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아카/토도이즈]연애 윤무곡(Love Rondo)
-캐붕 주의
-오글거리는 글입니다.......아마
0.
미도리야와 토도로키가 양짝사랑을 하고 있다는 건 1학년 A반 주지의 사실이었다. 제일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미도리야와 가까웠던 우라라카와 항상 침착하고 시야가 넓은 아스이. 다음은 언제나 친구들에게 신경 쓰는 키리시마였고 언제나 사랑 이야기에 촉각을 세우고 있던 아시도도 제법 빨리 눈치챘다. 그 뒤로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비슷하게 알게 돼, 2학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B반 학생들과 선생님들 일부에게도 공공연한 진실이 되어버렸다.
하나 당사자들은 서로의 감정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떠올리지 못했다는 말이 옳다. 혹시? 하는 생각이 들 법한 상황에서도 자기 평가가 낮은 미도리야는 토도로키 군이 설마 나 같은 걸……, 이라며 애써 미련을 떨쳐버렸고, 토도로키는 미도리야가 워낙 상냥하기에 자신에게도 남들과 비슷한 친절을 보이는 거라 생각해 깊은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퍽 답답한 상황이었으나 주변인들은 나름 따뜻한 시선으로 두 사람의 삽질을 지켜봐 주었다. 둘의 감정이 워낙 노골적이었기에 저러다 금방 알아차리겠거니, 그도 아니면 견디다 못한 누군가가─아마 토도로키가─ 곧 폭발해 고백하겠거니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느긋하기 짝이 없었다.
모두의 예상을 배반하고 체육제를 기점으로 시작되어 히어로 킬러 사건 즈음 본격적으로 불붙었던 두 사람의 사랑은 2학년이 되어서도 완성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모두는 깨달았다. 아, 이거 잘못하면 10년 동안 썸만 타다 끝나겠구나.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은 A반 전원은(바쿠고 제외) 그제야 부랴부랴 둘을 이어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미도리야와 토도로키는 소중한 동료이고 친구다. 그런 두 사람이 사랑에 속앓이하는 모습을 더는 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조금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뻔히 보이는 걸 조금도 눈치 못 채고 있으니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복장이 터져 죽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시작된 A반의 노력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글로 써보라고 한다면 눈물에 젖은 리포트 100장도 쓸 수 있을 정도다. 어떻게든 두 사람만의 시간을 만들어주고, 은근슬쩍 쟤가 너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냐고 언질하고, 유치한 질투 작전도 써보고, 육탄전으로 밀어붙여도 보고. 그럼에도 두 사람은 완고할 정도로 한결같이 모두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었다. 결국 열 받은 몇 명이 두 사람에게 약이라도 먹여서 한방에 가두려다 아이자와 선생님께 들켜 혼났을 정도였다─카미나리는 당시 아이자와 선생님이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라고 말했던 걸 결코 잊지 못한다─.
거두절미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모두의 노력은 보답 받았다. 미도리야와 토도로키가 서로의 손을 잡고 우리 사귄다, 라고 고해온 날 A반에선 파티가 열렸다. 이제 더 이상 그 꼴을 안 봐도 된다! 누군가 외친 말에 몇몇은 깊이 동감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게 또 다른 지옥의 시작이란 걸, 그때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1.
기본적으로 아침과 저녁은 기숙사 측에서 제공하고 있긴 했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누구라도 자유롭게 부엌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어차피 모두 히어로 과의 고등학생들이다. 대개는 제대로 된 요리 실력도 없었고, 설령 있다 해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빡빡한 훈련에 지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게 현실이다. 배가 고프면 차라리 편의점에 가는 게 여러 면에서 효율적이란 게 모두의 생각이었으므로 부엌에 사람이 얼씬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였으나, 정작 공동 스페이스로 내려온 세로가 본 것은 좁지도 않은 부엌에서 딱 달라붙어서 요리를 하고 있는 미도리야와 토도로키의 모습이었다. 신혼은 기숙사가 아니라 신혼집에서 즐겨주지 않을래.
