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Epi.3 소년과 묘지의 유령 上
Boy and Phantom
가까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머리 위로 요정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텐마! 노을의 아이야!」
귓가에서 꽥꽥 소리가 울린다. 외친 건 녹갈색의 깃털을 가진 새의 모습을 한 요정이다. 이름은 모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없다. 요정은 원래 오롯하고 대체할 수 없는 존재나 패밀리어가 아닌 한 전체의 명칭─이라곤 해도 거의 인간이 붙인 것이지만─으로 불릴 뿐, 개개가 이름을 가지진 않는다. 이 요정의 경우는 실프나 아리엘일까. 텐마는 속으로 몰래 어치Jay라고 부르고 있다. 이유는 물론 시끄러워서다.
「텐마! 텐마!」
“……또 뭔데.”
절로 퉁명스러운 말투가 튀어나왔다. 냉담하다고 느껴질 만한 태도지만 텐마는 딱히 반성하지 않았다. 이 녀석은 자신에게 들러붙는 요정 중에서 가장 격의 없고, 가장 수다스럽고, 가장 쓸모없는 정보만 가져오니 당연하다, 고 생각한다. ……조금쯤은 미안한 맘이 없는 건 아니긴 하지만.
텐마의 태도에도 신경 쓰지 않고 요정이 목소리를 높였다. 노래를 부르듯 리듬까지 붙였다. 시끄러워서 썩 들어줄 만한 게 못되긴 해도.
「손님! 손님! 손님이 와!」
“손님?”
의외의 말에 무심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첫째로 이 집에 손님이 올 리가 없다.
도코의 경우 그 위치상 교류 관계가 있는 건 대부분 마법사뿐이다. 그리고 마법사의 경우 워낙 폐쇄적인 인간들이 많기 때문에─성격이 그렇다기보다는 연구와 작업에 몰두하느라 자동으로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버리는 것이지만─ 일부러 상대를 찾아올 정도의 정성을 보일 리가 없다. 제아무리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어도 편지나 전령을 이용하는 게 마법사란 족속들이다. 더구나 지금은 도코조차 집에 없다. 공식적인 일로 나갔으니 그의 부재는 대부분 알고 있을 터인데.
그리고 텐마에 이르면 아예 찾아올 지인 자체가 없다. 기억상실은 여태까지의 교우관계를 끊어버리기에 충분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원래 넓은 교우 관계가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지만. 굳이 올 사람을 찾아보자면 시지포스나 레굴루스 정도일까. 하지만 그 둘이라면 모르는 얼굴도 아니니 어치가 굳이 손님으로 지칭했을 리 없다.
“도대체 누가 온 거야?”
혼잣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치가 머리카락을 물어 당긴다. 아프다기보다는 거추장스럽다. 텐마는 손짓 하나로 요정을 떨어트렸다. 가볍게 항의가 돌아왔지만 무시. 저러다 금방 잊어버리고 또 귀찮게 굴 게 뻔하다.
어쨌든 손님이라는 데 나가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뭐, 수상한 목적으로 온 인간일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엔 적당히 때려 눕혀주면 그만이다. 약삭빠르긴 해도 요정들이 저를 그냥 당하게 내버려 두지 않으리란 계산도 있었다.
텐마는 정보료로 요정에게 초콜릿을 한 조각 던져주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때마침 초인종이 울린다.
“지금 가!”
목소리를 높이고 뛰었다. 벌컥 문을 열자 놀란 듯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자수정의 눈동자가 사르르 가늘어졌다.
“아……, 시온?”
“음, 오랜만이다. 텐마”
도코의 친구, 다시 말해 실질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는 유일한 상대 시온이다. 아, 그래. 시온이라면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지만─
“도코는 없는데?”
손님이라는 말을 듣고 떠올리지 못한 이유도 이것이다. 시온은 도코의 친구이지 텐마의 친구가 아니다. 나름대로 친분도 있고 사이도 나쁘지 않지만 도코가 없는 데 일부러 와서 하하호호 떠들만한 사이도 아닌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텐마의 말을 듣고 시온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다.
“없다고?”
“어제저녁에 북쪽엔가 간다고 하던데. 몰랐던 거야?”
“……확인하지 않았어.”
어지간히 낭패인지 목소리가 침통하다. 혹시 일 때문에 온 걸까. 그런 거라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라는 시선을 보자 시온이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쉰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해도 될까.”
“어? 하지만 도코에게 볼일이 있는 게…….”
“볼일이 있는 건 너에게야.”
