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Epi.2 소년과 부엌의 요정 上
Boy and Brownie
고풍스러운 양식의 집 앞에서 텐마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집이라기보다는 저택이라 불러야 옳을지도 모른다. 자신과 도코가 살고 있는 곳처럼 오래된 집이란 건 분명했다. 하지만 공통점은 그것뿐이다. 낡기만 했을 뿐인 저희 집과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손질이 잘 되어있고 깔끔하다. 외양이나 구조물로 화려하진 않지만 제법 공을 들인 것으로 보였다. 그걸 보고 감탄보다 비싸겠단 생각이 먼저 드는 걸 보니 자신도 의외로 속물인 모양이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것은 그 크기였다. 저희 집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성과 초가집이랄까. 솔직히 말해 질려서 들어가고 싶지 않을 정도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텐마는 떨떠름한 마음을 삼키며 초인종을 눌렀다. 정확히 3초 후 문이 벌컥 열렸다.
“텐마!!!”
“컥?!”
커다란 강아지, 아니 커다란 고양이 한 마리가 덮쳐들었다. 당연히 제대로 방비도 못 하고 있던 텐마는 그대로 뒤로 넘어져 레굴루스와 한 덩어리가 되어 굴렀다.
아팠다. 진짜 아팠다. 레굴루스를 흠씬 두들겨 패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
허나 같은 상황임에도 레굴루스는 아픔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오히려 싱글벙글 웃으며 자신을 깐 채 내려다보고 있다. 입가에 걸린 미소가 심히 해맑다. 덕분에 텐마는 두 배로 울컥했다. 이 망할 고양이가!!
그때,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렸다. 레굴루스의 어깨너머로 보니 시지포스다. 똑같이 생긴 얼굴이지만 이쪽은 뭐라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도 못 알아채고 레굴루스가 천진하게 외친다.
“시지포스! 텐마가 왔어!!”
“……아, 그래. 일단 비켜주는 게 좋지 않을까, 레굴루스.”
레굴루스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얌전히 텐마 위에서 비켰다. 곧 뒤이어 커다란 손이 뻗어왔다.
“텐마, 괜찮은가?”
“……안 괜찮아.”
시지포스의 손을 잡고 일어서며 텐마는 부러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러자 시지포스의 얼굴에서 쓴웃음이 깊어진다.
“미안하다. 아무래도 또래를 만난 적이 거의 없다 보니 레굴루스도 들떴던 모양이야.”
“………….”
텐마는 쓴 것을 잔뜩 씹은 듯한 얼굴로 대답을 대신했다. 여전히 화는 나는데 저런 식으로 온화하게 말하니 뭐라 대꾸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런 마음을 알아챘는지 시지포스가 말을 돌렸다.
“뭐, 일단 들어갈까.”
“시지포스!! 텐마!! 빨리 와!!!”
언제 저기로 갔는지 레굴루스는 어느새 집안에서 재촉하고 있었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다. 참 죽이 잘 맞는 숙질간일세. 덕분에 화낼 기운도 사라져 버렸다. 한숨을 내쉬자 시지포스가 등을 밀며 자아, 하고 재촉한다. 텐마는 떨떠름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둘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웅장한 외관과 달리 안은 굉장히 가정적으로 꾸며져 있었다.─물론 넓이는 무시할 수 없지만─ 거실 한쪽에는 커다란 테라스가 있어 그곳으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흰빛에 감싸인 공간. 이곳이 마법사의 거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왠지 신기해서 슬쩍슬쩍 구경하고 있던 와중 시지포스가 텐마를 불렀다. 그쪽으로 가보니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아무래도 지하실까지 있는 모양이다. 도대체 얼마나 큰 집이냐며 텐마는 남몰래 혀를 내둘렀다.
계단을 내려가는 순서는 시지포스, 텐마, 레굴루스 순이었다. 솔직히 레굴루스는 왜 따라오나 싶었지만 일단 내버려 두기로 했다.
조용히 걷던 도중 시지포스가 입을 열었다.
“텐마, 미리 말해두는데 너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지는 않을 거야.”
“엥??”
