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rumada
[L.C./데프테로스+텐마]웃는 얼굴의 해주解呪
citrus_
2014. 12. 10. 16:39
그저 테프테로스랑 텐마가 친하게 지내고 있는 이야기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귀로 흘러들었다. 웃음기 섞인, 따뜻하고 지금 상황을 기뻐하는 목소리들. 데프테로스는 애써 그 소리에서 신경을 돌리고 나무줄기에 등을 기댔다. 문득 이런 상황이 되어서도 변하는 건 없구나, 하고 자조의 웃음이 나왔다.
신화시대부터 반복되던 성전은 이번에도 아테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모르지만 아테나는 명계와 협정을 맺고 당당히 귀환해 신의 힘으로 자신의 세인트들을 부활시켰다. 즉, 세인트들은 갑자기 되살려진 것도 모자라 반영구적으로 평화로운 세계에 내던져지게 된 것이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부활한 세인트들에겐 아직 많은 일이 남아있었다. 명계와의 협정 세부 조율, 성역의 재건, 성전 당시 뒤로 미뤄놓을 수밖에 없었던 일의 처리 등. 만약 협정으로 인해 세인트들이 부활하지 않았더라면 전부 해결하기까지 몇 년, 아니 몇십 년이 걸렸을지도 모를 정도의 양이라 다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였다.
하나를 처리하기도 전에 계속해서 밀려드는 일에 다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속에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실감하며, 동료가 곁에 있다는 현실에 기뻐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데프테로스는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 아테나에게서 아스프로스와 함께 제미니의 세인트가 되어달라고 요청을 받았을 때 데프테로스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제미니의 자격이 있는 것도, 크로스를 입을 자격이 있는 것도 확실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힘을 바랐던 것은 모두 형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였다. 세인트를 되고 싶다고 바랐던 적은 처음부터 없었다. 형과의 싸움이 아니었다면 제미니의 크로스를 걸칠 일도 결코 없었으리라. 무엇보다 남을 위해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신은 세인트에 어울리는 남자가 아니었다.
데프테로스의 담담한 토로에 아테나는 당황하고 아스프로스는 화를 냈지만 결국에는 어떻게든 납득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하고 아테나가 한발 물러서 데프테로스는 그저 데프테로스인 채로 성역에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모습을 드러내고 살 수 있게 되었는데도 데프테로스는 제대로 성역에 녹아들 수 없었다. 골드 세인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주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는 그저 불편한 존재에 불과했다.
애당초 성역에 데프테로스를 아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제 와서 제미니의 동생이라고 모습을 드러내 봤자 대다수에겐 어리둥절한 소리에 불과하다. 이전에 알고 있던 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 대부분은 자신을 흉성이라고 매도했던 자들뿐이다. 그런 그들과 만나는 건 데프테로스 쪽에서 거절했다.
아니, 단지 그런 문제가 아니다. 살아온 방식의 문제인지 데프테로스는 사람과 어울리는 게 서툴렀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사나운 표정을 한 데프테로스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적었고, 그도 그다지 타인에게 다가가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자신은 사람과 어울리는 걸 싫어하는 거라고, 데프테로스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별로 상관없지 않은가. 반신인 형도, 친우라 말할 수 있는 아스미타와 데젤도 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하고.
“앗! 찾았다!!”
갑자기 울려 퍼진 목소리에 데프테로스는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본의는 아니지만 그 셋 외에도 끈질기게 들러붙는 녀석이 하나 더 있었다.
얼굴을 아래로 향하면 페가수스의 소년이 방글방글 웃으면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답게 순진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복잡한 심경이 되어버려 데프테로스는 다시금 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억눌렀다.
무시했다간 계속 떠들며 자신이 있는 곳까지 기어 올라올 기세라 일단 데프테로스는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한걸음 물러선 것으로 착지지점에서 비킨 소년이 다시 자신에게로 시선을 향한다. 색이 바래지 않는 미소. 지금 자신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할 텐데, 그런데도 텐마는 웃는 얼굴을 지우지 않았다. 이상한 녀석.
“…무슨 용무지?”
“용무가 없으면 안 되는 거야?”
데프테로스의 물음에 텐마가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삐죽 내민다. 아직 어림이 남아 있는 얼굴이 데굴데굴 표정이 바뀐다. 그 행동이 묘하게 자신을 친밀하게 느끼는 것처럼 보여, 그것이 데프테로스에게는 신기하게 생각됐다.
생각해보면 텐마는 처음부터 이랬다. 종전 후 우연히 만났을 때부터 오래 알고 지내온 사이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을 대했다. 본인 말로는 스승이니까, 라곤 하지만 데프테로스 본인에겐 텐마의 스승이 되었다는 자각은 전혀 없다. 무언가를 가르쳐준 기억도 없고 그저 해보라고 막무가내로 던져준 과제를 텐마가 제멋대로 풀어버린 것뿐이다. 아니, 설령 그것을 사제라 할 수 있더라도 갑작스럽게 마그마에 집어던져 버린 상대를 이렇게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인가. 소년의 본래 서글서글하고 넉살 좋은 성격을 고려하더라도 역시 이상하다.
