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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머리카락이 완만하게 흔들렸다. 그 움직임에 따라 황금색이 찬연하게 빛을 바꾼다. 마치 모래사장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과 같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압도적인 아름다움. 그렇지만 그걸 지켜보는 사라의 속은 도무지 편할 수 없었다.
머리카락의 주인은 샤카다. 즉, 사라는 샤카에게 딱 붙어있단 소리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덜렁 업혀있다. 샤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에 미세한 진동이 울렸다.
이렇게 남자에게 업힌 게 벌써 세 번째다. 고작 세 번째?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첫 번째랑 두 번째는 전에 명계에서 시류에게 업힌 거니 벌써가 맞다. 이제껏 남자와 별로 얽힌 적 없는 순결한(?) 몸이었는데 성역에 온 이후로는 어쩐지 여러 의미로 남자와 얽히는 일이 많아지는 것 같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한숨이 나온다. 머리는 버릇처럼 현실도피를 시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해졌단 사실이 슬프다. 사라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흘러넘치는 한숨을 막는 것은 이미 불가능에 가까웠다.
뇌리에 사태를 이렇게까지 몰고 간 남자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굽슬거리는 갈색 머리카락, 녹색과 푸른색이 적절하게 섞인 눈동자, 제 형과 쌍둥이처럼 똑 닮은 외모. 사자좌─레오─의 아이오리아.
얼굴을 떠올리니 더 화가 난다. 여태까진 별다름 잡음 없이 지낸 사이지만 그래도 사라는 개의치 않고 상상 속의 남자에게 분노를 쏟아부었다.
‘사람을 버리고 가다니 너무하잖아요, 아이오리아!! 아이오로스에게 꼭 일러줄 거야!!!!’
이야기는 30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아무 일도 없던 하루였다. 게다가 무슨 기적인지 항상 집무실에 가득 쌓여있던 서류도 바닥을 내보였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놀라긴 했지만 모처럼의 휴가다. 사라는 양심에 거리낄 것 없이 느긋하게 여가를 즐기기로 했다.
일단은 쇼핑이었다. 딱히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일단 살 게 있었으므로 아테네 시내로 나갔다. 별로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쇼핑은─거진 윈도쇼핑이었지만─ 의외로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되었다. 나간 김에 단 음식도 실컷 먹고 왔다. 동생들에게 줄 케이크도 샀다. 거기까진 좋았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건 성역에 돌아왔을 때였다. 이상하게 콜로세움 쪽이 시끄러웠다. 그런 건 무시하면 좋았을 텐데. 쓸데없는 호기심이 사라를 유혹했다.
콜로세움에 들어섰을 때, 사라는 소란의 이유를 금방 이해했다. 넓은 공간 한가운데 아이오리아와 미로가 대련을 하고 있었다. 사라에게는 사고뭉치에 말썽꾸러기라지만 실버 이하의 세인트들에게는 더없는 선망의 대상인 남자들이다. 둘 중 하나가 얼굴만 내밀었어도 상당히 시끄러웠을 텐데 대련까지 하는 거라면 두말 할 것도 없다.
골드 세인트들이 움직일 때마다 공기가 고조됐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본 사라는 조용히 물러나려고 했다. 호기심이 충족됐으니 더 이상 남은 흥미가 없었다. 어차피 흥미가 있었더라도 일반인인 자신으로서는 둘의 움직임을 제대로 알아볼 수도 없었겠지만.
사고는 그때 일어났다.
뭐가 실수였을까. 굳이 말하자면 세인트의 대련이 일반인의 인지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걸 잊어버린 게 실수, 라기보다는 그냥 전적으로 아이오리아의 실수였다.
아이오리아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동시에 사라의 근처에 있던 기둥이 무너져 내렸다. 순간 숨이 멈췄다. 기둥이 제 가까이 쓰러지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짧은 호흡 끝에 사라는 어설프게나마 뒤로 물러설 수 있었다. 스스로 한탄하고 싶을 정도로 느린 움직임이었으나 다행히 기둥은 아주 약간의 차이로 사라를 비껴 나갔다.
물론 모든 게 잘 풀린 건 아니었다. 급히 움직이느라 발목을 크게 삐었다. 욱신거리는 게 아주 제대로 다친 것 같았다. 나중에는 발목이 팅팅 부어오를 거라고 사라는 예상했었다.
