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의식이 돌아왔다. 제일 먼저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머나먼 곳의 웅성거림, 살금거리는 발걸음 소리, 시트가 구겨지는 소리. 언제나와 같은, 아니 조금 다르다. 평소처럼 작은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도 세심한 부분까지 똑똑히 들리는 듯한. 멍한 머리를 억지로 일깨웠다. 간신히 눈꺼풀이 떨어졌다. 몇 번 깜빡이면 시야가 선명해진다. 사라는 주변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다시 위화감이 습격한다. ‘……내 방이 이렇게 컸나?“ 천장이 높았다. 문도 멀리 떨어져 있다. 작진 않았지만 그리 크지도 않았던 침대가 지금은 널찍하게 펼쳐졌다. 넘실대는 흰색은 그야말로 시트의 바다. 이게 뭐지? 처음에는 잠결 때문에 환상이라도 보고 있나 싶었지만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고 봐도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진짜 이게..
소중히 여겨지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 사가세이 세이야가 새벽녘에 잠을 깬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일어났다고는 해도 머리는 아직 반쯤 수면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사고가 이어지지 않는다. 눈꺼풀도 지독히 무거웠다. 무언가 꿈을 꾼 것 같기도 했지만 그것뿐이다. 세이야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고, 아직 새벽이란 사실만을 힘겹게 깨달았을 뿐이다. 일어나야 할 시간이 아니구나. 반사적으로 판단하고 다시 자기 위해 몸을 조금 뒤척였다. 그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면 세이야는 바로 휴프노스의 유혹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세이야는 그리할 수 없었다. 몸을 뒤척인 순간, 갑자기 이불이 어깨 위까지 올라왔다. 물론 제가 잡아당긴 건 아니었다. 누가? 갑자기 습격한 의문이 각성의 시간을 좀 더 지..
느즈막한 오후였다. 벽 한쪽을 온통 차지하는 커다란 창에서 햇빛이 쏟아 든다. 방안이 온통 오렌지 색으로 물들었다. 구름 그림자가 희미하게 스친다. 그 한가운데 사라가 있었다. 살짝 내리깔린 속눈썹 위로 햇살이 부서졌다. 다갈색이 얼핏 황금빛으로 물든다. 세이야는 그런 누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평소였다면 시선을 알아채고 금방 얼굴을 마주해줬겠으나 드물게 일에 집중하고 있는 건지 반응이 없다. 한 5분쯤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사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참 바람직한 자세겠으나 세이야에겐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자길 몰라준다고 삐진 건 아닌 데 뭔가 허전하다. 결국 세이야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누나.” 천천히 사라가 고개를 든다. 주변에서 이것만큼은 꼭 저와 닮았다고 말하는 눈동자가 깜빡였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