“자─”
데프테로스의 감상도 모른 채 금세 다시 표정을 바꾼 텐마가 나무 둥치에 앉으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린다. 그 태연자약한 모습에 데프테로스는 마지못해 소년의 옆에 앉았다. 닿을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귓가에 조용한 숨소리가 닿았다. 텐마의 모든 것이 지나치게 가깝다.
멀리서 바람이 불어와 데프테로스는 눈을 가늘였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건 텐마 만이 아니었다. 이 어린 소년에게 있는 힘껏 휘둘리고 있는 자신도 자신이다. 아무리 친근하게 군들, 아무리 억지를 부린들, 아무리 달라붙은들 뿌리치면 될 것을, 그러지 못하고 어리광을 받아주고 있는 자신을 데프테로스는 자각하고 있다.
원래 이런 타입에 약한 것인가, 하고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딱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더 강한 강압도 뿌리칠 수 있다. 더 간절한 간청도 무시할 수 있다. 친우인 데젤과 아스미타마저도 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텐마를 거절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 자신은 오로지 텐마에게만 약한 것이다.
데프테로스는 넘쳐흐르는 한숨을 막지 않았다. 그 소리를 듣고 텐마가 데프테로스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왜 그래? 귀신 스승.”
붉은색이 강한 갈색 눈동자가 걱정을 품고 희미하게 빛난다. 소년의 상냥함에 괜히 속이 불편해진 데프테로스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마라.”
“당신이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잖아.”
볼을 부풀리며 뚱하게 답하는 소년의 모습에 데프테로스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째 한숨인지 모르겠다.
재회한 이후 텐마는 데프테로스를 계속 귀신 스승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귀신 스승이라니, 좋고 싫고를 말하기 이전에 사람에 대고 부를만한 호칭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것만이 아니라 텐마가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불러버리면 싫어도 주목받아버린다. 사람에 익숙하지 않은 데프테로스에게는 그것이 싫었다.
이전에 아스프로스에게 들은 적이 있으니 본인이 말하는 것처럼 데프테로스의 이름을 모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설령 정말로 데프테로스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도코나 아스미타에게 묻는다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도 텐마는 당신이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라고 말하며 고집스럽게 데프테로스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있다.
설마 이건 전에 이름을 물었을 때 네가 알 필욘 없다, 라고 말한 데 대한 앙갚음인가. 데프테로스는 떠오르는 생각을 애써 떨쳐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심한 비약이다. 무엇보다 텐마의 성격을 생각하면 바로 화를 내면 냈지 에둘러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데프테로스다.”
망설임이 있었다. 그렇지만 데프테로스는 결국 이번에도 텐마에게 꺾일 수밖에 없었다.
이름을 들은 텐마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무척이나 기뻐하는 모습에 진작 알려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조금 들었다.
데프테로스, 하고 텐마가 몇 번이나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마치 그 이름을 절대로 잊지 않으려는 듯. 소중한 것을 대하는 듯한 행동에 괜히 부끄러워진다. 견디지 못하고 데프테로스는 무어라 말을 걸어 텐마의 행동을 멈추려 했으나 그보다 소년이 빨랐다. 불쑥 텐마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좋은 이름이네!!”
꽃이 피어나는 것 같은 웃음. 무구한 진심에 심장이 받혔다.
두 번째. 그림자. 꼭두각시. 레플리카. 아무렇지 않았다고 말해도 열등감을 초래했던 이름. 그 무엇이 되어도 결코 축복만은 되지 않을 이름인데. 텐마가 소년다운 순수한 감정으로 말해버리니까 그것이 진실처럼 느껴져서. 아아, 그렇게 받아들여도 괜찮은 거구나, 하고. 무언가 풀려가는 것처럼.
데프테로스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항상 텐마에게 지고 만다는 것을.
그런가, 하는 조그만 중얼거림에 텐마가 응! 하고 대답하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데프테로스는 조그맣게 웃으며 텐마의 머리를 쑤석였다. 소년의 웃음소리가 흩어진다.
자신과 텐마의 관계는 무엇일까. 사제 관계인 것도 친우인 것도 아니었다. 애매하고 아직 윤곽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은 불확실한 관계. 그래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는 이런 관계를 지속해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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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미포 3334자
커플인듯 커플 아닌듯 커플인 것 같은 너희들. 어, 그래도 아직까진 X보단 +에 가까운 느낌
사실 로캔에서 협정 맺어버리면 무인 세계는 어떻게 되는가 싶기도 할 때가 있지만 어차피 평행세계나 마찬가지니까 막쓰고 있음'ㅅ'-3 크로스 오버도 어차피 평행세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