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를 지나고 있던 도코는 우연히 골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발을 멈추었다. 둔탁하면서도 날카롭고 사이사이에 노성이 섞인 소란. 이는 분명 누군가 싸우고 있는 소리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도코는 망설임 없이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친우인 시온의 설교 때문에라도 조금쯤은 고민했겠지만 저 소음 가운데 어린 목소리가 끼어있어서야 그럴 틈도 없다.
도착한 곳에서는 역시나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 셋이 몸집이 조그만 소년 한 명을 둘러싸고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가려져서 소년의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척 봐도 또래끼리의 싸움은 아니다. 그 사실을 인식하고, 도코는 노명이 섞인 포효를 내질렀다.
“네 녀석들!! 무얼 하고 있는 건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그제야 도코의 등장을 알아차린 듯 남자들이 뒤돌아보았다. 남자들은 처음엔 놀란 것 같더니 이내 도코를 확인하고 묘한 안도와 조소가 섞인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깔봐지고 있는 모양이다.
“엉? 네놈과는 관계없잖아! 험한 꼴 당하고 싶지 않으면 썩 꺼져!!”
개중 한 명이 껄렁거리는 걸음걸이로 다가오더니 인상을 잔뜩 쓰며 외쳤다. 겁주려는 생각인 모양이지만 뺨에 주먹 자국이 뚜렷이 남아있어 오히려 우스꽝스럽게만 보인다. 그런 남자를 올려다보고 도코는 주먹을 꽉 쥐었다.
확실히 신장은 그리 크지 않지만 도코는 이래 봬도 유단자다. 그것도 어지간한 성인 남성 서넛 정도는 우습게 때려눕힐 수 있을 정도의 상당한 실력자. 가볍게 여겼다가 혼쭐나는 건 과연 어느 쪽일까. 물론 싸우는 데 쓰라고 배운 무술이 아니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구해야 할 때니까─
“꺼져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네 녀석들이겠지. 험한 꼴 당하고 싶지 않으면 당장 비키게.”
명백한 도발에 울컥한 남자들이 덤벼든다. 예상대로의 행태에 도코는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려 웃어 보였다.
도코가 그들을 모두 쫓아버리기까지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괜찮은가?”
말을 걸며 다가가자 도코의 무쌍에 놀란 듯 멍청히 서 있던 소년이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들었다. 앞머리가 흔들리고 그제야 소년의 얼굴이 드러난다. 가까이서 본 소년의 얼굴에 도코는 조금 놀랐다. 생각보다 훨씬 어리다. 그 때문인지 소년의 부드러운 뺨에 남은 상처가 애참하게 느껴졌다.
소년은 어딘가 경계가 가득한 눈길로 도코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움을 줬는데도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건 천성일까 아니면 경험 탓인 걸까. 사나운 붉은색 눈동자가 어딘지 모르게 털을 잔뜩 곤두세운 고양이를 생각나게 한다.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물어버릴 것 같은 소년의 모습에 도코는 어이쿠야, 하고 무심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상처는?”
“……괜찮아.”
다시금 상냥하게 묻자 소년은 그제야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을 되돌렸다. 경계를 풀었는지 어깨에서 힘을 빼는 게 한눈에도 보였다.
하지만 소년의 말과 달리 상처는 그다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뺨에 커다랗게 남은 상처도 문제지만 드러난 팔 여기저기에도 분명 시퍼렇게 멍이 들 만한 상처가 잔뜩 남아있다. 도저히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는 몰골이다. 도코는 크게 인상을 찌푸리며 그대로 내빼려고 하는 소년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자, 잠깐!! 뭘 하는 거야!!!”
“마침 우리 집이 이 근처일세. 치료해 줄 테니 따라오게.”
“하? 이딴 건 내버려두면 나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억지 부리지 말게!”
“억지는 네가 부리는 거겠지!!”
아무래도 순순히 따라올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실력행사에 들어갈 수밖에. 도코는 문답무용으로 소년을 어깨에 들쳐 멨다. 당연히 격렬한 반발이 되돌아왔지만 아무리 그래도 힘의 차이가 너무 역력하다.
한참을 버둥거린 끝에 소년이 포기한 듯 늘어졌다. 어깨에 걸린 소년의 무게가 너무 가벼워 도코는 조그맣게 혀를 찼다.
“너무 가볍지 않은가. 잘 챙겨 먹지 않으면 계속 조그만 채로일 게다.”
“시끄러!! 너도 별로 안 큰 주제에!!”
“윽!”
얼결에 콤플렉스를 지적당해 도코는 짜부라지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그다지 작은 편은 아니라지만 역시 말로 들으면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절친한 친우가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신장을 가져 평소 비교당하고 있다면 더욱더.
저절로 입술에서 한숨이 새어 나온다.
“정말 한마디도 안 지지 않는가.”
그렇지만 별로 싫은 기분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갑자기 기분이 유쾌해져 도코는 이를 드러내며 크게 웃었다. 아마 앞으로 한동안은 심심한 일이 없을 듯했다.
“자아─ 그럼 갈까!”
“자, 잠깐!! 내려줘!! 이 바보가!!!”
소년의 비명과 남자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푸른 하늘에 메아리쳤다.
“……그땐 그랬는데 말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도코는 텐마를 쳐다보았다. 곧바로 눈이 맞았다. 회상하는 동안 너무 빤히 쳐다보았는지 소년은 상당히 띠껍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여전히 변한 건 없구먼. 세월의 무상함에 도코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얼굴은 뭔가, 텐마.”
“아니. 뭔가 굉~장히 불손한 시선을 하고 있어서.”
“그건 이쪽이 할 말이네만.”
정말이지 변한 게 없다. 여전히 고집불통에 퉁명스럽고 건방지기까지 한 꼬마다.
하지만 도코는 텐마가 정이 깊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얼마나 상냥하고 얼마나 친구를 생각하는지 또한.
너무 직선적이라 때로 말이 험하기도 하지만 놀랄 정도로 솔직하고, 무슨 일에든 씩씩하고 열심이고, 항상 구김살 없이 미소 짓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소년. 이미 텐마는 그 누구보다 도코의 자랑이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가슴 가득히 뿌듯함이 차올랐다.
“음. 역시 자네는 내 소중한 동생일세.”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그렇지만 역시 그런 말투는 그만둬 주게, 텐마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건만 도코는 이번에도 진심으로 상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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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미포 2139자
텐마와 도코가 처음 만났을 즈음의 이야기. 오랜만에 쓰는 것 같은 현대AU. 그리고 애매해져버린 분량감각(....) 왜 삼천 자가 안 넘으면 매우 짧게 쓴 것 같은가. 아니 짧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