일어나면 바로 만날 수 있으니까.”
“응.”
“그러니 빨리 나아라.”
“……응.”
아쉬움을 남기고 온기가 떨어져 나간다. 세이야는 반쯤은 울고 반쯤은 웃는 사가의 얼굴을 바라보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너무도 쉽고 빠르게 잠이 찾아왔다.
정오의 햇살이 창으로 비쳐들고 있다. 그 햇살 속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세이야는 간신히 눈을 떴다. 햇살이 너무 좋아 무심코 잠들고 말았다. 이럼 안 되는데. 머리에 낀 안개를 몰아내기 위해 세이야는 크게 기지개를 켰다. 반복해 움직이면 어떻게든 졸음을 쫓을 수는 있었다.
때마침 타이밍을 맞춘 것처럼 요람에서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그만 소리에 삽시간에 각성한 세이야는 재빨리 요람으로 다가섰다.
“왜 그래, 코…….”
“무슨 일이야!!”
“방금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세이야가 아이를 안아 듦과 동시에 갑자기 문을 부술 듯이 열어젖히며 시류들이 들이닥친다. 이 무슨 반사신경.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차라리 저 정도면 양호한 편에 속했다. 잇키는 무려 창문을 깨고 들어왔던 것이다.
자비 없는 형제들의 습격에 세이야는 입가를 경련시켰다. 물론 형제들은 그를 알아차리는 일은 없었다. 방 안의 상황을 재빠르게 확인하며 시류가 진지하게 외쳤다.
“세이야! 무사하냐!!”
마침내 세이야는 폭발했다.
“너희들 때문에 안 무사해!! 고작 애가 잠투정하는 거 가지고 달려오지 말라고!!!”
더는 참지 못한 세이야가 형제들을 전부 밖으로 집어 던졌다. 그와 교대하듯 사가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단편만 보고도 모든 정황을 알아차렸는지 남자의 입가에는 터질 듯한 미소가 가득했다.
“다들 나아질 생각을 안 하는군.”
“사가!”
아까와는 달리 세이야는 반색하며 상대에게 달려갔다. 질색하는 일 따윈 당연히 없다. 형제들이 보면 차별이 심하다고 눈시울을 붉혔겠지만 물론 세이야는 그런 걸 신경 쓸 성격이 아니었다.
아이를 안은 채로 까치발을 들자 뺨에 짧게 입맞춤이 떨어져 내렸다. 익숙한 감촉, 항상 마음이 바듯이 차는 느낌. 넘쳐흐르는 행복감에 세이야는 힘껏 미소 지었다.
“어서 와.”
“아, 다녀왔어.”
한 번 더 입맞춤을 나누고 세이야는 사가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깨끗한 푸른색이 바로 눈앞에 있다. 그때, 갑자기 아이가 손을 불쑥 내밀었다.
“아, 아우…….”
힘껏 팔을 버둥대며 옹알이를 한다. 그 모습이 마치 자기도 인사를 하겠다는 것 같아 세이야와 사가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코우가도 인사하겠대.”
“그래. 다녀왔어, 코우가.”
사가가 가볍게 아이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그제야 만족한 듯 코우가가 꺄꺄, 즐거운 웃음소리를 낸다.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세이야는 입가에서 웃음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아리아는?”
“자고 있어.”
대답을 듣고 사가가 요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득 세이야는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조그만 상자를 발견했다. 전문가의 손길로 솜씨 좋게 포장된 갈색 상자다. 처음 보는 물건이지만 동시에 매우 익숙한 것이기도 했다. 세이야는 저도 모르게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사가, 그건 뭐야?”
답을 예상하며 묻자 사가가 이쪽을 돌아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남자의 표정에서 세이야는 자신의 추측이 완벽하게 맞아 들었음을 알았다.
“카논이 준 선물이다.”
역시나. 이런 식의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을까. 건네받은 상자를 열어보자 알록달록 예쁜 장난감이 나왔다. 세이야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장난감이 이상한 거라거나 이런 식으로 선물을 주는 게 싫은 건 아니다. 오히려 바쁠 텐데도 신경 써주는 모두의 마음 씀씀이에는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사오리를 위시한 주변의 모두는 쉴 틈 없이 선물세례를 퍼붓고 있었다. 옷이나 장난감부터 시작해서 기타 잡화까지. 모두에게 받은 게 얼마나 많은지 셀 수도 없을 정도다. 심지어 대부분의 물건은 받은 뒤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어 상자 안에서 썩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을 궁핍하게 보냈던 세이야로서는 솔직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다. 사오리 씨야 그렇다 치지만 다른 사람들은 돈이 어디서 나는 거야.
이런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코우가가 장난감을 잡으려고 아등바등 거린다. 아무래도 이게 맘에 든 모양이다. 이렇게 되자 세이야에게도 슬슬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 너라도 좋아하니까 다행이네.”
“카논이 기뻐하겠군.”
같은 상황이라도 받아들이는 게 다른 건지 사가는 훨씬 담담한 편이었다. 하긴 골드 세인트에다 교황으로 행세한 전적도 있는 남자니 부유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보다 풍족하게 살았음은 틀림없다. 그런 그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왜 나에게 공감해 주는 사람이 없는 건지. 세이야는 속으로 탄식하며 코우가에게 장난감을 쥐여주었다. 아직 손아귀 힘이 약할 텐데도 꽉 쥐고 놓치지 않으려는 데서 아이의 성격이 빤히 보였다.
세이야는 버둥거리는 코우가를 고쳐 안았다. 애초에 카논이 준 물건은 관심대상이 아니었는지 사가는 어느새 자고 있는 아리아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딘가 칠칠치 못한 표정이다. 골드 세인트나 교황 대리로서라면 결코 보일 리 없는 얼굴.
문득 충동처럼 무언가가 가슴을 치받았다.
“……사가.”
“응?”
푸른색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언제고 사랑했던 하늘의 쪽빛이다. 언제까지나 사랑해 마지않을.
“행복해?”
느닷없는 질문에 사가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하지만 이내 그의 표정이 온화하게 녹아들었다.
“물론이다.”
바보처럼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세이야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의 예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너무나 막연하고 덧없어서, 답지 않게 불안해하고 가끔은 생각하는 것조차 두려웠던 그런 예감이. 확신조차 죄가 될 것 같았던 예감이.
때문에 세이야는 우는 대신 웃었다.
“응! 나도 행복해!”
겨우 도달한 이 행복한 미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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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미포 7087자
조금 늦었습니다. 그래도 쓰면서 정말 즐겁게 썼던 것 같네요^~^
사실 평소에 설정해 두고 있던 게 있어서 데프텐의 이야기를 쓸까 했는데.... 연애부터 시작해서 결혼 출산 육아까지 장편소설을 쓸 것 같아 관뒀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쓸 거예요....◐◐
여하튼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재밌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가감없이 말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