더불어 동생들의 웃는 얼굴을 기대하고 사 온 케이크까지 완벽하게 뭉개졌다. 사실 사라는 발목을 다친 것보다 이게 더 열 받았다.
곧 이변을 알아채고 아이오리아와 미로가 달려왔다. 일반인을 말려들게 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아이오로스에게 혼날 게 걱정되었는지 둘─특히 아이오리아─의 안색이 새파랬었다. 기둥에 깔려 죽을 뻔했던 사라보다도 더.
둘이서 한참을 허둥거린 끝에 결국 아이오리아가 사라를 업고 교황의 거처까지 올라가기로 합의가 났다. 본인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결과였지만 사라는 겸허히 받아들였다. 어차피 자신에게 나쁠 건 없었으니까.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이오리아에게 악의가 없었던 것은 안다. 따지고 보면 그냥 사고일 뿐이다. 발목을 다쳤긴 했지만 죽을 뻔했던 걸 생각하면 오히려 싸게 먹힌 편이었으니까. 아이오리아와 미로의 행동도 호들갑이 지나치긴 했지만 결국 자신을 위한 거였으니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 좋았다.
다만 사라는 잊고 있었을 뿐이다. 샤카의 존재를.
당연한 말이지만 교황의 거처까지 올라가려면 반드시 처녀궁을 지나야 한다. 그리고 처녀궁엔 샤카가 항시 거주 중. 결국 아이오리아+사라와 샤카는 처녀궁에서 엔카운터.
어떤 대화도 없이 다짜고짜 눈싸움이 펼쳐졌다. 샤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도 않았었다. 어차피 샤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젠 무슨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않을지도 모르는 배짱이 사라에겐 생겼다.
눈싸움이 벌어지고 정확히 12초 후 아이오리아가 꼬리를 말았다. 댁이 그러고도 성역이 자랑하는 황금 사자입니까!! 아니, 그 이전에 남자입니까!! 라고 사라는 속으로 포효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체는 이미 정중하고도 빠르게 샤카에게 옮겨지고 난 후였다.
그리하여 지금에 이른다.
“……무겁지 않나요, 샤카.”
조용히 말을 걸자 되돌아오는 대답이 쌀쌀맞진 않았지만 단호했다.
“전혀 문제없다.”
곧 죽어도 가볍다는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긴 샤카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무겁다는 확답이 나오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와 상관없이 불편함은 시시각각 증가하고 있다. 역시 남자에게 업혀있는 건 힘들단 말이지. 그나마 공주님 안기를 당하지 않은 게 위안이긴 했다. 어차피 소설에서나 나올만한 그런 로맨틱한 일을 당할 이유가 없지만. ……없나? 없겠지?
사라는 몸을 꼼지락거렸다. 그럴 때마다 아래서 남자의 신체가 느껴졌다. 이상한 소리가 아니다. 딱딱한 뼈의 감촉이 느껴졌단 소리다. 사라는 이제 참을 생각도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를 듣고 샤카가 걸음을 멈추었다.
“샤카?”
샤카는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을 뿐이다.
“아이오리아에겐 얌전히 업혀 있었으면서 어째서 그렇게 불편해하는 것이냐.”
“어째서냐니…….”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 사라는 간신히 대답을 뽑아냈다.
“……샤카랑 아이오리아는 다르잖아요.”
뭐가 다르냐면 체격이 다르다.
아이오리아는 무척이나 건장한 체격이다. 옷 너머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발달한 근육, 혈기왕성함.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어딘지 모르게 힘이 깃들어있다. 그야말로 약동하는 맹수 그 자체. 그러니 잠깐 업힌 것 정도로는 죄책감 따윈 들지 않는다. 오히려 평소에도 좀 업고 다녀줬으면 할 정도다.
반면 샤카는 아이오리아와 멋들어지게 대조될 정도로 가느다란 체격이다. 평소에도 자신보다 얇은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직접 업혀보니 사실인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가느다란 정도가 아니라 거의 거식증 수준이다. 세인트인 만큼 겉보기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심히 걱정될 정도다. 성역에서는 밥도 안 주나요?
물론 이 모든 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혹시 모를 콤플렉스를 건드리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샤카가 화내면 무서운걸.
느닷없이 몸이 덜컹 흔들렸다. 사라는 3초 후에야 자신이 샤카의 등에서 내려졌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새 샤카가 자신 앞에서 빤히 마주 보고 있다.
“……네가 날 좋아하지 않는 건 알고 있다.”
