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긴 싫었지만 확실히 자신이 쥐고 있는 머리카락은 아름다웠다. 곱게 수놓아진 비단 끈으로 묶어 홍옥, 마노, 산호, 진주 등 갖가지 귀한 보석을 얹으면 퍽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어쩐지 그 모습이 쉽게 상상이 됐다. 한번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으나 안타깝게도 제게 그런 귀중품이 있을 리가 없다. 결국 므우는 상상은 상상으로만 끝내고 가죽끈으로 땋은 머리카락의 끝을 묶었다.
느슨하게 땋아진 머리카락이 남자의 등 뒤로 쏟아진다. 머리카락의 끝이 금색 잔상을 남기며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 감촉을 남자가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다. 허나 그럼에도 샤카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 끝났습니다.”
약간의 오기를 담아 므우는 샤카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역시 대답이 없다.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리라. 학습된 행동으로 므우는 일찌감치 남자에게서 반응을 이끌어내는 걸 포기했다.
굳게 감긴 눈꺼풀과 얌전히 다물어진 입매. 살짝 들여다본 옆모습은 언제나처럼 고요하다. 당연하지만 샤카는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명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설령 정말로 명상을 하고 있다곤 해도 타인의 기척과 목소리를 알아채지 못할 남자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약간의 묵인이 포함된 명백한 무시였다.
제멋대로에 거만하고 남을 있는 대로 휘둘러버리는 남자. 신에 제일 가까운 남자의 실체는 이런 것이다.
“……정말 이상한 남자군요.”
한숨을 담아 므우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순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대답이 돌아왔다.
“어느 점이 말인가?”
어느새 몸을 튼 샤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눈꺼풀 아래의 눈동자와 시선이 맞은 므우는 눈을 몇 번 깜빡이고 입술을 열었다.
“보통은 갑자기 쳐들어와서 머리카락을 땋기 시작하면 뭐하는 거냐고 묻기라도 하지 않나요?”
“가만히 있던 게 불만이었나?”
“불만이라곤 안 했습니다.”
다만, 하고 므우는 살짝 고개를 갸울였다.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라 최대한 심정을 전달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가만히 있다면 보통은 상냥한 사람이라거나 소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인데 당신은 어째서인지 ‘특별히 만질 수 있도록 허락해 줄 테니 어디 한번 놀아봐라.’ 하고 말하는 것 같아서요.”
“…그대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잘 알겠느니라.”
기분 탓인지 토라진 어조로 샤카가 말해 므우는 무심코 웃어버렸다. 뺨이 느슨하게 풀린다.
이 남자는 언제나 이랬다. 항상 제가 잘났고 저를 이길 자가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가끔 이렇게 자신의 제자보다도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태풍의 눈처럼 주변을 잔뜩 뒤집어엎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평온하게 있는 모습이 얄미운, 그럼에도 결코 싫어할 수 없는 상대.
므우의 웃음소리를 듣고 샤카가 고개를 획 돌려버린다. 그 모습에 웃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므우는 도무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아, 완전히 토라져 버렸다.
제대로 심통이 난 모습으로 샤카가 난폭한 코스모를 뿌려대기 시작한다. 그 뒷모습을 보고 므우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저런 모습을 보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 와서 걱정할 건 없었다.
동시에 아직 불만이 남은 목소리가 처녀궁 안에 울렸다.
“……므우여, 특별히 허락해주는 것도 그대뿐이라는 걸 잘 알아두도록 하여라.”
속삭여진 말에 므우는 네에, 네에, 하고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어떻게 샤카의 기분을 풀어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