“……너희 뭐 하고 있는 거야?”
어설프게 말을 걸자 미도리야가 방긋방긋 웃으며, 토도로키는 평소와 비슷한─그렇지만 조금 뚱한─ 무표정으로 뒤돌아봤다. 세로 군! 언제나처럼 반갑게 반응해 주는 급우에게 세로는 대충 손만 흔들었다. 사실 좀 더 정감 있게 답해줄 수도 있긴 하지만 옆에 토도로키의 시선이 좀, 아니 꽤 부담스럽다.
그래서 뭐 하는 데? 다시 묻자 토도로키가 태연히 대답한다. 요리. 아니, 그건 보면 알지만. 세로의 심정을 알아차렸는지 미도리야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사실은 토도로키 군이 졸업하면 자취한다길래 요리할 줄 아냐고 물었더니 전혀 못 한다고 해서. 그, 그래서 가가가가가가같이 여, 연습이나 할까 하고! 뭔가 이상한 속셈이라든지 함께 있을 핑계를 찾았다든지 하는 건 아니니까!!!”
오, 과연. 미래를 대비하는 건 중요하지. 솔직히 자취한다고 해봤자 지금이랑 비슷하게 편의점이나 들락거리고 있을 것 같지만 스킬을 쌓아둔다고 손해 보는 건 없을 거고. 세로는 내심 감탄했다. 물론 후반부는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괜히 둘 사이에 파고들어 봤자 좋은 꼴 못 본다는 건 간접경험으로도 뼈저리게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니 지금의 난 오로지 훌륭한 동료들에게 감탄하는 사람일 뿐이야. 그나저나 미도리야 변명 진짜 못하는구나.
하지만 세로에겐 불행히도, 사실 처음부터 있었던 아스이와 우라라카는 그의 도피를 허용하지 않았다. 친절하게 어깨를 덥석 부여잡고 퇴로를 차단하기까지 한다.
“세로 쨩, 속으면 안 돼.”
“응, 응!”
“지금 미도리야 쨩이 만드는 건 소바고 토도로키 쨩이 만드는 건 가츠동이야.”
“그리고 데쿠 군이 좋아하는 건 가츠동, 토도로키 군이 좋아하는 건 소바지!”
“……그런 건 끝까지 모른 척하고 싶었다고!!”
어느새 ‘소바, 토도로키 군의 입에 맞았으면 좋겠네.’ ‘미도리야가 만들어 준거라면 분명 맛있겠지.’ 따위의 대화를 하며 서로 음식을 먹여주고 있는 한 쌍의 바퀴벌레를 보고 세로는 절규했다.
2.
사실 미도리야와 토도로키가 사귀기 시작했을 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정식으로 교제도 시작했겠다, 하는 김에 공인도 했겠다, 더는 참을 필요가 없어졌으니 은근히 폭주하는 기질이 있는 토도로키가 수업에서까지 욕심을 발휘해 미도리야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배반하고 토도로키는 놀라울 정도로 평범하게 수업에 임했다. 이는 토도로키가 공사 구분이 철저한 인간이라서기 보다는 미도리야와 미도리야의 꿈을 제대로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덕분이다. 무엇보다 토도로키 역시 무척이나 진지하게 히어로를 꿈꾸는 소년이기도 했고.
그리하여 사귀고 나서 첫 번째 실습 훈련 시간, 토도로키는 시종 안절부절 불안해하면서도 뛰쳐나가는 일 없이, 나름대로 침착하게 수업을 끝마쳤다. 다만 토도로키의 침착함은 어디까지나 수업시간 동안만이었다.
“미도리야!!”
미도리야와 키리시마 조를 끝으로 수업이 끝나자마자 토도로키가 우다다 달려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디서 빌런이라도 나타났나 할 정도로 당황한 모양새였으나 이미 익숙해져버린 터라 A반 전원은 모르는 척 시선을 돌렸다. 그건 미도리야도 마찬가지라 연인의 호들갑을 보고도 그냥 웃었다. 연삽한 미소가 퍽 다정하다.
