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악과 분노와 허망함 등 갖가지 감정이 혼탁하게 섞인 목소리가 몇 겹으로 겹치며 방안에 높게 울린다.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던 소년들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정작 이 혼란을 만든 당사자, 세이야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냐는 모습이다. 제가 말한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막내의 모습에 형제들은 모두 그대로 굳어버렸다.
“자, 잠깐! 이게 무슨 말이야! 대뜸! 호, 혼전 순결은?!”
가장 먼저 패닉에서 회복한 것은 개중 제일 고지식하고 성실하고 침착한 드래곤의 소년이다. 하지만 그 침착함도 폭탄선언 앞에서는 발휘되지 않는지 굉장히 당황하고 있다는 게 눈에 다 보였다. 세이야의 어깨를 붙잡고 일단 머리에 떠오르는 말을 생각도 않고 그냥 내뱉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내버려뒀다간 세이야를 그대로 힘껏 흔들어댈 것 같은 모습에 효가가 시류에게 말을 걸어 진정시킨다.
“어이, 진정해. 시류. 지금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잖아. 일단 세이야의 얘기부터 들어.”
“그러는 효가야말로 주위를 얼려버리는 건 그만둬줘.”
소년이 앉아있는 의자가 다리부터 얼어가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슌이 한숨을 내쉰다. 슌의 말을 듣고 그제야 깨달은 듯 효가가 내뿜던 냉기를 멈췄다. 하지만 절대영도에 가까울 정도로 냉각된 분위기는 도무지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시금 성대한 한숨을 내쉬고 슌은 아직도 세이야의 어깨를 붙잡고 어버버거리고 있는 시류를 소녀에게서 떼어내 자리에 앉혔다. 참고로 맏형인 잇키는 제일 뒤에서 벽에 기댄 채로 여전히 얼어있는 중이다.
모두를 얌전히 착석시킴으로써 그럭저럭 상황이 정리되자 슌도 세이야의 옆자리에 앉았다.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최연소의 소녀는 살짝 미간을 찌푸린 얼굴로 내가 무얼 잘못 했나? 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절로 쓴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어찌 되었든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는 연상들을 대신해 슌이 세이야에게 최대한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세이야.”
질문에 세이야가 퍼뜩 고개를 든다. 그리곤 조금 쑥스러운 얼굴로 헤헤 웃는다. 예상과는 다른 뜻밖의 모습에 슌이 어라? 하고 생각하는 데 소녀가 설렁설렁 손을 흔들어 보인다.
“어떻게 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걸~”
슌은 그제야 세이야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알아차렸다. 무엇인지는 확인하지 않아도 분명하다. 과연. 태평함의 원인은 저거였던가. 필시 시류와 효가도 알아차렸음이 틀림없다. 아까보다 훨씬 아연해하는 둘의 모습을 슌은 곁눈질로 확인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이야는 기쁨에 겨워 재잘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사오리 씨한테는 나중에 둘이서 말하러 갈 거지만 그 전에 너희에게 먼저 얘기하고 싶어서.”
즉, 이미 모든 것이 다 끝나 있다는 소리다. 자신들에겐 아무런 의논도 없이. 형제들의 마음이야 어쨌든 아직 어림이 남아있는 뺨을 희미하게 붉히고 정말로 행복한 듯 말하는 세이야의 모습에 슌이 고소를 짓고, 시류가 이마를 부여잡고, 효가가 한숨을 내쉰다.
“결국, 그냥 사후통보잖아…….”
어이없다는 듯한 효가의 중얼거림에 그런가? 하고 세이야가 조금 멋쩍은 듯 뺨을 긁는다. 하지만 저 천진난만한 얼굴에서 행복함이 사라질 기색은 도무지 보이지 않아 동생을 사랑하는 소년들은 결국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생각해보면 언제고 이런 날이 오리란 건 예견된 일일지도 몰랐다. 세이야랑 사가, 둘 다 서로가 서로를 정말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했다. 더군다나 한 번 마음을 정하면 올곧게 있는 전부를 부딪치는 데다 포기를 모르는 세이야와 무심한 듯 보이지만 일단 마음에 두면 굉장히 독점욕이 심한 사가의 조합이다. 처음부터 전심전력이었던 둘인 만큼 아테나라도 끼어들지 않는 이상 이렇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역시 조금 섭섭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역시 축복해 줘야겠지, 하고 소년들이 맘을 굳히는데 갑자기 그때까지 얼어있던 잇키가 몸을 움직였다.
“어라? 잇키?”
“형? 어딜 가는 거야?”
빠른 걸음으로, 망설임 없이 밖으로 나가려는 모습에 세이야와 슌이 의아한 듯 질문을 던졌다. 그에 걸음을 멈추고 고개만 돌린 채로 잇키가 태연하게 말한다.
“지금부터 사가를 때리러 간다.”
“에?”
예상 못 한 말에 세이야가 멍청히 반문했다. 동시에 그 말을 듣고 시류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 그렇군.”
“뭐?”
다음은 효가.
“그냥 넘어갈 뻔했다.”
“자, 잠깐!”
마지막으로 슌이 손을 든다.
“나도 갈래!”
“슌까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세이야에게 마치 짜 맞추기라도 하듯 세이야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라고 말하며 네 명이 상큼한 미소를 되돌린다. 상냥하고 티끌 한 점 없는 깨끗한 미소인데도 어째서인지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른다. 기백에 압도당한 세이야는 소년들을 말릴 생각도 못 한 채 그저 사가의 무사만을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