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도 아니면 타성이 되어버렸기 때문인지 데프테로스는 오늘도 텐마와 만났다. 물론 둘이 만났다고 해서 대단한 것을 하는 건 아니다. 이따금 텐마가 대련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둘의 만남이라면 대개 소년의 실없는 소리를 데프테로스가 겉으론 건성으로, 그러나 의외로 주의 깊게 들어주는 게 전부였다.
이번에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어 데프테로스는 하릴없이 텐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데프테로스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건 뭐냐.”
“응?”
그거라는 애매한 지칭에 텐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혀 짚이는 데가 없는 모양이다. 그에 데프테로스는 말로 설명해주는 대신 소년의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 텐마의 시선도 그를 따른다.
훈련과 싸움 때문에 굳은살과 흉터로 뒤덮인 손. 그 위로 불그스름한 얼룩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보아하니 어제오늘 생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워낙에 흐릿한 데다 다른 흉터가 도드라졌기 때문에 이제껏 발견하지 못하다 오늘에야 알아챈 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병을 앓고 난 것과 비슷해 데프테로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허나 텐마의 대답은 태연했다.
“아, 이거? 마그마에 화상 입었던 거야.”
소년으로서야 그럴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데프테로스는 순간 가슴이 굉장히 찔리고 말았다. 성전 당시, 데프테로스는 강해지고 싶다고 자신을 찾아온 텐마를 스파르타식으로 밀어붙인 것도 모자라 대뜸 마그마 속으로 집어 던지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차근차근 가르칠 시간이 없었다든가 그렇게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불가능했다든가 하는 변명은 많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당시의 행동이 난폭한 처우였단 건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이제 와서 그 사실에 후회한다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당시로써는 그게 최선이었다. 다만 신경 쓰일 뿐이었다.
텐마의 손에는 크고 작은 흉터들이 남아있다. 비단 손만이 아니다. 자신에 비하면 작기만 한 저 몸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짊어지고 있는 것인지, 데프테로스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어림짐작할 뿐.
그리고 그 속에 자신이 남긴 것과 마찬가지인 흔적이 있다.
실상은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보잘것없는 자국. 그럼에도 제가 행한 결과에 가슴이 답답하고 동시에 안도해서, 이 모순적인 감정이 무엇 때문에 생겨나는지 데프테로스는 알지 못한다.
“데프테로스?”
멍하니 있는 게 이상했는지 텐마가 이름을 불러온다. 그 기저에 깔린 것은 의문과 희미한 걱정. 일순 데프테로스의 어깨가 흔들렸다. 충동은 늘 그렇듯 급작스러웠고, 거기에 몸을 맡기는 건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읏!”
비명처럼 소년의 목소리가 깨진다. 데프테로스는 떨리는 손끝에서 미약한 거부를 읽어냈지만 일부러 그것을 무시했다. 사실은 스스로를 멈출 수가 없었다는 게 옳다.
조그만 손을 끌어다 이를 댔다. 흉터를 깨물고 난폭하게 잡아 찢듯 했다. 명백하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었으나 그에 그치지 않고 상냥함을 덧씌웠다. 가느다란 핏줄기 위로 혀를 기고 아픔을 입술로써 달랬다. 오롯이 제가 남긴 흔적을 더욱 깊게 새기기 위해. 제지하던 소년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졸아들었다.
데프테로스는 제가 목적한 바를 이루고 나서야 소년의 손에서 이를 거두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텐마의 눈동자엔 이미 물기가 가득 차 넘치고 있었다. 상기된 두 뺨이 지독할 정도로 붉다.
“뭐, 야…. 왜…?”
헐떡거리며 텐마가 묻는다. 소년에겐 미안하지만 데프테로스는 침묵을 고수했다.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이유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는 충동에 이끌린 것뿐. 다만─
이대로 자신이 사라져도, 설령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할지라도, 텐마 만은 이따금 저 상처를 보며 자신을 떠올려 주리라. 왜인지 데프테로스는 그 사실에 안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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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미포 1395자
오늘도 세상의 중심에서 나 홀로 데프텐을 외치다< 슬슬 해탈했습니다. 그나저나 데프테로스는 정말 쓰기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