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프텐]생에 불가결한
※미약하지만 성(性)적 행위와 관련된 묘사가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그러므로 너를 구했다.
T.
무아몽중이었다. 현실과 꿈결의 틈새에서 주어지는 모든 걸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저 흔들흔들, 의식을 놓아가며.
목덜미를 가볍게 깨물려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취해서 멀어지던 감각이 파드득 밀려 돌아온다. 밭은 숨이 내뱉어졌다. 견딜 수 없어 사지를 바르작거렸다. 스스로도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면서 뻗은 손이 허공을 긁다 무언가에 닿았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얼기설기 얽혔다. 아, 닿았다. 순간 텐마는 놀랄 정도로 안심했다.
일그러진 시야를 올리면 가까이에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어딘가 왜곡된 얼굴. 잔뜩 젖어버린 소리. 문득 눈이 마주친 것처럼 데프테로스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왔다. 텐마. 발음의 끝이 여리게 뭉개졌다. 텐마는 대답 대신 남자의 이름을 돌려주었다. 데프테로스. 숨과 목소리의 이음매가 어느새 공기 중에서 녹아들고 있었다. 손이 세게 쥐어졌다. 저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불꽃이 피어있었다.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숨이 콱콱 막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텐마는 사실 이 시간이 좋았다.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가끔 머나먼 곳을 바라보는 남자가, 가끔 쓸쓸한 얼굴을 하는 남자가, 온전히 저만을 바라보고 저만을 구하는데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치졸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래도. 욕심이 납처럼 가슴 깊은 곳에 가라앉았으나 치우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그러니 가지고 갈 수밖에.
“내가 없다면 살아갈 수 없게 되어버리면 좋을 텐데.”
때문에 그 말을 꺼낸 건 필연에 가까웠다. 모든 걸 끝내고 고요해야 할 시간에,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 잘도 지껄이고 있다고, 텐마는 어딘가 제삼자처럼 생각했다. 반쯤 녹아버린 머리는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남자의 뒷모습을 본 순간 이미 견딜 수 없게 되어버렸었다.
돌아본 남자의 눈동자가 감정으로 일렁인다. 그건 무슨 뜻이지. 문자 그대로의 의미인데. 자연스러움을 가장해 푸스스 미소를 흘린다. 돌연한 말에도 데프테로스는 어이없어하지 않았다. 허나 담담하지도 않았다. 아, 도망치고 있구나. 계시에 가까운 갑작스러움으로 텐마는 상대의 행동을 깨달았다.
데프테로스의 행동이 옳았다. 텐마는 제 욕심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만 바라고 있으니까. 설령 그가 자신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게 되더라도, 그 역은 절대로 성립할 일이 없을 테니까. 그랬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텐마는 살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여신을 위해, 친구를 위해, 동료들을 위해. 이 지상의 다른 소중한 존재들을 위해. 이제 와서 새삼 포기할 수 있을 리 없다. 비록 그를 잃어버리고 커다란 절망을 껴안더라도.
그래도, 아니 그러므로 텐마는 바랐다. 이대로 계속 저 팔에 안겨, 흔들리다 보면 언젠간 포기하게 되어버릴지 모른다. 막연한 추정, 가능성이 지나치게 높은. 따라서 당연하게 텐마는 그도 자신과 같은 상태가 아니라면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전부 어린아이의 치기였다.
어른은 모든 걸 알아 얕은 입맞춤을 떨어트렸다. 텐마는 데프테로스의 목을 단단히 끌어당겼다. 먼저 혀를 얽은 건 그였나 자신이었나. 푸슬푸슬 웃음이 튀어나왔다. 어쩐지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었다. 소리로 나오지는 않았다. 얼핏 데프테로스가 웃은 것도 같았다.
혀끝이 달고도 썼다.
D.
“내가 없다면 살아갈 수 없게 되어버리면 좋을 텐데.”
