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뼈가 도드라진 마른 얼굴, 날카로운 눈매, 이마 위로 흘러내린 새카만 머리카락, 눈동자는 질투를 상징하는 녹색. 거기에 전신을 감싼 의복마저 검정으로 맞춘 남자를 보며 코난은 참지 못하고 푸념을 흘렸다.
“아카이 씨, 제발 그 모습 좀 어떻게 해줘…….”
As You Like it
“……그러니까, 내 모습이 수상쩍다고?”
상황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말에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면 아카이가 더더욱 신묘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표정이 빈약한 아카이에게 있어 드문 모습이다. 원래대로라면 이 모습을 실컷 감상할 텐데, 슬프게도 그럴 여유가 없다. 대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코난은 아카이에게 자신의 주장을 열심히 피력했다.
“그래! 인간 같지 않다고 말해야 할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아카이 씨가 악마라고 어딘가 써 붙이고 다니는 모습이라고!”
“어째서? 제대로 인간의 형상을 취하고 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아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박한다. 허나 코난은 도저히 남자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확실히 구조적인 면만 봤을 때 아카이 슈이치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뿔이나 꼬리도 없고, 날개 같은 것도 달려있지 않다. 그렇다고 송곳니가 뾰족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조형적으로 따지고 보면 인간 중에서도 상당히 준수한 편일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가 두르고 있는 분위기가 문제였다. 아카이에게서는 언제나 위험한 냄새가 났다. 어딘가 수상쩍고, 그럼에도 달콤하면서 유혹적이고, 어쩔 수 없는 타락의 냄새가.
시대가 달랐더라면 코난도 그리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만 험상궂게 생겨도 교회에 끌려가 심판받을지도 세상이다. 상대가 아카이 같은 남자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저번에 어떤 마을에서 교회에 통보된 적도 있다.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아카이는 진짜 악마였으므로 진심으로 위험했다. 아카이가 아니라 교회가.
안 좋은 과거를 떠올리고 코난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문답 무용으로 끌고 가려는 교회도 교회지만 걸어온 싸움을 피하지 않는 아카이도 아카이였다. 정말! 안 그래도 마녀라 조심해야 하는 몸인데! 덕분에 당시, 코난은 난생처음으로 하이바라에게서 위장약을 받아먹는 경험을 해야 했다.
사실 이 일에 있어 제일 좋은 대책은 아카이가 모습을 감추는 거였지만 어째서인지 그건 본인이 거절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렇게 해달라고 한번 요청한 이후론 더 찰싹 붙어오고 있는 중이다. 이상하다. 분명 계약에는 하루 종일, 24시간 동안 따라다닌다는 소린 없었는데.
여하튼, 두 번 다시 교회와 얽히는 일이 생기는 건 사양이다. 때문에 코난은 필사적으로 아카이를 설득했다. 다행히 아카이는 나름 진지하게 코난의 말을 들어주었다. 악마가 인간의 감각을 이해하는 건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귀찮은 일에 얽히기 싫은 건 종족을 불문하고 다 똑같은 모양이다.
“어쨌든 무해하게 보이면 된다는 건가?”
“응! 해줄 거야?”
기대를 한껏 담아 묻자 아카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코난은 희미한 위화감을 느꼈다. 뭘까. 아직 잠에 취한 머리로 주변을 둘러봐도 딱히 변한 건 없었다. 낡은 침대, 조용하게 흔들리는 커튼, 책이 빽빽이 꽂혀있는 책장, 어지러운 책상, 그리고─ 아.
아카이가 없다.
인간이 아니니 잠을 잘 필요가 없다고 말했던 남자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항상 코난의 곁에서 밤을 지새웠다.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까, 라며 변명하듯, 그럼에도 마치 코난을 지키는 것처럼.
‘……어디 간 걸까.’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보였던 얼굴이 없으니까 허전했다. 어느새 아카이가 있는 아침에 익숙해져 버린 걸까.
아무리 그래도 멀리 나가진 않았을 거라 코난은 일단 방을 나섰다. 크지도 않은 집이니 잠깐 둘러보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디 밖에 나갔다면 어쩔 수 없지만. 다행히 나름대로 절박했던 마음이 통한 것인지 코난은 바로 부엌에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그 사람이 아카이는 아니었지만.
“어?”
무심코 목소리가 샌다. 거기에 반응해 남자가 천천히 돌아보았다. 안경을 쓴,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한 모습. 서로 시선이 마주친 순간 남자가 온화하게 웃었다. 위화감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벌써 일어났나요, 코난 군?”
“어, 응…….”
“아침이 곧 완성되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응…….”
말할 기회도 주지 않는 싹싹함에 멍청하게 대답하던 코난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정체도 모를 상대에게 이런 반응이라니. 만약 아카이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한참동안이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할 게 틀림없다.
허나 그리 생각하면서도 코난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괴상한 기시감이 행동을 막았다.
“코난 군?”
움직이지 않는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남자가 가까이 다가와 시선을 맞췄다. 가느다란 눈동자가 찰칵 열린다. 굉장히 익숙하고 아름다운 녹색.
“……아카이 씨?”
설마, 하는 심정으로 입을 열자 남자가 다시금 웃었다. 아까와는 전혀 성질이 다른 미소로.
“그래.”
어느새 목소리까지 바뀌었다. 이게 도대체 뭐람.
“……아카이 씨. 왜 그런 모습을 하고 있어?”
“음? 내 모습이 수상하다고 어떻게 해달라고 한 건 아가지만. 아니면 혹시 이 모습도 어딘가 이상한 건가?”
“그건 아닌데…….”
“그럼 문제없겠지.”
웬일인지 아카이는 매우 기분 좋아 보였다. 그것도 모습을 바꾸고 있는 상황 때문에 기분이 좋은 게 아니라 이걸로 코난을 놀려먹을 수 있으니 기분이 좋은 것처럼 보였다. 이 남자가 진짜. 제일 열 받는 건 그런 기색을 전혀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 점이었지만.
“그래. 하는 김에 이름까지 바꾸지. ‘오키야 스바루’면 되겠군.”
이쪽의 말은 듣지 않고 남자가 일어선다. 동시에 달칵, 스위치가 켜지듯 아카이 슈이치는 오키야 스바루가 되었다.
“자아, 그럼 코난 군. 아침을 먹을까요?”
“………….”
글렀다. 이래서야 무슨 말을 해도 들어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직감하며 코난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은 포기하는 게 제일 빠른 해결책이기도 한 법이다. 왜,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도 말하지 않았던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응! 스바루 씨가 만든 아침 기대되네!”
반짝반짝한 아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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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미포 2327자, 조각
문득 생각난 거. 사실 교회의 높은 분인 후루야를 코난이 줍는 것까지 생각했었는데..... 기력이 없어서 그만두기로 했습니다◐_◐ 요샌 안 힘든 게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