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청동학원]어느 아침
넥타이 매는 건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네.
거울을 들여다보고 세이야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목덜미에 매인 넥타이는 어떻게든 매듭은 지어졌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니, 익숙해지지 않은 건 넥타이를 매는 것만이 아니다. 체크무늬 바지에 와이셔츠, 갈색의 재킷. 어디를 봐도 평범한 교복이지만 지난 13년간 편리함을 중시한 옷만 입었던 세이야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불편하고 답답하다. 어설픈 매듭을 만지작거리다가 조금 느슨하게 넥타이를 풀어냈다. 겨우 숨통이 트인 느낌이다. 그대로 빤히 거울에 반사된 자신을 바라보다 세이야는 모든 걸 체념하고 몸을 돌렸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선다. 그대로 식당으로 향하던 도중, 세이야는 슌과 마주쳤다. 어깨가 축 처진 세이야와는 다르게 저쪽은 반짝반짝 빛나는 미소를 짓고 있는 게 참으로 즐거워 보였다.
“좋은 아침, 세이야.”
“……좋은 아침.”
사실 별로 좋은 아침은 아니지만. 세이야가 상당히 저기압이란 걸 느꼈는지 슌이 입가에 쓴웃음을 그린다. 그에 애써 평소와 같은 얼굴을 하려 했지만 애당초 감정 표현에 솔직한 그에게는 무리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해도 일그러진 얼굴밖에 되지 않아 세이야는 다시 어깨를 떨어트렸다. 슌이 자아, 자아, 하고 등을 상냥하게 민다. 부드러운 재촉에 별수 없이 다시 다리를 움직였다. 뒤에서 슌이 소리 없이 따라온다. 계단을 내려가 식당으로 들어서자 이미 먼저 와 있던 형제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제일 먼저 모습을 보인 건 효가다. 테이블에 앉아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신문을 읽고 있다. 금발에 푸른 눈이라는 이국적인 외모에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더해져 마치 서양 영화에나 나올 듯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몸에 걸치고 있는 게 교복이란 점이 하나의 맹점이었지만 그래도 다수의 여성이 본다면 꺄악! 소리를 지를 것이 틀림없다. 세이야와 슌의 기척을 느낀 건지 효가가 신문에서 시선을 떼고 둘을 바라본다. 여, 하고 짧게 인사를 해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세이야는 자리에 앉았다. 그 옆자리에 슌이 앉는다.
동시에 안쪽에 있던 주방에서 시류가 나온다. 평소와는 다르게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질끈 묶고 있다. 두르고 있는 하얀 앞치마가 무척 잘 어울린다. 둘의 모습을 발견하고 밝게 인사를 건네던 시류가 문득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좋은 아침…… 인데. 왜 그래, 세이야?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데.”
“……학교 가기 싫어.”
시류의 물음에 세이야는 테이블에 엎드리며 대답했다. 어리광부리는 듯한 세이야의 행동에 그 자리에 있던 셋 모두가 쓴웃음 지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세이야가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 탓이다. 덕분에 이제는 아침 행사나 다름없는 세이야의 투정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어, 그저 혼잣말로 남을 뿐이다.
한참을 투덜거리던 세이야는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잠시 눈을 깜빡거리다 집중해서 주변의 코스모를 탐색했다. 여기 식당에 자신을 제외하고 셋, 아직 주방에 남아있는 둘. 이상하다. 숫자가 하나 모자랐다. 의아하게 생각한 세이야는 엎드린 그대로 고개만 들어서 누구에게 라고 할 것 없이 물었다.
“사오리 씨는?”
“아테나라면 급한 일이 생겼다고 아침 일찍 나갔다만.”
대답을 해준 건 주방에서 음식과 접시를 들고 나오던 잇키였다. 그 대답에 세이야는 몸을 바로 세우고 고개를 갸울였다.
“성역?”
“아니. 그라드 재단의 일인 듯했다만.”
“그런가.”
사오리 씨 바쁘네, 하고 중얼거리는 세이야의 앞에 잇키가 접시를 놔준다. 이런 모습을 이 무뚝뚝한 독불장군에게서 볼 수 있으리라고는 결단코 생각하지 않았던지라 처음에는 경악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익숙해져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나중에 제법 좋은 남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일을 끝마친 잇키가 자리에 앉자 주방에서 마지막으로 사람이 나온다. 세이야의 누나인 세이카다. 그녀의 모습을 본 세이야의 얼굴이 화악 밝아진다.
