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가 어두웠다. 눈앞에 있는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어 당황했지만 이내 눈꺼풀이 감겨 있어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눈을 떠보려고 했으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잔뜩 무거워진 눈꺼풀은 뜻대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눈꺼풀뿐만이 아니다. 팔다리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있는 힘껏 팔을 휘둘러봤지만 기껏해야 아등바등하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보려고 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 행동을 멈추었다. 무심코 한숨이 나왔다.
답답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두렵다고 느끼진 않은 건 내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지는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몸은 움직이지 못해도 묶여있지도 않고 등 뒤는 푹신하고, 오히려 무언가 따뜻한 것에 둘러싸여 있다. 마치 소중하게 보호받고 있는 것 같다.
문득 어디선가 여자의 목소리 같은 게 들렸다.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만 당연히 상대의 모습이 보일 리가 없다. ……눈이 떠지지 않는다는 거, 까먹고 있던 건 절대 아니니까.
다시금 불편한 상황을 되새기자 자연스럽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냐고 이거. 도대체 왜 눈이 안 떠지는 거야. 좀 떠져라! 좀!
아. 문득 이마에 무언가 닿았다. 가느다랗고 부드러운, 여자의 손과 같은 게. 아까 들린 목소리의 주인일까. 손끝이 닿은 순간 왜인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게 울컥 치밀어 올랐다. 왈칵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왜 그러니? 울지 마렴.」
당황한 여자가 나를 토닥이기 시작했다. 어르는 손길 역시 내게 익숙하다. 혹시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일까. 그렇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없는데.
그녀의 손은 부드러웠다. 울고 싶은 상황인데도 어쩐지 기분 좋았다. 나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여자가 바라는 대로 웃어 보였다. 조용한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착한 아이네, ───」
뭐지? 마치 노이즈가 낀 것처럼 여자의 말 중 일부분이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것이 아니다. 다른 소리는 명확하게 들리는 데 유독 그 부분만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마치 들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도대체 왜?
그렇지만 그 이유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음 순간 여자가 나를 안아 들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그녀에 비해 지나치게 작다는 것을 깨달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계속 이상한 일들만 반복된 탓일까, 그다지 놀랍진 않았다.
여자가 내 뺨에 자신의 뺨을 비볐다. 고소한 우유 냄새가 났다. 기시감.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혹시, 그녀는─
「잊지 말아 주렴. 언제까지나 사랑한단다, 나의───」
또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의식이 멀어졌다.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보였다. 여기가 어디지, 하고 멍한 머리로 생각함과 동시에 소년은 이곳이 며칠 전에 이사한 집에 있는 자신의 방이라는 걸 겨우 떠올렸다.
소년은 침대에서 부스스 몸을 일으키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잠에서 덜 깬 탓인지 사고가 둔하다. 그러고 보니 자면서 무슨 꿈을 꾼 것 같았다. 그렇지만 대개의 꿈이 그렇듯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이 나는 건 그저─
“……뭐야.”
꿈을 떠올리려한 순간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년은 당황하며 재빨리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축축한 눈물의 감촉에 손가락이 젖어들었다. 뭐야, 도대체 왜.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 본들 이유를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소년은 이유를 찾는 걸 깔끔하게 포기하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대로 창문을 열면 상쾌한 바람이 방안에 가득 찼다.
“으그그─”
바람을 맞으며 소년은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와 동시에 밖에서 소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척 다급한 목소리다. 아무래도 동거인이 주방에서 또 실수를 한 모양이다. 소년은 피식 웃고 동거인에게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방을 나섰다.
자, 이제 새로운 아침의 시작.
그날 꾼 꿈은 잔향만을 가슴에 남기고 사라졌다.
-
결국 저질렀다^ㅂ^ 로캔 마법사AU 소년 발라드(Ballade of the boy)입니다
설정은 천천히 풀어나갈 예정. 사실은 아직 정확한 설정이 정해지지 않았...<< 어쩌면 마법의 탈을 쓴 일상물이라는 게 더 정확할지도. 이번 편도 마법의 마는 하나도 안 나왔고. 그래도 일단 요정들과 얽히는 이야기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