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

삼월은 붉은 구렁을

citrus_ 2014. 12. 2. 23:54


 복잡한 구성 같은 느낌. 그러나 잘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말이 딱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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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향과 브랜디 향. 그때 고이치는 문득 지복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어두운 밤, 따뜻한 실내에 앉아 재밌는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먼 옛날부터 세계 곳곳에서 있어왔을 행위. 역시 인간이란 픽션이 필요한 동물이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해 주는 것은 바로 그 한 가지뿐일지도 모른다.


 맞아요. 히어로는 그 자체로 완결되어 있으니까 다른 사람의 개입이 별로 필요하지 않잖아요? 여자 처지에서 보면, 그래, 혼자서 멋대로 하드보일드하라지, 하는 기분이 들죠. 여자는 상대방을 통해서 자기를 보는 면이 있으니까,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메워주고 싶다, 상대방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가장 크거든요. 결국 자존심에 지나지 않지만요. 상대방을 숭배하고 싶어하고 동경하고 싶어하는 건 기껏해야 열여덟 살까지잖아요? 그러니까 손이 가는 사람,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 하지만 저 사람은 내가 아니면 안 돼, 그런 부분이 없으면 여자한테는 인기가 없어요.


 먼저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이 아카네의 이상이었다. 우선 이야기되어야 할, 이야기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이야기가 있고, 작가의 존재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픽션.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이야기다. 이야기는 독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작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이야기는 이야기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


 거울. 그래, 거울이다. 거울 속에는 원하지 않은 결말이 보인다.


 "그러게. 다들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이미 들킨 지 오래지."


 언젠가 쓸 테지. 서툰 사랑의 말을 글로 남기기 위해. 하지 못했던 말을 소리 내어 하기 위해. 해질 녘 비 갠 하늘의 구름 틈새로 비치는 빛에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웃음만을 남기고 사리진 소녀들을 대신해서.

 예감은 확신이 되었다.

 언젠가 그날은 올 것이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텅 빈 하얀 종이에 불안을 느끼면서도, 첫 페이지를 펼칠 것이다. 그 이야기는 언젠가 반드시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다를 것이다. 이야기되어야 할 이야기로서.


 소설의 제목을 정하는 일은 어렵다. 소설을 결정하는 것은 내용이 60퍼센트, 제목이 40퍼센트라는 말도 있다.

 제목이 똑 떨어지게 잡히면 마음이 놓이는 것은 사실이다.


 워드 프로세서가 편리한 기계라고는 생각하지만, 최근 어이가 없을 정도로 손으로 쓰면 글씨가 지저분해지고 한자를 못 쓰게 되었다. 워드 프로세서의 키보드를 두들기는 속도로 글자가 나오는 데에 익숙해지면, 손으로 써도 기계와 같은 속도로 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손으로 글씨를 쓰고 있노라면 한 글자를 쓰는 데 드는 시간이 제각각이라 안달이 난다.


 예고편을 쓰고 있노라면 언제나 요시하라 사치코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쓰기 시작하면 안 써지는데, 쓰기 전에는 써지려고 한다."


 그래, 어차피 나 같은 거 재능도 없어, 하고 책상 위에 털썩 몸을 던져보다가도, 그렇다고 위로해 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스스로 바보 같은 기분이 들어서 몸을 일으키곤 한다.


 소설을 쓰는 일이 현기증이 날 만큼 기쁘다는 부럽기 짝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대부분 고통이다. 쓰다 보면 꽤 재미있기도 하지만, 열의가 지속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게다가 밤중에 쓴 편지와 마찬가지로, 기분이 들떠 있을 때 쓴 글치고 써먹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다음날 다시 읽어보면 어찌나 엉망인지 기운이 다 빠질 정도다.


오래된 건물과 집에는 그 장소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담겨 있다. 거기에는 온갖 이야기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듯 보인다.


유년기에 받은 영향은 재미있다. 같은 세대 사람이 만든 것은 어디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만화 등 시각매체의 영향은 특히 크다.


나는 일인칭 소설이 질색이다. 쓸 때 마음이 아주 불편하다. 철저하게 주인공의 성격이 되어 주인공의 시점으로만 움직인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괴롭다. 독백에서는 완전히 등장인물이 될 수 있어도, 이야기의 틀이 되는 등장인물이 되는 것은 고통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