“……네???”
아니, 갑자기 이건 또 무슨. 허나 반박할 새도 없이 샤카가 말을 이어갔다.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이겠지.”
알면 좀 잘하시지 그러셨어요. 저도 모르게 흘겨보는 모양새가 된다. 샤카는 그런 불만을 시원스레 넘겼다.
“하지만─”
눈앞에서 금색 속눈썹이 떨리며 천천히 눈꺼풀이 열렸다. 이 세상 어떤 보석보다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가 사라를 옴짝달싹도 못 하게 잡았다.
“역시 맘에 들지 않는군.”
샤카가 웃는다. 비틀림 하나 없이 시원시원한 웃음이었다. 더불어 행동도 시원시원했다. 말을 이해도 못 하고 멍하니 서 있는 사라를 내버려 둔 채 그대로 자리를 뜬 것이다. 잘 보니 어느새 교황의 거처에 다다라 있었다.
뒤돌아보니 샤카는 이미 저만치 점이 되어가고 있었다. 기다란 머리카락이 황금색 꼬리를 끈다. 그를 바라보던 사라는 무심코,
“……헤?”
얼빠진 소리를 냈다.
예의 일이 있고 나서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샤카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갑작스럽고 의미를 알 수 없으면서도 묘하게 배려하는 것 같은 태도. 이쯤 되니 당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자신을 놀리는 것 같다고 사라는 생각했다. 그 정도로 변함없는 나날이었다.
혹시 그냥 해본 말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리 단순히 생각하기엔 뭔가 여러 가지로 걸리는 게 많았다. 게다가─
‘뭔가 엄청난 오해도 하고 있는 것 같고 말이지.’
그때, 샤카는 자신이 그를 싫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도 거의 단정에 가깝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아니, 그야 뭐……, 나도 딱 잘라 부정은 못 하겠지만.’
제 반응 탓도 있으니 그리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역시 너무하다 싶은 마음도 동시에 들었다. 이기적인 생각이란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이게 사라의 본심이었다.
사라는 쪼그려 앉은 채 턱을 괬다. 눈앞에 탁 트인 성역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지만 속은 그러지 못했다. 상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계속해서 생각나는 건 금색의 한 사람. 누군가만 생각할 수밖에 없다니, 마치 저주에라도 걸린 것 같다.
그대로 하릴없이 시간만이 흘러간다. 결국 몇 번의 결심과 몇 번의 포기 끝에 사라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이제 자신에게 남은 건 누군가에게 상담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야?”
“응.”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생들의 표정이 저마다 오묘하게 변했다. 도대체 나에게 뭘 바라는 걸까, 여신이시여,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등. 가장 착한 슌마저도 지극히 난처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모든 변화를 지켜보던 사라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애들아, 표정에 다 보이거든?”
“……아, 실수.”
그제야 황급히 수습하지만 이미 서로 볼 건 다 보고 난 뒤다. 사라와 브론즈 세인트들은 서로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큼, 그래서 무슨 상담을 하고 싶은데?”
세이야의 물음에 사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샤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건 생각하는 것만큼 손해야.”
저 말 다른 어디에서도 들은 것 같다. 예를 들면 웃는 얼굴이 상냥한 아리에스의 모 씨라든가. 거참, 브론즈 세인트들에게도 똑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다니 샤카도 대단하다.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동생의 말에는 심각하게 동의하고 있었지만 사라는 애써 그 말을 듣지 못한 척했다. 다른 일이라면 얼마든지 그래 줄 용의가 있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러고 싶지만 아무래도 이번엔 좀. 딱히 뭐가 문제라거나 하는 생각은 안 드는데 심정적으로 걸리는 게 많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싫어한다는 얘기가 나올 타이밍이 아니었단 말이야.”
사라는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시류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누나는 그때 다르다 말했다고 했지.”
“응.”
“정확한 내용은 설명 안 했고?”
“……그랬지?”
그게 뭐가 문제가 되냔 식으로 쳐다봐주자 시류가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도 설명해주기 정말 싫다는 티를 팍팍 풍기고 있다.
“다르다는 건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잖아. 아이오리아는 좋은데 샤카는 싫어서 그렇다는 식으로. 그러니 그런 말이 나온 거겠지.”
“…………에?”
