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집무는 보지 않고 여기저기 잘 쏘아다닌다. 결국 일은 사가가 다 하는 형편. 그래도 인덕은 있어 관리들이 유능하기에 나라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최종안건만 본인이 확인해서 판단.
왕이 되면서 13세에서 성장이 멈췄지만 무술에 있어서는 나라 안에 따라갈 자가 없다. 무관들이 훈련하는 데 불쑥 처들어가서 대련한다든가 같이 어울리는 일이 많다본 무관들에게는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문관들은........ 그냥 사가가 왕님이심()
사가, 28+α
태어난 지 28년, 거의 죽기 직전에 겨우 찾아낸 왕이기에 세이야가 누구보다 소중하다. 원래 기린에겐 왕이 최고긴 하지만 사가는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선 정도. 그렇지만 일은 해주세요.....OTL 최근에는 둥기둥기하는 게 점점 심해져서 이거 위험한 거 아니냐 하고 쑥덕거리는 사람도 나오는 모양.
세이야의 일을 도와주거나 세이야가 하계에 내려갈 때 같이 끌려가는 일도 많아 여러가지로 고생이지만 그래도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마냥 좋단다. 그렇지만 타인에겐 차가운 도시남자가 되겠지.
돌풍이 불었다. 입안이 꺼끌꺼끌하다. 황폐해진 국토에는 언제나 차갑고 메마른 모래 먼지가 흩날렸다. 그를 증명하듯 대지에, 고목枯木에, 집과 사람들의 얼굴에도 짙은 그림자가 깔렸다. 빛이라고는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풍경. 심지어 하늘마저도 흐릿한 회색에 가깝다.
노인들은 예전엔 이렇지 않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겨울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추웠지만 그래도 여름이 오면 푸른 녹색을 볼 수 있었다고 한탄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세이야에겐 그들의 말이 덧없는 꿈처럼 느껴졌다. 태어난 지 13년, 기억 속의 풍경은 이제까지 조금의 변함도 없었다.
그런 풍경에 갑자기 선명한 색채가 뛰어들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달빛과 닮은 창백하고 아름다운 황금색. 다음은 말로만 들었던 하늘의 푸름. 갑작스런 변화에 아찔할 정도로 눈이 돈다.
세이야는 지금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제대로 배운 것은 없지만 그래도 금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다. 그러한 색을 가질 수 있는 건 오직 기린뿐. 하늘의 뜻을 받아 왕을 선택하는 신수. 이 세계에 오직 12밖에 존재하지 않는 고귀한 존재. 원래라면 세이야가 평생에 한 번도 보기 힘든 상대. 그런데─
“드디어 찾았다.”
어째서 기린이 자신 앞에 있는 걸까.
어째서 기린이 자신을 보고 기쁜 듯 미소 짓는 걸까.
“오랫동안 당신을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어째서 기린이 자신에게 존대를 하는 걸까.
어째서 기린이 자신 앞에 무릎을 꿇는 걸까.
남자가 세이야의 손을 잡았다. 잘 손질되어 부드럽게만 보였는데 의외로 투박하고 뼈가 굵은, 제대로 된 남자의 손이다. 당황해 시선을 내리면 하늘이 소년을 잡고 가늘어졌다. 세이야는 가슴이 크게 뛰는 것을 느꼈다.
사르륵, 조그만 소리를 내며 가느다란 금발이 남자의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남자가 깊게 고개를 숙였다는 걸 조금 뒤에야 깨달았다. 그 이마가 발등에 닿았다.
“천명을 받들어 주상을 맞습니다. 이후, 곁을 떠나지 않고 소명을 거스르지 않으며 충성을 다할 것을 서약합니다.”
그 순간 세이야는 자신의 사명을 깨달았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고 부족할 뿐이지만 그것은 확실히 자신에게 주어진 짐이었다. 괴롭고 힘든 여정이 되리라. 그럼에도 이상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건 이 남자가 계속 자신의 곁에 있으리란 사실 때문이었다. 분명 언제고, 언제까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