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가 그 편지를 발견한 건 이른 새벽이었다.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뒤숭숭한 꿈을 꾼 참이었다. 덕분에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방을 가득 채운 건 아직 푸르스름한 박명. 개꿈 때문인지 뒤틀린 바이오리듬 탓인지 머릿속의 안개가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어딘가 어질어질한 기분도 든다.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인다. 눈꺼풀이 지나치게 무거웠기에 그조차 쉽지는 않았다. 단순히 졸리다는 느낌보다는 팅팅 부었다는 느낌이다. 꿈결에 울어버리기라도 한 걸까. 그렇다면 분명 꿈에 나온(듯한) 카논 탓이다. 정말이지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네. 그래도 몇 번이고 행동을 반복하면 간신히 시야가 트였다. 사람이 시각을 통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이럴 때에 명확히 깨닫게 된다. 뿌옇던 시야가 원래대로 돌..
해가 저물어감에 따라 점점이 별이 떠오른다. 낮에 소나기가 내린 탓에 공기 중엔 축축한 풀과 젖은 흙내음. 조금 쓸쓸해지는 초가을의 향기에 괜히 울적한 기분이 든다. 때마침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모처럼이니 포도주 한잔 하시지 않겠어요? 지나칠 정도로 담백한 유혹에 파에투사는 잠시 틈을 두다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이란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좋은 기분전환이 되리란 건 알았다. 그대로 정원으로 걸음을 옮긴다. 딱히 거절을 예상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혼자라도 상관없었던 건지 테이블엔 이미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아 주인이 따라주는 술을 받는다. 술잔 위에서 좀처럼 없는 모양의 양각이 둔하게 빛난다. 부드럽고 깊은 주향이 코끝에 닿고, 이끌려 한 모금 마시면 매끄럽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깨닫지 못한 사이 호라이께서 자리를 옮겼네요. 벌써 수확을 시작할 계절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연히 포도밭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열매가 아주 잘 영근 게 모든 결실을 주관하는 여신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주실 듯하였습니다. 햇살 아래서 반짝이는 알갱이가 보석 같더군요. 그 아름다움을 보고 있자니 ―제게 감히 이런 부름이 허용된다면―오랜 친우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당신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요? 물론 현명하고 강한 당신들이라면 문제없이 지내고 있음을 압니다. 제가 걱정할 계제가 되지 않음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염려하는 것 정도는 제게 허락되리라 믿고 싶습니다. 당신들을 사랑하는 이로서. 쓸데없는 말이 길어졌군요. 오늘은 문제의 포도밭 주인 댁에서 묵을 예정입니다. 멍하니 포도를 바라보고 있다 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