평소라면 토도로키도 여기서 진정했을 것이다. 한데 어째 오늘은 좀 다르다. 잘생긴 얼굴에 희미하게 금이 갔다.
“상처는 괜찮아?”
상처가 있냐고 묻는 게 아니라 있다는 걸 확신하는 물음이라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수업은 평범한 구조 훈련이라 딱히 다칠만한 부분이 없던 탓이다. 물론 무너져가는 빌딩에서의 수업이었기에 나름대로의 위험성은 있었다곤 하지만 미도리야도 키리시마도 별문제 없이 훈련을 끝마쳤는데.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토도로키가 미도리야의 오른팔을 덥석 잡았다. 아. 미도리야도 그제야 알아차렸다. 코스튬을 걷어 올리면 더 명확했다. 어디서 긁힌 것인지 피부가 벗겨져 있었다. 한 3cm쯤. 피부도 울긋불긋해지기만 했지 딱히 피가 줄줄 흐르는 것도 아니었다.
상태를 확인한 토도로키의 표정이 더욱 침통해졌다. 우와, 귀여워. 미도리야는 튀어나오려던 말을 삼키며 보이지 않는 토도로키의 귀를 슬슬 쓰다듬었다.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 그러는 토도로키 군이야말로 상처 괜찮아?”
그러고 보니 토도로키도 다쳤더랬다. 뛰어가다 갑자기 튀어나온 구조물을 보지 못해 생긴 상처였다. 토도로키가 눈 밑을 길게 찢어 놓을 때, 미도리야가 발을 동동 구르는 걸 우라라카는 바로 옆에서 봤다. 하필 다쳐도 피부가 얇은 부분을! 그렇게 외치는 미도리야에게 그건 반창고 하나만 붙이면 되는 상처라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지금도 그랬다. 고작 찰과상인데 ‘걱정되니까 더는 다치지 말아줘, 토도로키 군.’, ‘미도리야, 네가 상처 입은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같은 대화를 반복하며 신파극을 찍는 두 사람을 보고 누군가 불쑥 중얼거렸다.
“……다쳤으면 양호실에 가라고.”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A반 대부분은 그 말에 동의하며 교실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3.
아시도는 최근 미도리야와 토도로키를 붙잡고 수다를 떠는 데 취미를 붙였다. 물론 목적은 두 사람의 연애 이야기였다. 가볍게 찌르기만 해도 여러 사건이 쏟아져 나오니 이게 제법 재미있었던 것이다. 특히 지나치게 단답형이고 마이페이스인 토도로키에 비해 지나치게 중얼거림이 심하고 요령 없는 미도리야를 놀리는 재미가 톡톡했다. 실전 훈련에서는 꽤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는 주제에 토도로키만 관련되면 금방 얼굴이 새빨개져서 변명인지 자랑인지 모를 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꽤 귀엽기도 했다.
이런 감정은 아시도만이 가진 것이 아니었는지 공동 스페이스에서 미도리야를 붙잡고 얘기하고 있자면 어디선가 급우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와 이야기에 끼어들곤 했다. 평소 둘이 달달한 분위기를 풍길 때마다 닭살이니 뭐니 질색을 하면서도 정작 이야기는 궁금한 모양이었다. 심지어 토도로키도 불쑥불쑥 끼어들곤 했다. 이쪽은 이야기가 궁금한 게 아니라 미도리야가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보고 싶다거나 미도리야가 자신을 칭찬하는 걸 듣고 싶어 하는 것뿐이겠지만.
때문에 아시도와 하가쿠레는 토도로키가 소리 없이 등장했을 때 이번에도 그러한 일이라 생각해 방심하고 있었다.
“미도리야, 이거.”
예상과 달리 토도로키는 그저 상자 하나를 불쑥 내밀었을 뿐이다. 상당히 커다랗고 화려한 상자였다. 이게 뭐야? 고개를 갸웃거린 미도리야와 대조적으로 아시도와 하가쿠레는 바로 상자에 박힌 로고를 알아보았다.
