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5 두 사람의 거리추정
거의 집무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있는 오랜 전우戰友─사가─와는 달리 자신의 상황과 처지와 전략과 협박 등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인마궁에서 늘어지게 쉬고 있던 아이오로스는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고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성전의 뒤처리는 제가 크게 관여되지 않았단 이유로 나 몰라라 하고 있지만 아직 세인트의 본분마저 잊지는 않았다.
허나 그럼에도 그다지 긴장하지 않는 것은 성전이 모두 끝나고 삼계三界 사이에 협정이 맺어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저 발걸음 소리가 최근에 매우 익숙해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이오로스의 생각을 뒷받침하듯 곧 익숙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나 사라다. 그것도
커다란 책더미를 든 채 누가 듣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투덜거림을 내뱉고 있다. 아이오로스는 웃음을 삼키며 소녀라고도 여인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상대─나이로 따지면 여인이지만 몸집이 너무 작아 소녀 같기에─를 불렀다.
“사라.”
짧게 부르자 사라의 발걸음이 딱 멈춰 선다. 이쪽을 보는 다갈색 눈동자에 애매한 감정의 빛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얼핏 보면 호박琥珀 같기도 하다. 혼자 투덜거리던 걸 들켜서 당황하는 걸까. 순간이지만 아이오로스는 빈약한 표정에 비해 사라의 감정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던 이유를 이해했다. 의외로 눈으로 말하는 타입이구나, 이 아이.
별로 골리려는 마음은 없었기에 자신은 아무것도 못 들은 척 손을 살랑살랑 흔들자 그제야 사라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래도 여전히 민망한 건지 다가오는 발걸음이 어색했다. 아이오로스는 그것도 눈치채지 못한 척했다.
“여전히 수고가 많군.”
“……아니요. 제 일이니까요.”
그러면서 한숨 돌리려는 듯 사라가 책을 내려놓았다. 혹시 무거운가 싶어 아이오로스는 눈으로만 책의 수를 셌다. 총 7권.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 하지만 인마궁 아래에 있는 궁의 주인들을 아는 아이오로스에게는 심히 이상하게 느껴지는 수였다.
“누가 책을 읽은 거지?”
야유하는 의미로 들리지 않게 아이오로스는 최대한 표현을 자제했다. 허나 아무래도 그 말에 숨겨진 의미를 알아차린 듯 사라는 애매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은 아이오리아랑 미로에요. ……정말로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아이오로스는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골드 세인트는 단지 힘만 강하다고 되는 게 아니다. 육체와 함께 정신이 훌륭한 자만, 즉 지智·인仁·용勇을 갖춘 자만이 골드 크로스를 걸칠 자격을 가진다.
허나 어디든 편차가 존재하고 예외는 존재하는 법. 지인용을 전부 갖춘 자를 찾기 힘들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세인트란 족속 자체가 워낙 육체적인 면에 치우쳐져 있기 때문인지 성역 내에서는 대개 저 세 가지 기준 중 지智에 대해서는 심각한 수준만 아니면 관대하게 넘어가 주는 경향이 강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이오리아와 미로다.
물론 이 둘이 정말로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워낙 사고 구조가 단순하고 열혈이라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서 지혜를 활용할 일이 별로 없는 것뿐. 더불어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잘 못하기에 ─사가 시점에서─서류 처리에 쥐뿔만큼도 도움이 안 되는 동료 순위 1, 2위에 랭킹 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도 최근에는 여유가 생기고 여기저기서 잔소리를 듣기 때문인지 나름대로 지혜를 쌓으려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결과는 보다시피 전혀 관심도 없는 사라가 알 정도로 좋지 못하다.
13년간의 거리 때문에 그동안은 한 발짝 떨어져서 관조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태도가 잘못됐나 보다. 미로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오리아는 형으로서 제대로 교육을 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잔뜩 시달릴 누군가가 두려워할 계획을 아이오로스가 세우고 있는데 문득 경쾌하게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브론즈 세인트 형제 중 세이야와 효가가 신나게 뛰어오고 있었다.
“아이오로스! 지나갈……, 아! 사라다!!”
인사도 대충대충, 사라를 발견한 세이야가 거의 부딪히듯 달려왔다. 후배의 모습에 아이오로스는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왜 있지도 않은 강아지 꼬리가 보이는 건지. 물론 효가는 여전히 쿨했지만.
“심부름? 교황궁에 돌아가는 건가?”
짤막한 효가의 질문에 사라가 책을 들어 올리며 가볍게 대꾸했다.
“뭐어, 그렇지.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마지막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기에 아이오로스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사라의 품에서 책이 사라졌다. 엥? 하고 보니 효가가 3권, 세이야가 2권, 사이좋게 나눠 들고 있다. 제일 어린 소년의 얼굴에서 천진한 미소가 피어난다.
