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시지포스라 소개한 남자는 골목에 숨겨져 있던 조그만 피자 가게로 텐마를 데려갔다. 워낙 구석진 곳에 있어서 맘먹고 찾으려고 해도 쉽게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곳이었다. 건물 벽돌에 숨겨진 것 같은 낡은 갈색 문 때문에 더욱 그랬다. 문 위에 자그마한 간판이 없었더라면 가게라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 으슥한 곳으로 데려갔을 땐 낯선 사람은 함부로 따라가지 말라는 도코의 충고가 머리에 떠올랐으나 텐마는 그를 애써 무시했다. 배가 고픈데 별수가 있나. 여차하면 한 대 때리고 도망가면 될 일이고.
다행히도 가게는 매우 정상적인 곳이었다. 은은한 조명, 부드러운 색의 벽지, 푹신한 의자와 아기자기한 장식들. 여기저기를 둘러보아도 음식점보다는 카페 같은 모습이다. 실제로 벽에 걸린 커다란 메뉴판에도 반은 음료의 이름이 쓰여 있다.
텐마는 익숙한 듯 걸음을 옮기는 시지포스를 따라가서 둘의 맞은편에 앉았다. 긴 의자 한쪽에 놓여있는 쿠션에 독특한 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곧 다가온 점원에게 적당히 주문한 시지포스가 침묵에 빠졌다. 설명할 것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모습인지라 텐마는 별다른 딴지를 걸지 않고 먼저 나온 음료수만 홀짝였다. 옆으로는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아까부터 부담스럽게 바라보는 소년─레굴루스란 이름이었다─과 눈을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주문한 음식은 생각보다 금방 나왔다. 테이블 위로 접시가 놓이는 것과 동시에 시지포스가 입을 열었다.
“텐마, 라고 했던가?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가 허무맹랑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전부 사실이라고 믿어줬으면 좋겠는데.”
텐마는 대답하는 대신 피자를 한 조각 들어서 베어 물었다. 토마토소스에 감자와 베이컨, 양파의 간단한 토핑만 올라간 피자는 생각보다 담백하고 맛있었다. 한 조각을 다 먹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에도 시지포스의 시선은 계속 이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레굴루스 쪽은 이제 이야기야 아무래도 좋은지 피자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지만.
다음 조각을 집어 들며 텐마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시지포스가 가볍게 숨을 내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세계에는 요정이나 마법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고 있어. 동화 속에나 나오는 용과 마법사도 물론.”
순간 손이 멈췄다. 설마 갑자기 그쪽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싶어 텐마가 눈만 깜빡이자 시지포스가 역시 믿긴 힘들겠지, 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아무래도 자신의 행동을 믿을 수 없다는 의사 표시로 받아들인 듯하다.
텐마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아까보다 배는 빠르게 두 번째 조각을 해치웠다. 입속으로 억지로 밀어 넣은 탓에 이번에는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그것만으로는 모자라 음료수도 단숨에 비우고 컵을 테이블 위에 세게 내려놓았다. 쾅, 하는 소리가 기묘할 정도로 크게 울렸다.
“아니, 일단 믿는데. 내 동거인도 마법사니까.”
정확히는 마법사 비슷한 그 무언가였지만 굳이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자질이 없다는 소리는 굳이 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크게 보면 틀린 것도 아니니까.
담백한 텐마의 대답에 시지포스가 조금 안도한 것처럼 어깨에서 힘을 뺐다.
“그럼 얘기하기 편하겠네.”
그렇게 말하며 시지포스는 옆에 있던 소년을 손으로 가리켰다. 입가에 소스를 묻혀가며 정신없이 피자를 먹고 있던 레굴루스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 모습이 퍽 태평해 보였다. 뭐냐, 자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저 모습은.
“이 아이의 눈은 좀 특별해서 뭐든 꿰뚫어 볼 수 있거든. 마법으로 모습을 숨긴 요정까지도.”
“헤에~”
시지포스의 말에 텐마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딱히 마법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도코 덕분에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 말이 진실이라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무런 도구나 준비 없이 요정을 볼 수 있는 것은 마법사의 기본적인 자질 중 하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가 자연 상태의 요정일 경우에만 한했다. 만약 정말로 요정이 모습을 감추려 마음먹는다면 어지간한 마법사조차 제대로 된 준비 없이는 상대를 발견할 수 없다. 애초에 그에 상응할 정도로 마력을 가지지 않는다면 시도도 할 수 없겠지만.
그런데 레굴루스라는 저 소년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보는 행위만으로 그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다. 설령 그것이 눈에만 한정된 힘이라 쳐도 역시 굉장하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텐마는 문득 모순점을 발견했다.
“어? 그런데 나는 안 보인다고 하지 않았어?”
“아아, 그래서 이상하다고 한 거다. 그렇지?”
