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시지포스가 제대로 자아도 확립하지 않은 어린 나이에 병으로 돌아가셨기에 추억을 만들 틈이 없었다. 다만 커다란 손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던 기억만은 어렴풋이 있으므로 자신이 사랑받았다는 건 알았다. 이따금 그리움도 일었다. 하지만 그건 말하자면 고작 그 정도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립기는 하지만 단지 그것뿐인, 열망도 궁금증도 다른 무엇도 없는 그런 것.
아버지에 대해 새삼 관심을 가진 것은 시지포스가 일고여덟 살이 됐을 때의 일이었다. 시지포스는 그날 처음으로 이복형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형─일리아스는 시지포스보다 열 살은 더 많아 보였고, 무뚝뚝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적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 사람이었다. 때때로 멀리 던지는 시선은 어머니보다 더욱 아득해 보였다. 하지만 혈육이기 때문일까, 시지포스는 결코 일리아스가 싫지 않았다. 처음에야 수줍어서 어머니 뒤에 숨어있었지만, 곧 어린아이 특유의 친화력으로 다가가 재잘재잘 이야기를 떠들기도 했고 손을 잡으며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일리아스도 일리아스 나름대로 어린 동생이 맘에 들었는지 시지포스의 부탁은 대개 들어주었으며 때때로 서툰 몸짓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했다. 그 손길이 기억 속의 아버지와 똑같았다─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다른 부분도 아버지와 닮았다는 것 같다─.
세계를 떠돌고 있는 일리아스와 만날 수 있던 건 1년이나 2년에 한 번 정도였지만, 시지포스는 그걸로 족했다. 드문드문 보내오는 편지 역시 보물이었다. 시지포스에게 있어 일리아스는 소중한 형이었으며, 아버지 대신이었고, 동경할 수 있는 첫 번째 남자였으며 또한 세계의 반쪽이었다.
실제로 시지포스의 세계가 역전하게 된 것도 일리아스가 계기였다. 그때까지 시지포스는 인간과 요정을 구분하지 않고 살아왔다. 어렸기에 가능한 평등함이었으며, 언젠간 깨지게 될 무지(無知)였기도 했다. 그런 시지포스를 보고 일리아스는 아무것도 꾸짖지 않았다. 다만 어머니에게만 한마디 했을 뿐이다. 이 아이에게는 양쪽 세계를 모두 가르치는 게 필요합니다. 어머니는 납득했고, 곧바로 시지포스에게 사과했다.
이후로 시지포스는 어머니에게 양쪽을 구분하는 방법을 배웠다. 다만 양쪽이 분명하게 분리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필요한 건 지혜와 처세. 어느 쪽이든 조화를 이루며,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너는 어느 쪽에도 속하고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으니, 어느 쪽이든 지킬 수 있는 자가 될 거라고 어머니가 슬피 웃으며 말했던 걸 시지포스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의 말은 시지포스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었으며 시지포스의 바람이기도 했다. 얼마나 달성할 수 있느냐와 관계없이 시지포스는 계속 그렇게 살아갈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손을 뻗으며.
그것을 알게 된 것도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서였다. 숲에 있는 존재.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매우 오래된 것. 매우 강하고, 그렇기에 매우 위험하고, 그렇기에 매우 고독한 것. 이미 반쪽을 잃고, 자기 자신마저 잃고, 그저 존재하기만 할 뿐인 것. 사실은 매우 슬프고 안타까운 것.
도울 순 없나요? 이야기를 들은 시지포스가 물었고 어머니가 고개를 내저었다. 지키는 것만으로는 안 된단다. 그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지켜줄 자가 아니라 단 한 줄기의 빛이란다. 시지포스는 쉬이 수긍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반발 또한 할 수 없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므로. 염려 말렴. 모든 게 끝이 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빛이 나타날 테니. 시지포스의 아픔을 알아채고 다독이듯, 혹은 타이르듯 어머니가 말을 덧붙였다.
그랬던 나날들이 있었다. 허나 이제 어린 시절은 끝났다. 시지포스는 이미 어른이었고, 그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어머니는 이 땅을 떠났다. 형은 아버지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신 조카가 남았다. 조카는 형과 많이 닮았으며 형과 전혀 닮지 않았다. 그래도 충분했다. 있어 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지인도 많이 생겼으며 신뢰할 수 있는 동료도 생겼다. 시지포스의 세계는 한 번 무너질 뻔했지만 어떤 의미에선 더욱 풍부해졌다.
최근엔 제자가 한 명 생겼다. 사실 통상적인 사제관계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하지만 그래도 제자다. 조카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러니 자신의 반쪽 때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제자를 볼 때마다 종종 반쯤 잊고 있었고 반쯤은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직은 물증도 심증도 없는 억측에 가까운 이야기다.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시지포스는 생각했다. 어쩌면 혹시, 이웃에게 사랑받는 그 소년이 빛일지도 모른다고. 그 존재에게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두에게도.
하지만 그래서? 어쨌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무엇이 어찌 되었든 시지포스는 계속 지켜나갈 것이다. 다른 모두를, 살아갈 사람들을, 미래를, 행복을.
그것이 시지포스의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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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것도 무척 쓰고 싶은데 제가 너무 게을러서... 못 움직이다가 짧으니까 써보는 사이드 에피소드입니다. 근데 생각해 보면 에피 2까지 밖에 안 썼는데 무슨 사이드 에피소드여.......(◐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