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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바람이 뺨을 두드려 아론은 감긴 눈꺼풀을 떴다. 분명 부드러운 푸른색일 바람이 한껏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헤집고 간다. 몽실몽실한 파스텔 톤의 색상 속에서 이질적인 흑색이 제멋대로 흐트러지는 것을 시야 한구석으로 확인하고, 아론은 다시금 눈을 깜박 감았다가 떴다. 역시나 여린 연둣빛에 둘러싸인 세계는 그가 알지 못하는 곳이다. 인과가 잘려,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아론은 제 손을 내려다봤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럼에도 무언가 걸려 있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손을 오므렸다. 손에서 시선을 떼고 아론은 홀린 듯 걸음을 옮겨 나간다. 보일 리 없는 길이 명확하게 보이고 있다.
올곧게 앞만 바라보는 시야의 끝에 몇몇 건물이 멀리서 스쳐 지나갔다. 그 모습과 양식을 알아보고 이곳이 생츄어리란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상관없어. 아무도 없으니까. 그래, 아무도 없다. 아론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것은 자신과─ 오직 그. 어릴 적부터 걸음이 이끌려 도달한 곳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지금처럼 언제나.
나무 밑에 웅크린 인영을 보고 아론은 무척 기쁘고, 한없이 울고 싶어졌다. 잠깐 멈추었던 발을 다시 움직여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색색거리는 작은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아론은 시선을 맞추듯 쪼그려 앉았다. 깊게 잠이 든 그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갈색 머리카락, 아직 그 나잇대의 천진난만함이 남아있는 얼굴, 그리고 감긴 눈꺼풀 아래에 있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상냥한 노을 색 눈동자. 그 얼굴을 살피는 아론의 눈귀가 우련 붉어졌다. 입술을 열어, 한 음절씩 그의 이름을 불렀다.
“텐마.”
멋대로 가슴에 품었다가 멋대로 잘라내 버린 너의 이름. 아아, 이 죄악은 어쩜 이렇게도 달콤한 독인지.
아론은 자신이 얼마나 죄가 많은지 잘 알고 있었다. 죽음으로도 사죄가 되지 않을 깊은 죄. 신을 연기하고, 수많은 사람을 속여 넘기고, 수많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결국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마저 버려버렸다. 왜냐하면 해야만 하는 일이 있으니까,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텐마.”
다시 너에게 흔들려. 마음이 제멋대로 너를 원해버리고 말아.
이름에 반응하듯 텐마의 눈귀가 움찔거린다. 그 모습에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아론은 손으로 상대의 뺨을 감쌌다. 그리운 온기가 손바닥을 부드럽게 채운다. 언제나 이 정도의 온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되돌아갈 수 없는 날의 추억.
슬슬 마지막이 찾아오는 것을 느끼며 아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금 바람이 분다. 바뀌어가는 계절의 향기가 그대로 실린 바람을 맞으며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반짝 눈이 떠졌다. 익숙하고 어두운 천장을 확인하고, 아론은 한 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가슴이 뻐근해질 정도로 아름답고 덧없는 꿈을 꿨다. 관자놀이로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휴프노스의 장난인가.”
원작이 다 해주니까 참으로 좋네요 호호호(양심을 완전히 버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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