확인하듯 시지포스가 다시 묻자 레굴루스가 손가락에 묻은 소스를 혀로 핥으며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는 방법도 이상해. 보통 모습을 숨기고 있는 녀석들은 실체 뒤에 원래 모습이 비쳐 보이는 데 이 녀석은 뭔가 겹쳐졌다고 할까, 그 겹쳐진 모습도 흐릿하고 제대로 안 보여.”
아아, 과연. 텐마는 두 사람이 보였던 반응을 확실하게 이해했다. 뭐든 잘 보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대로 보이지 않는 녀석이 나타났다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쪽이 더 이상하다. 혹시 수상한 녀석이 아닐까 의심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난 아무런 힘도 없는, 평범한 인간인데?”
“확실히 내게도 그렇게 느껴진다만…….”
시지포스가 어설프게 웃었다. 제대로 된 답이 아니라 텐마는 인상을 찌푸리며 마지막 남은 피자 조각을 낚아챘다. 얼결에 피자를 빼앗긴 모습이 된 레굴루스가 울상을 지었지만 무시. 평소라면 조금은 미안해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저 녀석이 모든 원흉이니까.
우적우적 피자를 분쇄하며 텐마는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이런 소리를 들었다고는 해도 뭔가 바뀐 것 없으니 무시해도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텐마는 그렇게 요령 좋은 성격이 되질 못 했다. 하긴 길을 가다 갑자기 너 사실은 이상한 녀석이야!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무시할 수 있는 인간이 몇이냐 되겠느냐마는.
그렇지만 역시 문외한인 자신이 뭘 알리도 없다. 결국 텐마는 모든 걸 포기하고 테이블 위로 엎드렸다. 일그러진 시야에서 빛이 아른거린다.
그 순간,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짧은 기억이었다. 얼마 전에 꾼 꿈의 조각, 분명히 자신이 경험했으나 기억하지 못하는, 잃어버린 과거의 파편. 사실은 과거인도 확실하지 아닌, 진실인지 아닌지조차 불분명한.
그래도 걸어볼 거라면 그것밖에─
“저기.”
고개만 들어 부르자 둘 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바라봤다. 똑같은 얼굴이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으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기억을 잃은 것도 영향이 있을까?”
“……뭐?”
시지포스가 멍청하게 반문한다. 텐마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니까! 나, 기억상실이라고.”
태평한 발언에 레굴루스의 얼굴이 괴상하게 변한다. 그야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텐마는 조금 상처를 받았다. 그런 척은 했다.
반대로 시지포스는 무언가 짐작이 가는 게 있는 듯 약간 얼굴을 숙이고 생각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겨우 답을 알 수 있는 걸까. 두근두근 기다리고 있자니 기대를 배반하지 않고 얼마 후 시지포스가 고개를 들었다.
“과연. 이유를 알겠어.”
“정말?”
반색하며 묻자 아아, 하고 시지포스가 그제야 제대로 웃어 보였다.
“과거가 없는 인간은 없어. 과거는 너 자신의 일부, 그렇기에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네 일부를 잃어버렸다는 것과 같지. 정확히는 봉인 당했다고 하는 게 옳을까. 또한 봉인은 숨긴 것과는 전혀 달라. 이 세계에서 일시적으로 존재를 말소하는 거다. 그래서 레굴루스는 너의 일부, 과거를 보지 못하고 존재했었다는 흔적만 봤을 거야.”
“………….”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본인은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해 준다고 하는 것 같은데 정작 이쪽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분명 텐마가 마법에 대한 지식이 없는 탓만은 아니었다. 레굴루스도 전혀 이해 못 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원인은 기억상실이고, 그 외에는 별문제가 없다는 것만은 알아들었기에 텐마는 안심했다. 그러니까 나는 전혀 이상한 인간이 아니라고!
문제가 해결되자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면 여기서 노닥거릴 때가 아니었는데. 마침 피자도 다 먹었겠다, 텐마는 주저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얘기는 다 끝난 거지? 난 간다?”
“아, 잠깐. 텐마.”
그대로 나가려 했던 텐마는 갑작스러운 시지포스의 부름에 멈춰 섰다. 이번엔 또 뭐야. 그런 표정으로 쳐다봐 주자 남자의 얼굴에 얼핏 미안한 듯한 감정이 어렸다. 질문하는 것은 전혀 멈추지 않았지만.
“같이 산다는 마법사는 혹시 도코인가?”
“엣…….”
느닷없이 허를 찔려 텐마는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그 반응을 보고 답을 알아차렸는지 시지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근처에 사는 마법사는 대개 남과 잘 교류하지 않으니까. 만약 네가 정말로 마법사와 같이 산다면 얼마 전에 이 근처로 이사 왔다는 도코 밖에 없다고 생각한 건데 맞았나 보네.”