순간 텐마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다짜고짜 제자가 되라며 반강제로 승낙하게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뭐? 그런 심정을 담아 텐마는 시지포스를 힘껏 노려봐 주었다. 그러나 계단을 내려가는 남자의 뒷모습은 흔들림이 없었다. 담담하게 뒷말이 이어졌다.
“내 마법은 좀 특수한 경우라서, 기초 정도는 닦아줄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가르쳐줘도 사용할 수 없거든.”
다만, 하고 시지포스가 덧붙였다. 그 말과 동시에 아래에 도착했다.
어두컴컴한 공간에서도 선명한, 하얗게 페인트칠이 된 문이 있다. 그 문을 열기 전에 시지포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스승의 얼굴에는 부드러우면서도 조금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끼익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문이 움직였다.
“단순한 지식이라면 제대로 가르쳐 줄 수 있어.”
문을 열자 그곳의 책의 나라였습니다.
지상처럼 넓은 공간이었다. 아니, 어쩌면 위보다 더 넓을지도 모른다. 어딘가 광원이 있는지 어슴푸레한 빛이 비치고 있었다. 그리 환하지는 않지만 뭐가 있는지 정도는 대충 알아볼 수 있었다.
안에 늘어서 있는 것은 천장에 닿을 듯 커다란 책장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늘어서 있고, 각각의 책장에는 빠진 곳 하나 없이 책이 빼곡히 꽂혀있었다. 그야말로 하나의 도서관이다.
“이거 전부 당신이……?”
마법사로서 살아가다 보면 연구자료─대개 장서─를 모으게 되는 건 필연적이다. 허나 아무리 봐도 이건 일반적인 양이 아니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대대로 마법사직을 이어가는 가문 정도가 아니라면 이 정도 스케일이 나오긴 힘들 것이다.
그런 의문을 함축해 묻자 시지포스가 일순 쓴 표정을 띄웠다.
“뭐, 대개는 어머니께 물려받은 거야.”
“어머니……?”
어머니란 말에 가슴에서 뭔가 쿡 걸렸다. 어라, 왜? 허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그 느낌은 금방 사라졌다. 영 석연치 않은 기분이라 텐마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역시나 걸리는 것은 없다. 그래서 더 찝찝함이 남는다.
텐마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텐마를 눈치채지 못하고 시지포스가 가까운 책장 쪽으로 걸어간다.
“어쨌든, 텐마.”
“어? 응?”
“여기 있는 것 정도는 다 읽을 수 있지?”
“………………네?”
익스큐즈 미?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텐마는 시지포스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아니, 정확히는 농담이길 바랐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 눈은 진심이다. 심지어 거절한다면 억지로라도 읽게 만들겠다는 굳은 의지마저 느껴진다. 석연치 않은 기분 같은 건 이미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무심코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텐마는 얼마 못 가 뭔가에 부딪혔다. 돌아보니 레굴루스다. 소년이 어울리지 않게 시선을 피한다.
“……미안, 텐마.”
“……설마, 이것 때문에 따라온 거야?!”
텐마는 꽥 비명을 내질렀다. 물론 부질없는 비명이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사이 레굴루스가 지하서고 안으로 텐마를 집어넣었다. 곧바로 시지포스가 한 아름 책을 안겨준다. 그러면서 건넨 미소가 심히 상큼하다.
“일단은 이것부터.”
모든 일을 끝마친 스승과 그의 조카는 텐마를 그곳에 처박아 놓은 채 유유히 인사했다.
“자, 그럼─”
“힘내, 텐마!!”
텅─ 공허한 소리를 남기며 문이 닫힌다. 잠시 발걸음 소리가 들렸지만 그것도 곧 사라졌다. 날카로운 정적이 내려앉는다. 텐마는 멍하니 품 안의 책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고, 천장을 올려다봤다가─ 절규했다.
“젠장!!! 이건 아니잖아!!!”
그리고 정확히 3시간 후, 텐마는 반송장 상태가 되어 지하실에서 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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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편이 짧을 것 같지만 이대로 두면 언제나처럼 언제 올릴지 모르겠어서 일단 짧게나마. 소제목은 브라우니인데 정작 브라우니가 안 나오네요;;; 끝에만 조금 나옵니다. 사실 엄청 짧게 쓸 계획이었는데 이것도 길어진 것....<< 다음 편은 여전히 기약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