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렇게 외치며 달려오는 딸의 모습이 평소와 달라 데프테로스는 무심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흰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옷 전체에 레이스와 프릴을 아낌없이 쓰고 있고, 등 뒤에는 크고 푸른 리본이 달려있었다. 작은 머리 장식과 반질반질한 에나멜 구두는 틀림없이 옷과 갖춤이다. 아이가 꺄꺄 웃을 때마다 리본 끝자락이 날개처럼 펄럭였다. 이건 도대체.
물론 데프테로스가 아이의 모습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이가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는 데 불만을 가질 부모가 어디 있을까. 오히려 귀여워 죽을 것 같다. 살짝 속내를 드러내자면 매일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다만 약간 의문이 있을 뿐이다.
원래 앤시는 이런 종류의 옷을 싫어하지 않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팔랑팔랑 예쁜 옷은 좋아하는 데 불편한 건 싫어했다. 하나를 얻기 위해선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잔혹한 현실의 법칙이 이런 어린아이에게까지 적용되는 것이다. 결국 아이가 택한 것은 외형보다는 편안함이었다. 데프테로스와 텐마도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서 굳이 화려한 옷을 입히지 않았다. 사실 그딴 건 안 입혀도 귀여우니까 전혀 문제가 없다.
여기서 문제는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그렇다면 이 옷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일단 데프테로스는 버릇대로 다리에 달라 붙어오는 아이를 안아 올렸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화려하다. 잘도 이런 걸 입고 뛰어다녔구나 싶다. 동시에 의문은 더더욱 늘어났다. 아무리 봐도 텐마가 사 줄만한 옷이 아닌데. 어디서, 라고 짧게 묻자 금방 그 뜻을 알아채고 아이가 말랑하게 웃었다.
“삼촌이 줬어!”
아, 과연. 데프테로스는 완벽하게 납득했다.
아스프로스의 조카 사랑은 이제 와서 말할 것도 없었다. 사랑하는 아이의 의견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우선하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뭐, 일단 그 욕심이 위험한 쪽으로 나아가지 않으니 괜찮을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텐마는?”
언제까지고 모습을 보이지 않는 텐마에 데프테로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앤시를 두고 어디 갔을 리는 없으니 집에 있는 건 틀림없는데. 설마 자신이 온 것도 알아채지 못할 리도 없고. 내심 초조해하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앤시가 눈을 깜빡였다.
“응~ 엄마는 방에서 옷 정리.”
“옷 정리?”
새삼스럽게, 이런 시기에? 라는 의문은 그대로 앤시를 안고 방에 들어선 순간 완벽히 해소되었다.
자신을 알아채고 텐마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깐 붙었던 시선이 곧 떨어진다. 아무래도 마중보다 하던 일을 우선시하기로 한 것 같다. 그야 어쩔 수 없다. 빨리 일을 끝내지 않으면 오늘 안에 잘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상황이었으니까.
어찌 된 일인지 그리 작지 않은 방안에 어린아이의 옷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파랑, 분홍, 노랑, 비취. 색은 다르지만 전부 지금 앤시가 입고 있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옷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액세서리와 구두도 빠지지 않은 것 같다. 앤시는 금방 자랄 텐데 이건 지나친 낭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누가 이런 사태를 일으켰는지는 물어볼 것도 없었다.
“……아스프로스.”
데프테로스는 절제를 모르는 형의 이름을 부르면서 탄식했다. 아니, 진짜, 도대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카를 귀여워하는 건 알겠는데 이건 심하잖아. 뭔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위험하다. 이제 와서이긴 했지만 데프테로스는 아스프로스를 신고하지 않아도 괜찮을지 진심으로 고민했다. 물론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렇게 고민하는 아빠의 속도 모르고 앤시가 귀엽게 웃으며 목덜미에 달라 붙어왔다. 천진한 미소가 가슴을 따끔따끔 찔렀다.
“저기, 아빠! 삼촌이 엄마 옷도 같이 사줬어!”
“……”
“나랑 한 쌍이래!”
“………….”
아, 그건 좀 보고 싶을지도.
동생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는 형은 뒷수습까지 완벽했다.
2.
어깨에 걸린 온기가 따스하다. 그 위로 창문을 통해 한낮의 햇살이 뛰어들고 있었다. 빛이 황금색으로 반짝반짝 부서진다. 마치 미세한 가루가 뿌려지고 있는 것처럼.
이럴 때마다 데프테로스는 문득,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리는 것처럼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모른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고, 어느 순간 잊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다만 마음만이 확실하게 거기 있었다. 아주 조용하게, 아주 평온하게, 아주 선명하게.
문득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파닥파닥 뛰어오는 소리는 이미 익숙해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건 자신의 발소리이기도 했으니까.
곧 문틈으로 아이가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조그만 입술이 웃는 것처럼 커다랗게 벌어진다. 그 모습을 보고 데프테로스는 검지를 세워 입술 앞에 가져다 댔다. 쉿. 조용히 숨을 죽이면 아이가 화들짝 놀라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천진한 모습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흐른다.
아이가 살금살금 이쪽으로 걸어온다. 물론 표현만 살금살금이다. 어떻게든 소리를 죽이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인지 행동이 부자연스럽게 크고 낭비가 심하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므로 딴죽은 걸지 않는다. 라고 할까, 오히려 흐뭇하다.
빤히 지켜보는 동안 아이가 소파 위로 올라왔다. 아직까지 입을 막고 있던 아이는 그제야 숨을 터트리고 시선을 왕복했다. 이쪽으로 한 번, 제 어깨에 기대어 자고 있는 텐마에게로 한 번. 데프테로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거기에 탄력받은 듯 아이의 행동이 막힘없이 흐른다.
단풍잎 같은 손이 텐마의 배 위로 살짝 얹혔다. 완만하게 부풀어 오른 배는 아직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있을 리 없는 무언가를 느끼는 것 같았다. 문득 아이의 입술이 조그만 목소리를 흘렸다. 동생. 이쪽으로 시선이 흘러오고 같은 말이 반복된다. 동생. 빛 속에서 아이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다들 아이의 눈동자가 저와 같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데프테로스는 이런 색을 몰랐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따스하게 빛나는 색을.
그저 이것이 행복인 것만을 안다.
데프테로스는 딸의 목소리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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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따로 카테고리를 파야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뭔가 이 설정으로 더 쓰고 싶은 게 있었는 데 잊어버렸네요;;; 아직 둘째 설정은 제대로 잡힌 게 없는 데 그쪽도 언젠간 써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