사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이야나 슌이나 효가를 보니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사라는 속으로 무척이나 경악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 맹점이 있었구나. 자신이야 그런 식의 발상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말이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건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했는데. 사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하게 샤카에게는 평소의 주의가 통하지 않았다. 편해서 그런가 아니면 그런 게 전부 소용없는 돌발적인 사람이라 그런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복잡해진다. 연달아 한숨을 내쉬자 옆에서 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왔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누나?”
어떡하긴. 해야 할 건 하나밖에 없다. 사라는 마지막 한숨을 내쉬었다.
“……사과하고 오해를 풀어야지, 뭐.”
즉, 샤카랑 대면을 해야 한단 소리다. 또 무슨 엉뚱한 꼴을 당할지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다. 운명이란 원래 다 그런 법이다.
다만 반대 의견도 확실히 있었다.
“별로 사라가 사과할 일은 없지 않을까요.”
“그래, 어차피 샤카가 멋대로 오해한 것뿐이고.”
쉽게 예상할 수 있듯 반대한 건 사지타리우스의 아이오로스와 아리에스의 므우였다. 도대체 어디서 얘기를 듣고 왔는지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이렇게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게 참으로 신속하고 정확하다. 얼굴도 분명 부드럽게 웃고 있는데 압박감이 장난 아니다. 사라는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리며 소심하게 반박했다.
“아니, 그래도 오해하게 한 건 제 잘못이고…….”
물론 씨알도 안 먹힐 소리다. 말함과 동시에 아이오로스의 웃는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그렇게 걱정되면 내가 샤카에게 말해둘까?”
뭘 말해두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떻게 말해둘 것인지는 너무 잘 상상이 된다. 필시 아이오리아나 미로에게 말하는 것과 비슷하게 몸으로 대화하겠지.─물론 샤카가 순순히 당할지 여부는 둘째 치고─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남는 건 떠밀려오는 서류와 아테나의 압박과 사가의 위경련과 자신의 두통밖에 없다. 생각만 해도 속이 쓰리다.
결국 그런 미래를 막기 위해 사라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역시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해결할게요!!!!”
그리고 대답도 듣지 않고 그대로 줄행랑쳤다.
어쨌든 사라는 샤카에게 사과하기 위해 그대로 처녀궁을 향해 내달렸다. 그러나 도중에 중대한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어떻게 사과하지?’
기실 사라는 이때까지 가벼운 다툼이나 장난으로 사과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깊은 감정의 골─이라기엔 애매하지만─ 때문에 사과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는 사라의 성격이 나쁜 탓이라기보다는 주변과 제대로 된 교류 없이 살아온 인생 탓이다. 사실 그동안 너무 히키코모리처럼 살아오긴 했지.
사라는 새삼 반성하며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후회해 봤자 돌아오는 건 없다. 그러니 미래를 향해 나아갈 뿐. 때마침 앞에 있는 것은 천갈궁이다. 사라는 망설이지 않고 천갈궁을 쳐들어갔다.
“……그래서 찾아온 게 우리라고?”
떨떠름한 얼굴로 미로와 카논─친한 사이라고 듣긴 했는데 같이 있는 걸 본건 이번이 처음이다─이 질문한다. 사라는 확인해 주듯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딱히 좋은 건 아닌데 마땅한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어요. 타협할 수밖에.”
“너, 은근히 막말한다?”
“……죄송합니다. 카논이 있다 보니 무심코.”
“…………이런 취급 받고 살았냐?”
미로가 어처구니없음과 놀림을 적절하게 섞어 묻는다. 얼결에 ‘이런 취급’받는 게 당연하게 된 카논은 으르렁거리며 반박했다.
“닥쳐.”
당연히 미로도 얌전히 욕을 들어먹고만 있지 않는다. 그의 눈썹이 슬쩍 들렸다. 숫제 싸울 기세다. 초딩들처럼 투덕거리는 둘을 보고 사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라면 눈치 봐가면서 슬쩍슬쩍 구경해 줄 용의가 있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뒤가 켕기는 건 빨리빨리 치워놓는 게 좋으니까. 결국 사라는 별수 없이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아무래도 좋은데 제 문제부터 좀 해결을 해주지 않으시겠어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둘의 움직임이 동시에 멎는다. 저렇게 호흡이 딱 맞는 걸 보니 친구라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나 보다.
심지어 표정까지 똑같다. 니들이 하는 짓을 보는 건 참 재밌어 죽겠는데 귀찮으니까 우리까지 끼어들게 하지 말라는 표정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면 몇 번이고 본적이 있는 데다 심지어 입으로 직접 들은 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 사라는 엄청 열 받았었다. 물론 아무 말도 못 하고 넘어갔지만.