“누나! 좋은 아침!”
경쾌한 동생의 인사에 세이카가 엷게 웃는다. 아까의 침울한 분위기는 어디 갔느냐는 모습에 다른 형제들도 웃었다.
“좋은 아침, 세이야. 슌도.”
상냥하게 인사를 되돌리며 세이카는 자리에 앉았다. 효가가 신문을 접고 시류가 걷어 올렸던 소매를 내리고 슌이 잇키에게 밥그릇을 건네주고 세이야가 젓가락을 든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잘 먹겠습니다, 하는 소리가 식당에 울렸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다.
기본적으로 별다른 일이 없다면 식사는 모두 다 함께, 라는 게 어느새 암묵적인 약속이 되어버렸다. 때문에 식사 시간에는 적어도 다섯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다. 필연적으로 식사시간이 떠들썩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곤 해도 주로 떠드는 것은 세이야와 슌, 막내들뿐이고 시류와 효가, 세이카는 대부분 맞장구만 친다. 잇키는 식사시간 내내 침묵하곤 있지만 모든 얘기를 다 듣고는 있다. ……듣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딱히 정해진 주제랄 것도 없이 잡담을 하는 데 도중 슌이 부자연스럽게 말을 멈춘다. 왜 그래? 하고 세이야가 묻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슌이 한숨을 내쉰다.
“세이야, 편식은 몸에 안 좋아.”
그렇게 말하며 슌이 가리킨 것은 은근슬쩍 접시 한구석으로 밀려난 당근 더미였다. 슌의 말에 순식간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꽂혀와 에?! 하고 세이야가 당황한다. 뺨이 따갑다. 딱히 변명할 거리도 찾아내지 못해 우물쭈물하고 있자니 효가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아직 애군.”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형의 말에 세이야가 울컥한다.
“……그러는 효가도 토마토 안 먹으면서.”
세이야의 통렬한 지적에 효가가 움찔 어깨를 떨었다. 이번엔 모두의 시선이 효가에게로 향한다. 애써 태연한 척하곤 있지만 효가의 얼굴은 이미 새하얗게 질려있다. 온몸으로 정답이오, 하고 외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모습을 보고 세이카가 한숨을 섞어 시류에게 말을 건다.
“시류.”
“……응.”
“내일부터는 당근과 토마토 중심으로 요리하자.”
세이카의 단호한 결단에 시류는 말없이 긍정했다. 브로콜리를 먹지 않는 잇키는 이번에도 침묵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자 밝은 햇볕이 강하게 내리쬔다. 날씨가 좋다. 예전에는 이런 날엔 뭘 했더라. 어쩐지 훈련하고, 훈련하고, 훈련을 한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여유롭게 학업에 전념할 시간도 있으니 참으로 평화롭긴 하다. 세이야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찌 됐든 학교를 안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세이야는 발치에 놔둔 가방을 들었다. 그대로 기다리고 있을 형제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는 데 뒤에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세이카가 교복을 갖춰 입고 서 있었다. 학교가 다르기 때문에 세이카는 세이야들과는 전혀 다른, 흰 와이셔츠에 남색 스커트 차림이다.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어째서인지 누나의 이런 모습에 굉장히, 굉장히 기뻐지고 말았다. 이렇게 서로 교복을 입고 있으니 그저 평범한 남매 같다.
“넥타이는 제대로 매야지, 세이야.”
작은 보폭으로 다가온 세이카가 세이야의 넥타이를 다시 매준다. 과연, 이라고 할까 세이야가 혼자 맸을 때보다 훨씬 그럴듯하게 모양이 잡힌다. 반듯한 매듭은 목을 조이지도 않고 편안하게 자리 잡았다. 매는 방법은 똑같은 데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
고민하고 있는 사이 세이카가 옷매무새를 정리해주곤 마지막으로 어깨의 먼지를 털어준다. 세이야는 그런 모습을 빤히 내려다봤다. 시선을 눈치 챈 건지 살짝 고개를 든 세이카가 세이야와 눈을 맞추고 웃어 보인다.
“다녀오렴.”
누나의 말에 세이야도 크게 마주 웃었다.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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