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rumada

[L.C./알바피카+레굴루스+텐마] 닿아온 체온

citrus_ 2014. 5. 10. 10:13




 최대한 코스모를 숨기고 조그만 소리조차 나지 않게, 그렇지만 발걸음은 가능한 빠르게 하여 걷는다. 알바피카는 동방의 닌자를 방불케 하는 움직임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숨듯이 성역을 가로질렀다. 원래도 타인의 눈에 띄는 것은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몸을 숨기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이다. 무심코 어쩌다 이런 모습이 되었나, 반추하다 어깨가 크게 흔들리고, 즉시 발소리가 울렸다. 조용한 가운데 크게 퍼진 소리에 주위를 황급히 둘러본다. 다행히 아무도 없다. 알바피카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곧 입가에 쓴웃음을 띄웠다.


 어쩌다 이런 모습이 되었나.


 답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칙명이에요.」


 뇌리에 가느다란 인영이 떠오른다. 방울 같은 목소리로 웃던 조그만 소녀. 자신이 지켜야만 하는 가냘프고, 강하고, 상냥함과 자애가 흘러넘치는 여신. 아직 어리지만 마냥 기대고 싶게 만드는 그녀. 그렇지만 그렇게 말했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장난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다고 소녀를 탓하는 건 아니었다. 모두를 사랑하는 여신은 언제나 타인의 아픔을 보아 넘기지 못한다. 모두 감싸고 보듬어주려 한다. 그러한 점을 알바피카는 존경하고 감사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은 조금 지나치지 않았나, 하고 알바피카는 생각했다.


 몸에 흐르는 독혈이 누군가를 상처 입힐까 두려워 알바피카는 타인과 닿는 것을 꺼려왔다. 점점 고독해지는 그를 여신은 필경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이전에 닿아도 괜찮다, 고 그에게 직접 말해주기까지 했었다. 당시 알바피카는 그 말에 가슴에 안온한 감정이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수년간 계속된 행동을 쉽게 바꿀 수 있을 리도 없다. 알바피카는 여전히 타인과 닿는 것을 꺼리고 있었고, 여신은 그의 행동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결국 아테나가 칙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 날, 알바피카가 처음 만난 사람과 반드시 껴안아야 한다고.


 알바피카는 지금도 그때의 감정을 똑똑히 떠올릴 수 있다. 소녀의 말에 순간 반응하지 못하고 한 박자 뒤에 예? 라고 반문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것을 농담이라 여겼다. 하지만 절대로 농담이 아니었다. 그가 그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농담이 현실이 되어버렸을 때, 알바피카는 경악하고 항의하고 마지막엔 절망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타인의 눈을 피해 다니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사실 대부분은 아테나의 칙명을 쓴웃음으로 넘겨주니까 크게 상관없다. 하지만 개중에 고지식하게, 또는 짓궂게 칙명에 따르는 사람이 있으니까 문제였다. 전자는 엘시드이고 후자는 마니골도이다. 특히 마니골도가. 놀리지 말아 주었으면 하지만…….


 상념을 떨치듯 고개를 흔들고, 알바피카는 잠시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특별히 목표로 하는 곳은 없지만 성역 외각이 인적이 드물 것이란 생각에 그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그렇게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기고 숨을 죽여 가며, 타인에게 들키는 일 없이, 알바피카는 무사히 외각에 도착했다.



* * *



 예상대로 외각에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나중에 돌아갈 때가 조금 걱정이지만 이걸로 오늘 하루는 그럭저럭 무사히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고 했던 알바피카는 시야에 담기는 의외의 조합에 놀라 몸을 뺄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어?”

 “아!”

 “…….”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의 소년과 반가워하는 표정의 소년. 그다지 교류는 없지만 두 소년이 누구인지 알바피카는 잘 알고 있다. 사실 이 두 소년을 모르는 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 옳다. 페가수스의 텐마와 레오의 레굴루스. 기묘하다면 기묘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은 조합에 알바피카는 잠시 입술을 떼지 못했다. 둘 사이를 이어줄 만한 미싱 링크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 둘은 얼굴도 잘 모르는 사이였을 텐데. 그렇지만 성전에서 그가 모르는 사이에 나름의 유대를 쌓았을 수도 있다.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알바피카는 나름대로 납득했다.


 “알바피카!”