“앗! 그거 이번에 새로 생긴 마카롱 가게의!!!”
냅다 소리를 지르자 토도로키가 수줍게 눈썹을 팔랑거렸다. 미도리야 앞에서만 보이는 스페셜 이모션이다. 하나 이미 익숙해져 버린 미도리야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모습을 넘겨버렸다.
“아, 낮에 우라라카 씨가 말했던 곳?”
그거라면 하가쿠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원래 우라라카랑 얘기하던 게 자신이기 때문이다. 아스이까지 합해서 셋이 이번에 생긴 가게가 그렇게 예쁘다더라, 마카롱이 참 맛있겠더라, 먹고 싶어, 나중에 같이 가자, 따위의 얘길 하다 옆을 지나가던 미도리야에게 나중에 데쿠 군도 같이 갈래? 하고 우라라카가 가볍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어라, 근데 그때 토도로키는 근처에 없었는데.
의아해하는 여자애들의 심정도 모르고 토도로키는 미도리야만 빤히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옆에 아시도랑 하가쿠레가 있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도리야가 먹고 싶다고 해서.”
아니, 먹고 싶다고 한 건 우리인데요. 하가쿠레는 멋대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꿀꺽 삼켰다. ‘고마워.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이 사 왔어?’ ‘미도리야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종류별로 하나씩 사 왔어.’ ‘토도로키 군도 참…….’ 그 와중에도 대화는 착착 진행된다. 미도리야는 토도로키의 부르주아적 행동에 질려 하면서도 영 싫지 않은 눈치였다. 나도 저런 남친~!! 아시도가 울음을 삼켰다.
“두 사람도 같이 먹자.”
불현듯 미도리야가 이쪽을 돌아봤다. 괜찮아? 아시도는 무심코 되물었다. 미도리야가 눈꼬리를 휘며 웃는다. 어차피 혼자 다 못 먹어. 반사적으로 토도로키의 눈치를 살피자 아무래도 좋다는 표정이었다. 그렇다면야, 잘 먹겠습니다!
느닷없는 해프닝이었으나 마카롱은 맛있었다. 미도리야도 맘에 들었는지 뺨을 볼록하게 만들어가며 오물오물 잘도 먹고 있다. 꼭 햄스터 같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토도로키의 손가락이 미도리야의 입가에 묻어있던 조각을 훔쳐갔다.
“묻었어.”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집어넣는다. 삽시간에 미도리야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토, 토, 토도로키 군!!”
“왜?”
“왜, 왜냐니!! 아, 아니, 그…… 토도로키 군은 아, 안 먹어?”
“네가 먹고 있는 걸 보기만 해도 배불러.”
우와. 저 대사 실제로도 나오는구나. 아시도와 하가쿠레는 그저 묵묵히 마카롱을 입안에 집어넣는 데만 주력했다.
0.
미도리야와 토도로키의 연애질이 점점 견디기 힘들어질 때쯤, 카미나리는 둘 사이에 있는 게 힘들지 않냐고 이이다에게 물어봤다. 아무리 셋이 어울리는 일이 많은 위원장이 타격이 제일 클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이다는 오히려 카미나리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며 대답했다.
“미도리야 군도 토도로키 군도 모두 내게는 소중한 친구다. 그런 친구들이 사이좋고 행복하다면 무엇보다 좋은 일 아닌가.”
이이다의 말에 A반은 반성했다. 하긴 되돌아보면 둘이 저러라고 붙여준 게 바로 자신들 아닌가.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했던 건지. 이전에 사랑의 열병에 괴로워하던 모습을 보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은가. 물론 가끔은 배 아프고, 가끔은 손발이 오그라들고, 가끔은 열 받지만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소중한 동료였다. 그러니 부디 행복하기를!
“미도리야, 좋아해.”
“……나도, 토도로키 군.”
“그래도 역시 눈앞에서 그러고 있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