그와는 조금 인연이 있어서 안다고 말하는 시지포스에게 텐마는 뭐어, 하고 애매하게 대답했다. 뭐라 답하려 해도 그가 얘기한 게 전부 사실이니까 딱히 답할 말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설마 길거리에서 시비 비슷한 것이 붙은 남자가 도코의 지인일 줄은 짐작도 못 했지만.
괜히 공기가 거북스러워진다. 그런 분위기를 불식하듯 천사와 같은 남자가 부드러운, 최상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무 신경 쓸 건 없어. 그래도 나중에 정식으로 인사하러 가도 될까.”
“아! 나도, 나도!!”
이제는 가만히 있던 레굴루스까지 끼어든다. 텐마는 간신히 신음을 삼켰다. 갑자기 그런 말을 해도 난 모르겠다든가 내가 아니라 도코에게 말하라든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 말하기 힘들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두 쌍의 푸른 눈동자─특히 심히 반짝이는 레굴루스 쪽─가 심히 부담스럽다. 결국 텐마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 대충 내뱉었다.
“맘대로 해!”
뒤는 전부 도코가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사정도 모르고 있을 동거인에게 모든 걸 떠넘긴 텐마는 그대로 가게를 나가 버렸다.
쿵쾅거리며 문을 나서는 텐마를 보고 시지포스는 슬며시 미소를 억눌렀다. 별다른 이유도 없는데 계속 웃음이 나니 이상한 일이다. 이것도 전부 텐마가 가진 마력일까. 정말이지 독특하고 신비한 소년.
그렇게 느낀 건 자신만이 아니다. 레굴루스도 텐마가 맘에 들었는지 아까부터 계속 싱글벙글 웃고 있다. 마침 같은 또래니까 둘이 좋은 친구가 될지도 모르겠다.
내심 그런 흐뭇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기척이 느껴졌다. 희미하고, 금방이라도 놓쳐버릴 것 같은, 그다지 좋지만은 않은 것이. 허나 보다 확실히 살피기 위해 시지포스가 고개를 들었을 때 기척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착각이었나?
혹시나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 모습이 이상했던 건지 레굴루스가 이름을 불러왔다.
“시지포스? 왜 그래?”
“아니……. 레굴루스, 방금…….”
뭔가 느끼지 못 했니? 그렇게 말하려다 시지포스는 입을 다물었다.
레굴루스의 힘은 어디까지나 보는 것에 한정되어 있다. 물론 다른 감각도 일반인에 비하면 뛰어난 편이지만 보는 것만큼은 아니다. 즉, 실제로 보지 않은 이상 시지포스가 포착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는 아니란 소리다. 어차피 착각일 확률이 높겠다 싶어 시지포스는 그냥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별 흥미가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레굴루스가 순순히 수긍한다. 혹은 철저한 신뢰일까. 내심 안심하며 시지포스는 조카를 재촉해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별다른 자각은 없지만 어쩌면 자신은 제법 피곤한 상태일지도 몰랐다.
허나 가게를 나서려던 순간, 시지포스는 가게 주인에게 그대로 붙잡혀 버렸다.
“저기, 시지포스. 아까 그 아이 뭐야?”
자신의 팔을 꽉 붙들고 있는 그녀의 자주색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또 뭐가 그녀의 흥미를 끌었는가 싶어 시지포스는 상대에게 들리지 않게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소문내고 다닐 수는 없지만 이 가게의 주인 역시 요정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요정의 눈에 뜨여서 좋을 것은 별로 없다. 그녀는 사람에게 지극히 우호적인 편이니 딱히 해는 끼치지 않겠지만 그래도 짓궂은 장난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친다. 텐마에게 다가올 불행한 미래가 쉽게 그려졌다. 호감이 가는 아이지만 본인도 말했듯 힘도 없는 평범한 인간일 뿐인데 어쩌다가.
그런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토해내자 주인이 정말 놀란 듯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어머. 너 정말 눈치 못 챘어?”
“뭘 말이지?”
“그 아이 말이야. 처음에는 너무 희미해서 착각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나갈 땐 진해져서 확실히 알겠더라.”
그러니까 도대체 뭐가. 시지포스가 그리 추궁하기도 전에 그녀가 방긋 웃었다.
“엄청나게 달콤한 냄새가 나, 그 아이.”
순간, 지독히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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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왜 이렇게 길어졌지? 원래는 상, 하로 끝낼 계획이었는데 어쩐지 쓰면 쓸수록 늘어나는 매직☆ .....이란 이유로 하까지 이어집니다. 다만 하는 덕분에 조금, 아니 제법 짧아질 것 같지만.
그리고 혹시나 싶어 말씀드리자면 텐마가 기억상실인 거엔 별 이유가 없... 그냥 나중에 쓰고 싶은 장면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