갑자기 들려온 말에 데프테로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벌써 잠들었다고 생각했던 소년이 말간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노을빛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번진다. 물기가 어린 건 아니다. 그저 별처럼 반짝이고 있을 뿐이다. 순간 호흡이 끊어졌다. 단어 하나하나가 뇌리에 틀어박혔다.
“……그건 무슨 뜻이지.”
“문자 그대로의 의미인데?”
평정을 가장하면 얄팍한 수를 알아챈 것처럼 텐마가 히죽 웃는다. 평소에는 제 나잇대 소년처럼 웃는 주제에 텐마는 이따금 이상하게 웃곤 했다. 집착이라기엔 너무 산뜻하고 기쁨이라기엔 너무 일그러진. 데프테로스는 여태껏 이 미소를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마 평생이 걸려도 찾지 못하리라. 그래도 좋았다. 소년의 비틀림이, 일종의 특별이 자신에게만 향하면 좋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건 언제였던가.
손을 뻗으면 손바닥에 텐마가 가만히 뺨을 비볐다. 한껏 높아졌던 체온은 아직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은 채다. 엄지로 눈가를 쓸자 기묘한 열감이 남았다. 뜨겁고 축축하고. 욕망은 너무나도 쉽게 몸을 좀먹었다. 애초에 욕심이 너무 컸다. 제가 소년에게 향하는 욕심이, 소년이 제게 향하는 욕심이.
몸을 구부렸다. 바특 얼굴을 가져다 댔다. 훅, 호흡하는 것처럼 입술이 닿았다. 숨결이 섭슬렸다. 가볍게 시작한 입맞춤이 깊어지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흐린 시야 속에서 텐마가 눈을 가늘게 휘었다. 혀끝이 소리가 되지 않는 단어를 짧게 속삭였다. 의식도 하기 전에 웃음이 나왔다. 답은 여전히 가슴 속에 잠들어 있었다.
자신이 대답을 회피하고 있단 걸 데프테로스는 자각했다. 분명 텐마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소년은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어쩌면 재촉할 수 없던 것일까. 기실 아까의 말은 요청이라기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웠기에. 바라면서도 두려워하여,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어서. 억누르고 억누르다 간신히 튀어나온 진실의 한 조각이라서. 아아, 얼마나 어리석은지. 왜냐하면─
‘네가 없다면 살아갈 수 없는 생명이라니.’
이미 그렇게 되어있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 살과 피가, 숨이, 기쁨과 슬픔이, 심지어 욕심마저도 텐마의 존재 위에서만 성립하고 있는데. 자신의 삶이, 제겐 전혀 의미가 없던 것이 오롯이 한 존재에 의해 뒤집혔는데. 네가 거의 모든 것의 처음이었는데. 이제 와서 너 없이 살 수 있을 리가 있을까. 누구도 그리 말하지 않을 것이다. 제가 그리 말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너만이 전부다.
그럼에도 소년은 이토록 무지했다. 제가 바라는 게 이미 품 안에 있음을 몰랐다. 그 사실이 사랑스럽고, 안타까워서. 데프테로스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사실을 숨기고 답이 태어날 순간을 지연시켰다. 어리석은 유예. 매번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서글프지만 언젠가 찾아올 새벽을 기다리며, 이윽고 사랑하는 존재가 자신과 같은 곳으로 떨어질 때. 그제야 데프테로스는 진심을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설령 그때에 소년이 자신을 뒤따라오지 않더라도. 사실은 바라지 않으면서, 네가 너답게 나아가는 것을 소망하며.
다만 그럴 만큼 사랑해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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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미포 2414자.
음울음울과 어떤 감성을 가득 담은 글. 변명하자면 처음에 뭔가 떠올랐을 때 이런 글이 될줄은 저도 전혀 몰랐습니다.....
여담으로 최근 히로아카 보고 있어요. 토도데쿠(토도이즈)가 제 취향을 너무 세게 치고 지나갔어........orz 제가 평소에 너무 좋아하는 커플의 전형이라 저는 파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