하지만 불평불만을 하면서도 같이 고민해 주는 게 이 남자들이다. 끙끙거리던 미로가 이내 뭔가 떠오른 듯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폈다.
“애교! 애교라도 부려보는 게 어때?”
자신의 말이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모습이다. 그래서 사라는 진지하게 되물었다.
“저한테 애교를 바라시는 건가요.”
“………………미안.”
미로의 어깨가 축 떨어진다.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 같았기에 사라는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 뭐, 애초에 사과를 하는 데 애교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부터 이상하지만. 자기가 샤카랑 무슨 사이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옆에서 그런 자신들을 보고 카논이 같잖다는 듯 코웃음을 친다. 마치 자신들을 업신여기는 듯한 모습이 묘하게 사람들을 울컥하게 만든다. 카논이 하는 짓이니 더욱 그렇다. 사라는 들끓는 열을 참지 못하고 소심하게 꿍얼거렸다.
“……저런 사람이 꼭 나중에 제일 엉뚱한 소리 하고 있지.”
허나 카논은 쪼잔하게도 그 조그만 중얼거림 하나 놓치지 않았다.
“호오? 배짱 좋게 욕을 하는군. 나랑 싸우고 싶나 보지?”
“설마 그럴 리가요. 맘에 안 드는 점이 있다면 즉시 사죄드리겠습니다.”
사라는 당장 꼬리를 말고 항복했다. 이 남자는 한다면 한다는 남자다. 물론 일반인인 자신에게 세인트나 제너럴로서의 힘은 쓰지 않겠지만 꿀밤 몇 대 정도는 맞을 것이다. 아니면 뺨을 꼬집히든가. 어느 쪽이든 더럽게 아팠다.
게다가 그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도 문제다. 동생들이나 므우 정도라면 별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이오로스는 좀.
정말로 팔불출 오빠 행세를 할 생각인지 아이오로스는 꾸준히 사라를 과보호해 오고 있었다. 물론 과보호라고 해봤자 주변에서 사라를 괴롭히면 그걸 막는 것뿐이고, 그것도 상대가 샤카가 아닌 이상 과잉대응은 하지 않지만─아이오리아와 미로를 구타(?)한 것은 그냥 형 또는 선배로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역시 부담스럽다고.’
가슴도 콕콕콕콕 찔리는 게 잘못하다 병 걸릴 것 같다. 오빠란 존재는 역시 힘들다. 차라리 카논 같은 성격이면 또 모르겠는데.
상념 사이 잠깐 빈틈이 생겼다. 그를 놓치지 않고 전갈좌의 남자가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그래서? 넌 뾰족한 수가 있나 보지?”
일단 묻고는 있지만 미로의 목소리에는 별다른 열의가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다른데 정신이 팔려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카논의 시선이 그런 미로에게로 향했다가 다시 사라에게로 옮겨간다. 바다와 닮은 눈동자는 생각보다 상냥한 빛을 띠고 있었다. 얼핏 희미한 웃음이 스쳤다.
“바보 같긴. 그냥 사과하면 되잖아.”
“네?”
“사과에 방법 같은 게 필요할 리가. 그냥 진심으로 사과하면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닌가?”
딱히 빈정거리는 게 아닌, 순수한 충고였다. 순간, 사라는 머리를 한 대 후려 맞은 것 같았다. 놀라 크게 뜨인 눈동자가 오라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카논을 잡는다.
“……카논도 그런 멀쩡한 말을 할 때가 있네요.”
“좋아, 싸우자.”
“진정하시죠. 인류 공통의 자산이자 보다 평화로운 방법인 대화를 놔두고 왜 폭력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하시나요.”
“세인트에겐 말보다 주먹이 먼저 아닌가?”
“전 세인트가 아닌데요.”
“미안하게 됐군. 난 세인트에다 제너럴이기도 해서 말이지.”
결국 꿀밤형이 떨어졌다. 아파서 툴툴거리자 이제는 머리를 꾹꾹 누르기 시작한다. 아프지는 않은데 어째 키가 작아질 것 같다. 반항도 당연히 무력화. 귓가로 즐거운 듯한 카논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이끌려 사라도 무심코 작게 웃었다.
