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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오는 바람에는 희미하게 봄의 기운이 묻어있다. 그리고 거기에 파묻힌 데몬로즈의 향기 또한 희미하게 맡을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맡아온 그 향을 조금 그립다고 생각해버리고, 그렇게 생각한 자신에게 알바피카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회한의 감정을 머금었다.
종전 이후 부활한 것도 벌써 며칠. 그렇다고는 하지만 사후의 기억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서 지옥에서의 일은 모두 잊어버렸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하데스의 혼을 몰아내기 위해 12명의 황금성의가 모두 집결했던 그 찰나의 순간뿐 나머지는 희미하게도 남아있지 않은 채로, 말하자면 잠을 자고 일어난 듯한 감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립다고 생각해버렸다. 이렇듯 몸의 기억은 얼마나 선명한 것이며, 그토록 증오스럽게 생각했던 장미도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아 쓴웃음밖에 나지 않는다.
그런 것이다. 이 데몬로즈는 지금의 알바피카를 있게 만든 것. 분명, 앞으로도 계속, 설령 성전이 끝난 지금 이 순간이 계속되더라도, 알바피카는 이 독장미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오로지 이 독장미와만. 그 사실을 후회한 적은 없다. 이미 오래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숙명이라 하더라도, 타인에게 닿을 수 없는 이 몸을 조금 고독하다고 생각하고 말아버린다. 차라리 이전처럼 피가 쓰일 데가 있던 전장이라면 모르지만 이 평화의 시기에는 더더욱. 오롯한 외톨이인, 존재가치마저 사라지고 있는, 그렇다면 자신은 무엇이 되는가.
아직 지상에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봉인된 거인들이나 또 다른 신들이 언제 마수를 뻗쳐올지 모른다. 그러나 최대 숙적 하데스라는 위협이 사라진 이상 이전보다 한가하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전과 같았다면 부활하자마자 바쁘게 뛰어다녔을 것을, 이제는 지금처럼 쌍어궁에 몇 날 며칠을 틀어박혀 있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상념에 취하기에 부족함 없는 시간들. 그렇기에 부활 후 휴식이라는 이름의 공백 동안 알바피카는 이와 같은 것을 계속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종래에 결론은 언제나 하나로 귀결된다. 무의미한 독혈을 품고, 사람과 교류하는 것이 불가능한, 닿는 것조차 되지 않는 관상용 장미. 모든 것들을 버려 긍지를 손에 넣었고, 그 긍지로 살아가지 못할 것도 없지만,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다시금 외롭다고 생각했다. 물론 서툰 그에게 다가 와주는 자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알바피카는 말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나에게 다가오지 마, 라고. 이것이 자신의 스승이 느끼던 감정인가 생각해버려, 가슴 안쪽이 조금 따끔거리는 것을 알바피카는 느꼈다.
저는 당신의 외로움을 제대로 지워주었던 것일까요.
제 외로움은 지워질 수 있을까요.
무리, 라고 또 다른 자신이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각오는 서글프고 부정적인 감정은 강해, 혼자 있을수록 힘들어져, 굳게 먹었던 마음이 스르륵 풀려간다. 각오라고 생각했던 것은 어쩌면 체념이었을지도 모른다. 포기한 채 흘러가는 마음을 붙잡듯 주먹을 꾹 말아 쥐고. 손가락 끝에 닿았던 온기는 아직 기억에 남아있는데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이 피는 자신의 긍지, 하지만 그와 공존하는 고독감. 긍지를 버리고 타인과 어울릴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그렇다고 고독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되어버린다. 지독한 이율배반, 모순된 감정을 안고 끝끝내 알바피카가 선택하고야 마는 건 긍지가 되어버린다.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스승을 계속 떠올리며 알바피카는 몸을 둥글게 움츠렸다. 지금 혼자 있을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다행이야.
“알바피카? 무엇을 하고 있나요?”
갑작스레 목소리가 들려 알바피카는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돌아본 그곳에 크고 작은 인영이 서 있다. 누구, 인지는 돌아보기 전부터 알아채고 있었다. 신성하면서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흘러나오는, 이런 소우주를 가진 자는 분명히 이 세계에 단 하나밖에 있지 않을 테니까.
“─아테나.”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시지포스의 모습까지 확인하고, 변명하듯 알바피카는 아무것도, 라며 조금 얼버무렸다. 무례한 태도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도 타박하지 않는 것을 기회 삼아 말을 돌렸다.
“그보다 아테나야말로 어쩐 일이십니까. 외출, 입니까?”
알바피카의 말에 사샤가 조금 즐거운 듯 웃었다. 천진난만한 미소에 그는 눈귀를 조였다. 이럴 때의 아테나는 정말 그 나잇대의, 14살의 어린 소녀처럼 보여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곤 했다.
“아론 오빠가 또 텐마를 멋대로 데리고 나가서요. 그래서 술래잡기 중─이라고 할까요.”
문자 그대로 방울 같은 목소리로 아테나가 얘기한다. 숨길 생각조차 없어, 말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넘실거려 이어 나와야 할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비견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지만,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참람하는 외로움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곤 한다. 그래, 말하자면 부러움이다. 질투하는 것도 하지 못해, 동경만이 가능한, 한없이 추잡하고 어리석은 생각.
이런 것을 생각해버리고 마는 자신이 싫다. 그런 그의 속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듯 사샤가 아까와는 다른 미소를 알바피카에게 보인다. 소녀는 어느새 자애로운 여신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포용력 있는 웃음에 들켰다는 것을 직감하며, 동시에 알바피카는 묘하게 안도하는 감정을 느끼며 둘에게서 시선을 미끄러트린다. 그러니 자신을 피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무적으로 대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알바피카에게 가능한 것이니까.
하지만 바람은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아, 사샤가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와 그의 손을 덥석 쥔다. 반사적으로 떨쳐내려고 했지만 무른 솜과 같은 소우주에 싸여, 옴짝달싹 못 하게 되어 알바피카는 황망히 아테나를 바라보고, 이어 뒤에 물러서 있는 시지포스를 바라보았다. 내심 상대가 불쾌하지는 않더라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했다. 죽은 뒤까지도 아테나를 지키기로 맹세했다던 시지포스는 그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부활 후 다른 자들처럼 혼란도 겪지 않고 바로 아테나를 수호하러 달려갔었다. 그런 남자니까, 이 위험한 상황을 걱정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그런데도 시지포스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괜찮다는 듯. 미소에 이끌리듯 알바피카는 다시 사샤를 바라보았다.
“계속 말하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소녀의 수줍음과 어머니의 자애로움이 공존하는 아테나는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전부터 전하고 싶었던 말과, 말로는 도저히 전해지지 않을 마음을 가득 담아.
“외로워하지 말아 주세요. 알바피카.”
알바피카가 눈을 크게 뜬다. 아랑곳하지 않고 사샤는 말을 잇는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들은 마음으로부터 닿아 있습니다. 부디 자신을 고립시키지 말아 주세요. 그 무엇과도 상관없이 당신은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이 관계있다고 한다면, 위험하다고 말한다면 이렇게 답해드리죠. 독혈 같은 거, 무섭지 않아요. 설령 독혈이 무서운 것이라 하더라도 당신이 그것으로 우리를 해할 것이 아니라 지킬 것임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닿아도 괜찮아요.”
상냥하니까요, 당신은.
부정을 금하는 단호한 말이 떨어져 내렸다. 알바피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 손을 맞잡아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떨쳐내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살짝 마음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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