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코난은 곧잘 감기에 걸리곤 했다. 본인은 그다지 의식하지 못했지만 기침만 하면 주변에서 또? 라는 반응이 돌아왔으니 그럴 것이다. 쿠도 신이치였을 때는 감기에 걸리는 일이 드물었으므로 APTX4869의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그 말을 했더니 하이바라가 ‘자기 몸은 생각하지도 않고 매번 무리만 하니 자업자득이 아닐까?’ 하고 야유했지만 그건 못 들은 거로 하자.
어쨌든 에도가와 코난은 감기와 인연이 많았다. 라고 하지만 설마─ 자신이 감기에 걸린 오키야 스바루를 간호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변장하고 있기 때문에 남자의 안색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내뱉는 호흡이 거칠다. 슬쩍 얼굴 외에 다른 피부에 접해보면 체온도 높다. 과연. 운신을 못 할 정도로 심각하진 않은 것 같지만 그렇다고 간과할 정도도 아닌 것 같다. 도대체 이런 몸으로 뭘 할 수 있다고. 코난은 간신히 침대에 눕혀놓은 스바루를 째릿 째려보았다.
“어째서 빨리 말해주지 않았어?”
“별로 대단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신세 지고 있는 몸에 민폐까지 끼치면 죄송한 걸요.”
반쯤은 화풀이였음에도 정중한 대답이 돌아온다. 이런 상태에서도 위장을 무너트리지 않는 것은 본받을 만한 태도지만 코난은 내심 불만을 품었다.
스바루는 언제나 자신이 그에게 의지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애원하고, 호소하고, 애지중지하지 못해 안달하고, 자신을 어리광쟁이로 만들어버린다. 그런 남자의 행동이 어색하지만, 동시에 내심 즐기고 있는 자신을 코난은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 역(逆)도 이루어져야 할 것 아닌가.
물론 스바루가 보기에 자신은 어린애일 뿐이란 건 안다. 허나 이성과 감성은 별개라 이런 상황에서는 낙담밖에 느끼지 못한다. 설령 이것이 어린 소년의 이기심일 뿐일지라도.
“그런 몸으로 무리했다가 감기가 악화하면 그거야말로 민폐야.”
과연 여기에는 반박할 수 없었는지 스바루가 쓴웃음을 띄운다. 코난은 얄팍한 승리감을 만끽하며 코끝으로 웃고 이불을 스바루의 목까지 끌어올려 주었다. 남자의 쓴웃음이 더욱 깊어진다.
“어쨌든 뭔가 먹을 걸 가져올 테니까 얌전히 누워있어. 몰래 일어나면 한동안은 얼굴도 안 볼 테니까!”
마지막 말은 덧붙이지 않는 게 좋았을까. 약간 후회하며 코난은 대답도 듣지 않고 재빨리 방을 빠져나갔다.
마침 점심때였기에 죽을 만들기로 했다. 물론 만든다고 해도 편의점에서 사 온 인스턴트식품을 데울 뿐이다. 자신은 요리를 하지 못하니 이것만은 양해해 줬으면 좋겠다. 최근 인스턴트식품은 질이 높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편의점에 간 김에 스포츠 드링크와 오렌지도 사 왔으니 이건 후식으로 하자.
요리는 전혀 번거롭지 않았다. 전자레인지에 죽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끝. 얼마 안 있어 전자레인지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요리가 끝났음을 알렸다. 그것을 그대로 접시에 옮겨 담는다. 그런다고 특별히 내용물이나 맛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 단순한 자기만족이다. 조금 생색내고 싶은 기분이 없진 않다. 마지막으로 수저까지 챙겨 전부 쟁반 위에 올렸다.
어린 신체에는 다소 버거운 무게의 쟁반을 들고 스바루가 있을 방으로 향했다. 방문은 아주 약간의 틈을 남기고 닫혀있었다. 두 손을 쓸 수 없으니 몸으로 문을 연다. 끼익거리는 경첩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원래 이쯤에서 스바루의 목소리가 들려와야 하는데. 이상하게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혹시 그사이에 어디 나가기라도 한 걸까. 의아해하며 침대를 보면 스바루는 여전히 그곳에 누워있었다.
코난은 사이드 테이블에 쟁반을 올려놓고 스바루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남자는 안경을 걸친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살짝 열린 입술에서 규칙적인 숨이 새어 나온다. 이렇게 가까이 왔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걸 보니 진짜로 잠이 든 것 같다. 다행이다. 코난은 약하게 안도의 한숨을 뱉어냈다.
그런데 어쩔까. 여기서 스바루를 깨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죽이야 다시 데우면 된다지만 계속 배를 곯은 채로 자는 건 어떨까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곤히 잘 자고 있는 사람─그것도 아픈 사람─을 깨우는 것도 미안하다.
고민하며 계속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으면 돌연 스바루가 눈꺼풀을 열었다. 가늘게 뜬 눈동자가 이쪽으로 시선을 향한다. 매우 깨끗하고 예쁜 녹색.
“……코난 군.”
“아, 미안! 깨웠어? 더 자도 돼. 아니면 죽 먹을래?”
놀라서 허둥지둥 말을 던지자 스바루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코난은 무심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면 물?”
“코난 군.”
“……응?”
자세한 것은 말하지 않고 스바루가 한쪽 이불자락을 들어 올렸다. 그제야 코난은 남자의 소망을 눈치챘다.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이렇게나 선명하게 욕심을 드러내고 있는데.
스바루의 상냥함을 받아들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스바루의 어리광이 싫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솔직히 긍정하는 건 거부감이 들어 코난은 괜히 툴툴댔다.
“……감기 옮으면 어떡해?”
“그때는 제가 코난 군을 간호할 테니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표정으로 스바루가 부드럽게 웃는다. 결국 코난은 한숨 하나로 항복을 나타냈다.
“내가 감기 걸리면 심부름 잔뜩 시킬 테니까.”
“그건 기대되네요.”
얌전히 침대 위로 올라가 스바루의 옆에 눕자 이불이 몸 위로 덮였다. 가까이 닿아있는 몸이 불필요하게 뜨겁다. 이런 상태로 잘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커다란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정오의 햇살. 배 위를 가볍게 토닥이는 손길. 몸에 딱 맞는 안락함. 너무 익숙해져 버린 담배 향기. 그 모든 것을 느끼면 어느새 까무룩 눈이 감기고 있었다. 잠에 떨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머리 위에 짧은 키스가 떨어져 내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