사라와 카논은 그렇게, 옆에서 미로가 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도 모르고 그 후로도 한동안 실랑이를 계속했다.
“그래서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데?”
“네?”
실랑이 도중 카논이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남자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진다.
“샤카에게 사과하러 가는 거 아니었나?”
“아…….”
그제야 사라도 최초의 목적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카논이랑 미로에게 상담을 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그것 때문이었지. 하마터면 까먹을 뻔했다.
물론 말을 한 당사자인 카논도 조금 전까지 까먹고 있던 것 같지만 사라는 굳이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지적하고 싶지 않았다. 더불어 당신이 붙잡아서 못 가고 있었는데요, 하는 반박도 꺼내지 않았다. 인간이란 무릇 자신의 몸이 소중한 법이다. 사라처럼 소심한 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카논이 낮게 웃는다. 남자의 투박한 손끝이 쿡 볼을 찔러왔다.
“현실도피 하지 마라.”
느닷없이 모든 걸 꿰뚫는 말이었다. 사라는 속눈썹을 내리까는 것으로 그의 충고를 선선히 받아들였다. 원인은 차치하고 저 충고가 옳지 않다고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
충고에 따라 사라는 두어 걸음 물러섰다. 삐딱한 미소를 짓고 있는 카논의 얼굴과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전히 기묘한 표정을 띄우고 있는 미로의 얼굴이 보인다. 사라는 그들에게 손을 살랑살랑 흔들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상담 감사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처녀궁을 향해 내달렸다.
가까이에서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샤카는 이 기척의 주인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절대로 착각할 리 없는 상대, 사라다. 그녀가 등 뒤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사라의 기척은 언제나 야생동물과 닮아 있다. 그 모습이 확실히 보이면서도 결코 가까워지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언제 모습을 보였냐는 듯 금방 사라져버린다. 그러면서도 완전히 떠나지 않고 경계하듯 주변을 맴돌 뿐인, 그런 안타까운 느낌.
그래도 샤카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반절은 고의였고 나머지 반절은 어쩔 수 없음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잘 몰랐던 것이다.
샤카는 문득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의 꼴이 웃겼다.
기실, 원래의 자신이라면 고작 이런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 최소한 이리 어정쩡한 태도는 보이지 않았으리라. 헌데 사라만 얽히면 제 생각대로 움직이는 게 불가능했다. 사고가 빛이 바래고 그저 이끌리는 대로. 마치 무력한 어린아이가 되기라도 한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이랬다. 사라를 처음 만났을 때, 거리에 흘러가는 인파 속에서 그녀를 발견했을 때, 거듭된 우연에 마음이 움직였을 때. 그때부터 샤카는 이미 사라에게 휩쓸려가고 있었다.
처음 바랐던 건 아주 사소한 거였던 것 같다.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 그리고 지금 그 소망은 생각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단지 곁에 있는 걸로 만족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라는가. 거기에 대한 답 또한 알 수 없다. 그래서 샤카는 사라에게 애매하게 행동하고 만다. 만족하지 못하니 움직이고, 그러나 알지 못하니 무언無言으로 요구하고. 그야말로 불합리의 극치.
어쩌면 바라는 건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그리하듯 자신과 마주 보고, 시선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고, 마지막에 웃어주기를.
‘……생각만큼 쉽지는 않지만.’
자신의 실수임은 인지하고 있다.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 또한. 제일 신에 가까운 남자라는 위명이 참으로 쓸모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이란 거겠지.’
제아무리 신에 가깝다 해도 결국 신은 아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남들과 조금 다른 인간일 뿐이다. 커다란 마음 하나에 옴짝달싹 못 하는, 그것마저도 싫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샤카.”
겨우 마음을 정했는지 그제야 사라가 움직였다. 부름에 따라 샤카도 천천히 몸을 돌렸다. 눈을 감고 있어도 광대한 코스모는 이미 실제로 보는 것 이상으로 또렷하게 그녀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내려 깐 시선도, 맞잡은 채 꼼지락거리고 있는 손끝도.
샤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익숙한 침묵의 조각이 피부를 찌른다. 다시 머뭇거림을 반복하고 나서야 사라가 입을 열었다.
“어, 그, 저기, 저번에 아이오리아랑 일이 있었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런 일이 있었지. 사라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샤카는 그 일을 거의 잊어가고 있었다. 물론 질투했고, 화가 나서 조금 심술부린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사라의 잘못이 아니었으므로.