나? 자신을 가리키자 시온이 고개를 끄덕인다. 덕분에 텐마는 더더욱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니까 일부러 하하호호 떠들만한 사이도 아니라니까. 하지만 볼일이 없다고 내쫓을만한 사이도 아니기에 텐마는 기꺼이 시온을 집안으로 들였다.
한 발짝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시온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이번엔 심리적 이유가 아니라 물리적, 이라기보다는 영적인 이유 때문이겠지. 힘의 특성상 요정이 흘러넘치는 이 공간이 편안하지는 않을 터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마땅히 해줄 방법이 없는지라 텐마는 애써 모른 척했다. 역시 도코가 있기는 있었어야 했어.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느니, 이래서 살 수는 있는 거냐는 둥, 등 뒤에서 시온이 심각하게 중얼거린다. 반쯤은 넋이 빠진 것 같다. 텐마는 시온을 억지로 끌어다 앉히고 손님 대접을 위해 홍차─브라우니 제─와 마들렌─역시 브라우니 제─을 꺼냈다. 시온은 그제야 간신히 진정했다.
“그래서 볼일이란 게 뭔데?”
얘기를 진행하기 위해 반쯤 억지로 질문을 던지자 시온이 자세를 바로 했다. 기분 탓인지 전신에 결연한 기색이 감돌고 있다.
“이번에 정식으로 마법사가 되기로 했다고 들었어. 맞지?”
“아, 응.”
어떻게 알았는지는 묻지 않는다. 어차피 도코가 미주알고주알 다 일러바쳤을 게 뻔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어차피 새로운 마법사─제자나 후보까지─의 탄생은 협회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 사항이니 어떻게든 알려지게 돼 있다. 감시와 통제를 위해서라도.
텐마로서는 격렬하게 부정하고 싶고, 주변을 보면 정말일까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자기본위적 성향이 강하다. 무슨 말이냐면 개인의 호기심이 세간의 도덕을 이긴단 소리다. 실제로 이 업계에 몸담고 있으면 이번에 누가 실험을 하다 어디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니 어쨌니 하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것뿐이면 다행이게. 심지어 개중에는 강한 요정의 심기를 건드려 자연재해 수준의 사고를 일으키는 멍청이들도 있다. 이런 녀석들 때문에 협회는 눈에 불을 켜고 마법사들이 있는 곳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폐쇄적인 만큼 자신의 위치를 숨기려 하는 자도 있었지만 전혀 소용없었다. 마력에 민감한 요정들에게 마법사의 위치를 숨기는 것만큼 한심한 짓은 없는 것이다. 결국, 근래에 이르러서는 모든 마법사가 협회에 굴복하고 자신들의 위치를 자진신고하기에 이르렀다─ 라는 게 시지포스의 설명이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협회원에게 인사도 가야 할 거고.”
이것도 들었던 것 같다. 정확히는 시지포스가 엄청 열심히 설명해 주긴 했는데 대충 흘렸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요약하자면 결국 협회는 사소한 일에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으니 서로 감시하란 얘기였던 것 같다. 솔직히 모여서 사고나 안 치면 다행인듯싶지만.
앞의 내용에 비해 이 내용이 대충대충인 이유는 텐마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변에 있는 녀석들이라 해봤자 한 명은 동거인이고 다른 한 명은 스승인데 인사는 무슨. 뭐, 그 외에도 한, 두 명인가 더 있다고 듣긴 했지만─
“근데 그게 시온이랑 무슨 상관인데?”
타인에게 텐마를 소개하는 건 스승인 시지포스의 역할이다. 사정이 영 여의치 않으면 도코가 나설 일도 없진 않겠으나 어쨌든 시온과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무관한 일인 것이다. 빤히 바라보자 시온이 흔들림 없이 홍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사실 이번에 소개시켜 줄 사람이 내게는 친척이 되는지라.”
아아, 과연. 그런 거라면 납득이 간다. 그러면서도 텐마는 내심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말하는 시온의 안색이 나아질 생각을 안 했기 때문이다. 요정들 때문이라고 보긴 어렵고, 친척이란 녀석이랑 사이가 안 좋나? 그렇다면 굳이 나서서 소개해 줄 필요는 없는데.
텐마의 생각을 읽었는지 시온이 다만, 하고 말을 이었다. 목소리가 오늘 중에서, 아니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중에서 제일 어둡다.
“묘지……에 가야 해서…….”
“……………….”
기나긴 침묵 끝에 텐마는 딱 한 마디만 내뱉었다.
“우와 그것참 위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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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소년 발라드. 참 신기한 게 소년 발라드는 다른 소설에 비해 시작은 제일 어렵지만 쓰기 시작하면 제일 쉽게 써지더라구요 왤까요<
그나저나 그 사람이랑 유령은 또 하편으로 미뤄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