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Ω/에덴코우] 자각
모든 것이 끝나고 둘이서 여행을 떠난 뒤로부터는 비슷한 나날의 반복이었다. 목적지 없이 느긋하게 걷고, 들판에서 밤을 맞으면 그대로 야영을 하고, 마을에 도착하면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롭게 쉰다. 마을에 따라 하루 만에 떠날 때도 있고 며칠씩 묵을 때도 있다. 일정을 재촉하는 일도, 코스모를 써가며 빠르게 달릴 일도 없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여행 일정. 그리고 그 안에서 에덴은 자신과 코우가 사이에 있는 약간의 거리를 느끼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럭저럭 끊어지지 않을 정도의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도 겨우 최근의 일이다. 에덴이 좀처럼 타인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던 만큼, 소우마들처럼 코우가와 마냥 가깝게 지낼 수는 없다. 그럴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두 사람 사이에는 없었다. 함께 보낸 시간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 사실이 괴롭지는 않았지만 에덴은 때때로 뭐라 말할 수 없는 초조감을 느꼈다. 예를 들면 야영 시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흐르는 숨소리를 들을 때.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 인파에 휩쓸려 어느새 멀어졌을 때. 적당한 얘깃거리를 찾지 못해 침묵을 둘 사이에 떨어트리고 있을 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난폭한 충동이 치밀고, 그에 제멋대로 행동하려다가도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몰라 결국 행동을 멈추게 된다. 마지막에는 차라리 혼자 여행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그에 대한 강한 반발로 마음을 가득 채운다. 에덴의 어색함을 코우가도 눈치채고 있음이 틀림없다. 평소에는 쾌활하게 행동하다가도 가끔 배려하는 듯한 기색을 보이곤 했으니까. 대놓고 묻지 않아 주는 게 고마웠다. 묻는다면 분명 에덴은 답할 말을 찾지 못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답답함에 에덴은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둘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거다. 이대로 조금 더 스스럼없이 행동할 수 있게 되면 이 위화감도 곧 사라질 것이다. 비록 그 이유를 알게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다시금 한숨을 내쉬자 조금 떨어진 곳에 누워있던 코우가가 부스럭 소리를 낸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소년이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모포 아래서 빼꼼 드러난 얼굴은 무엇이 불만인지 삐죽 입술을 내밀고 있다. 당황한 에덴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흘렸다.
“아직 안 자고 있었던 건가?”
“옆에서 그러는데 잠이 오겠냐.”
투덜거리는 코우가의 말에 에덴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까지 한심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걸까.
코우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에덴의 곁으로 다가와 앉는다. 모닥불에 붉게 비친 얼굴에 명암이 뚜렷하게 드리워진다. 갑작스럽지만 의외로 섬세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에덴은 생각했다. 조그만 얼굴에 인상적인 커다란 눈동자. 자세히 보면 기다란 속눈썹. 아직 어리기 때문인지 선이 얇다. 무엇에 홀린 듯 어린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데 문득 코우가가 입을 연다.
“에덴은…… 아리아를 잊지 않을 거지……?”
괴롭고 딱딱한 목소리에 한 박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 한 박자, 도합 두 박자 대답하는 것이 늦었다. 약간 입을 벌리고 멍한 표정의 에덴을 보고 코우가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힘없게 웃는다. 그렇지만 그 가는 미소도 곧 씁쓸함으로 변한다. 더욱더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졌다.
코우가가 두 무릎을 세우고 거기에 얼굴을 파묻는다. 에덴과 비교하면 조그만 몸이 웅크리자 더 조그맣게 보인다. 아니, 그러니까……. 하고 꺼질 듯한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잇는 모습에 꽉 껴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다. 손끝에 힘을 줘 간신히 참아내고, 에덴은 코우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모두…… 아리아를 잊어가…….”
코우가의 말에 에덴은 반사적으로 푸른 물색의 소녀를 떠올렸다. 반짝이던 눈동자의 색처럼 한없이 깨끗하던 소녀. 움직임도, 표정의 변화도 적던,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 같던 소녀. 스스로 무언가 하는 일은 적었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상냥하고 따뜻하게 가슴을 채워주던, 에덴이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했고 사랑했던 소녀. 그리고 아마 코우가 역시─
무언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 에덴은 코우가를 눈동자에 담았다. 하지만 그런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코우가는 목소리를 계속 이끌어낸다. 듣는 사람이 더 괴로워질 듯한 어조로.
“계속…… 아리아의 일을 슬퍼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어. 이해하고 있어. 그래도, 가끔…….”
그게 괴로워, 라고 말을 마치고 코우가는 더욱 몸을 웅크렸다. 가늘게 떨리는 어깨를 보고 에덴은 가슴 한구석이 죄여오는 것을 느꼈다. 여느 때보다 훨씬 답답하고 이제는 슬프기까지 한 위화감이 밀려 닥친다. 아리아. 반사적으로 소녀의 이름을 뇌까린 에덴의 입가에 자조가 떠오른다. 이 감정의 정체를 에덴은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분명, 분명,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는다면.
에덴이 천천히 입술을 연다.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니까 또 다른 본심을 토해낸다. 괴로움을 가슴에 울리며.
“아리아는……, 아리아를 사랑했던 일은 모두 과거의 일이다. 이제 나는 더는 그에 얽매이지 않아.”
소년의 몸이 더욱 크게 떨린다. 예상했던 반응에 눈을 내리깔고, 두 손을 맞잡아 깍지를 끼며 에덴은 그렇지만, 하고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분명 없었던 일로 치부하고 잊을 수는 없겠지. 아마도, 평생.”
에덴의 말에 코우가가 고개를 들었다. 물기에 젖은 다갈색 눈동자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반짝인다. 놀란 듯했던 표정이 천천히 부드럽게 풀린다. 응, 그러네. 하고 연삽하게 웃는 모습이 애처로운 동시에 사랑스러웠다.
얄궂게도 에덴은 그 순간 초조함의 이유를, 그리고 그 초조함이 앞으로 거리가 좁혀진다 하더라도 사라질 일이 없을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무의식중에 예감하고 있던 슬픈 이유. 에덴은 눈앞에 있는 이 조그만 소년을, 코우가를,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전보다도 더욱 강하게, 사랑하던 소녀조차 무심코 질투해버릴 정도로, 그렇게, 스스로 괴로움에 떨면서도 기쁘게─
마음에 품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