 상념을 끊어내듯 방방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레굴루스에게 알바피카는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제 이걸로 도망치지도 못하게 되었다. 알고 있는 상대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고 무엇보다 그 상대 중 하나가 잠재능력만으로 따지면 골드 세인트 중 최강일지도 모르는 레굴루스다. 도망쳐버리면 야생의 본능이든 뭐든 간에 무슨 이유로도 따라올 이 소년에게서 알바피카가 도망칠 수 있을 리 없다. 


 한껏 치밀어 오르는 한숨을 억누르는 데 뺨에 강한 시선이 닿는다. 무엇인가 하고 고개를 돌리니 텐마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놀란 듯 크게 뜨인 홍차색 눈동자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탄이 떠올라 있다. 익숙하지만 언제고 유쾌하지 않은 반응에 알바피카는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뭐지?”


 조금 불쾌감을 담아 묻자 텐마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조금 멋쩍은 듯 붉게 물든 뺨을 긁으며 웃었다. 


 “아니, 알바피카는 미인이구나 싶어서~”

 “…….”


 텐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만면한 미소는 밝고 쾌활하다. 상대가 깔보거나 농락하는 기색이라면 알바피카도 망설임 없이 화를 냈겠지만 소년 특유의 천진난만함으로 말하고 있으니 그것도 불가능하다. 잘 모르지만 들은 텐마의 성격대로라면 필시 칭찬이겠지. 그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돌리는 것이 전부였다.


 화를 내지도, 감사의 인사를 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알바피카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최대한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레굴루스가 한발 빨랐다.


 “그런데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


 가벼운 질문에 발걸음에 제동이 걸리고 다시 말문이 막혔다. 소년들의 악의 없는 연타에 알바피카는 차라리 쌍어궁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고 절절하게 후회했다.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필사적으로 시선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고 텐마가 무언가 알아차린 듯 손바닥을 주먹으로 툭 쳤다.


 “칙명 때문이구나!”

 “아, 그런 거야?”

 “…….”


 정답이다. 지쳐버린 알바피카는 더이상 표정관리를 포기했다. 곤란과 한탄으로 얼굴을 물들이는 알바피카를 보고 텐마가 아하하 웃음을 터뜨린다. 그 녀석, 예전부터 가끔 대담한 짓을 하곤 했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년의 말에는 즐거움과 함께 아릿한 향수가 깃들어 있다. 그에 알바피카는 눈앞의 페가수스가 여신과 어린 시절 함께 자란 소꿉친구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하는 듯한 태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는 표정. 친우라기보다는 가족과도 같은 모습에 알바피카는 아련함을 느낀다. 예전에 자신도 저런 관계를 바란 적이 있었다. 자신의 스승 루고니스와. 반사적으로 주먹을 꼭 쥐었다. 달콤한 괴로움이 가슴에 치밀어 오른다. 거기에 신경을 뺏겨, 알바피카는 눈앞의 소년들이 서로 속닥대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정신을 빼앗긴 찰나의 순간, 몸이 크게 떠밀렸다.


 “……읏!!”


 소년들이 알바피카에게 뛰어들 듯 세게 껴안는다. 갑작스레 더해진 무게에 미처 버티지 못하고 셋이 한 덩어리가 되어 뒤로 넘어졌다. 코끝에 짓밟힌 풀과 흙의 냄새가 맡아지고, 푸른 하늘에 소년들의 웃음소리가 높게 퍼진다. 텐마인지 레굴루스인지, 누군가가 칙명이니까! 라고 즐겁게 외친다. 어서 빨리 둘을 떨쳐버리고 싶어도 불리한 자세에서는 제대로 움직이는 것조차 가능하지 않아, 알바피카는 그저 떨어지라고 목소리만 높였다. 소년들의 몸이 묵직하다.


 닿아 온 사람의 체온은 사무치게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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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놓으면 이런 글을 씁니다. 괜찮아 내 취향에 들어 맞으니까^ㅂ^(해맑

50kg대의 소년 x 2 + α 의 무게에 깔리 알바피카 오빠에게 묵념 그리고 깨닫고보니 알바피카 오빠 대사가 쩜쩜 밖에 없었단 사실에 경악;ㅂ; .......사랑해요 오빠♡

모든 애들을 두루두루 써보고 싶은데 역시 좋아하는 캐릭터 위주로 쓰게 돼서... 쩜쩜......´.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