샤카는 자세를 약간 느슨하게 풀었다. 무언을 무슨 뜻으로 받아들인 건지 사라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때 제가 좀 실수를 한 것 같아서…….”
어지간히 마음에 걸렸는지 사라가 평소와 달리 길게, 열성적으로 당시의 일을 설명한다. 샤카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물론 겉으로는 경청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신경 쓰는 건 아니었다. 샤카가 주의하는 건 단지 사라가 자신에게 열중하고 있다는 것, 오로지 그것뿐.
“음, 그러니까…… 죄송했습니다.”
흐린 목소리로 사과가 고해졌다. 샤카는 일말의 아쉬움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신경 쓸 것 없다.”
“……정말로요?”
“그래.”
사라가 안도하는 기색이 선명하다. 쓴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사람이라 모든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알고 있음에도 새삼 확인할 때마다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언제나 예측을 뛰어넘는 것도 사람의 몫이었다.
“그러면 한 가지 오해는 정정해 주세요.”
갑자기 사라가 불쑥 몸을 내밀었다. 너무 놀라 샤카는 제때 반응하지 못했다.
“……무얼 말이냐.”
“제가 샤카를 싫어한다는 거 말이에요.”
잠깐 호흡이 멈췄다. 샤카는 무의식중에 눈꺼풀을 열었다. 바로 앞에서 갈색 눈동자가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다. 본인은 평범하다 말하지만 사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눈동자가.
“그야 저도 바로 부정하긴 힘들고,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것도 힘들고, 솔직히 꺼려지고 만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만요.”
“……욕인가?”
“……아니, 그건 아니지만. ……사소한 건 좀 넘어가 주세요.”
절대 사소한 건 아닌 것 같았지만 샤카는 일단 사라의 말에 따라주었다. 침묵 속에서 어색하게 헛기침 소리가 울렸다.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딱히 당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좋아하고 있다고요.”
말을 끝맺으며 사라가 시선을 피한다. 천천히 그녀의 볼이 달아올랐다. 그 뺨이 붉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샤카는 문득 웃음을 터트렸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러고 싶은 기분이었다. 사라가 한 말이 자신이 원하는 바와 조금 다른 뜻이라 할지라도.
“그래. 나도 그러니라.”
그것으로 족했다.
덤 1.
필시 일이 원만하게 끝나서 안심한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되질 않는다. 무심코 샤카에게 쓸데없는 얘길 지껄여버린 일 따윈.
“다행이네요. 여차하면 미로가 말한 대로 애교라도 부려야 하나 싶었는데 말이죠.”
“……뭐?”
티가 나게 남자의 몸이 움찔거린다. 아차, 싶었다. 허나 예상과는 다르게 샤카는 간절히 애원했을 뿐이다.
“…………사라.”
“…………네.”
“부디 나를 시험하지 말거라.”
“…………………………네???”
덤 2.
“미로.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응? 뭔데?”
“한 번만 멱살 잡고 흔들어도 되나요?”
“……뭐?”
미로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사라를 바라보았다. 이건 또 무슨 재미없는 농담이야. 하지만 아무래도 농담이 아니었던 듯하다. 평소에도 진지하기 짝이 없던 사라의 얼굴은 지금 평소의 수배로 진지했다. 평소보다 더 음울한 분위기는 옵션이다.
이거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진 못할 것 같다. 게다가 찔리는 것도 많았고 찝찝한 것도 많았다. 덕분에 미로는 딱 잘라 거절의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일단 이유나 알자.”
“저번에 애교를 부리는 게 어떠냐는 미로의 제안을 무심코 말한 이후로 샤카의 말 없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허?”
그게 내 탓이냐?! 라고 반박하고 싶었다. 허나 말하기도 전에 사라가 잽싸게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아기 고양이의 펀치만큼이나 가렵지도 않다. 거기에 사라가 뭐라고 잔뜩 외치면서 화라도 내면 혼나는구나 싶겠는데 그런 것도 없고 계속 무표정인 채다. 당연히 그녀의 얼굴에선 개운함의 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자신을 흔드는 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한 10초? 그 정도였다.
곧 사라가 손아귀에서 힘을 푼다. 여전히 표정의 변화는 없다. 오히려 허탈함이 감돈다. 한숨과 함께 조용히 내려가는 어깨를 보다 미로는 쭈뼛쭈뼛 물었다.
“……더 흔들래?”
슬슬 아이디어가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참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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