“도와줄게!”
“……아래에 가는 거 아니었어?”
“급한 일도 아니니까.”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효가가 말한다. 그 모습에 사라의 얼굴에도 희미한 미소가 그려지는 걸 아이오로스는 똑똑히 보았다. 이상하게 가슴이 쿡쿡 쑤셨다.
“어쨌든 고마워. 사실 무거워 죽는 줄 알았거든.”
“뭘. 여자한테 무거운 걸 들게 할 수는 없으니까!”
“세이야. 지금은 매우 고맙지만 그 말 함부로 남발하면 아웃이야.”
“어째서?!”
“아니, 이 녀석은 누나 때문에 여자에게 약한 것뿐이야.”
“아, 과연.”
“잠깐!! 의미를 모르겠다고!!!”
셋이서 정말 즐겁게 떠든다. 약간은 짓궂은 놀림마저도 전부 애정이 섞여 있는 말.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감정의 깊이. 말로는 할 수 없는 격차. 아이오로스와 그들 사이에는 분명히 메울 수 없는 구멍이 있었다. 딱히 질투가 인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 섭섭해서,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마음이 허전해서─
그 순간, 상상도 못 했던 광경에 아이오로스가 얼빠져 있는 사이 갑자기 세이야가 이쪽을 바라봤다.
“그럼 나중에 다시 올게, 아이오로스!”
“아? 아아, 그래.”
어설프게 인사하자 그걸 신호로 셋이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남매 같은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얼마 전에 동생이 흘린 말이 떠올랐다. 황당함과 아주 약간의 서운함이 담겨있던 투정. 분명 아이오리아도 이런 광경을 보고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낀 것이리라. 사라의 행동과 동생의 말과 자신의 마음, 그 모든 것이 섞여 하나의 말을 만들어 냈다.
‘……혹시 짐 들어주는 것으로 차별하는 건가?’
아이오로스는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테나를 알현하고 인마궁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복도 저편에서 고대하던 이를 발견하고 아이오로스는 오묘하게 표정을 구겼다. 반쯤은 만남을 의도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쉽게 마주치게 되니 이건 이것대로 기분이 이상하다. 그만큼 사라가 바쁘게 일하고 있다는 방증이겠지만.
걷는 속도를 높여 가까이 다가가자 사라의 모습이 더욱 뚜렷이 보였다. 오늘도 여전히 책에 압사당하기 직전인 모습이다. 오늘은 여덟 권인가. 책을 들고 있는 팔은 근육이라곤 하나 없이 매끈하니, 연약하게 보인다.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달은 자신이 한심해 아이오로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 아이오로스.”
자신을 발견한 사라가 희미하게 표정을 바꿨다. 아이오로스는 마주 인사하는 대신 사라에게 다가가 몇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그녀가 눈꺼풀을 나비처럼 깜빡거린다.
“도와줄게. 집무실에 가는 거지?”
“……네, 감사합니다.”
두 박자 늦게 대답이 나왔다. 아이오로스는 별말 않고 걷기 시작했다. 조금 뒤에야 사라도 말없이 따라왔다.
나란히 걸어가는 두 사람을 어색함이 감싸 안았다. 그를 증명하듯 두 사람 사이에는 몇 발자국의 공간이 자리했다. 아무래도 사라는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니까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어림이나마 짐작했기에 아이오로스는 자신이 먼저 말을 걸기로 했다.
“미안하다.”
느닷없는 사과에 사라가 자신을 올려다봤다. 어두운 곳에서는 검정에 더 가까운 밤색 눈동자가 깊게 침잠한다. 아이오로스는 시선을 피하며 계속 말을 이었다.
“너는 무겁다든지 힘들다든지 하는 말을 안 하니까 정말 괜찮은 줄 알았어. 아닌 줄 알았으면 진작 도와줬을 텐데.”
어제 세이야들이 책을 들어주겠다고 했을 때 사라는 무거워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물론 그거야 과장이었겠지만 무거웠다는 것만은 진심이었으리라. 아이오로스는 그제야 제가 사라에게 잘못을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혹자는 남자가 꼭 여자의 짐을 들어줘야 하는 건 아니라고, 남녀차별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오로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건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다.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도와주는 게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실제로 상대가 연약한 남성이라면 당연히 도와줬을 거고 잘 단련된 여성 세인트라면 굳이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다. 그러니 이건 제대로 배려해 주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다.
그러나 사라는 아이오로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듯 고개를 세게 내저었다.
“아니, 고작 책 드는 것 가지고 그러면 좀 민망한 데요……. 아이오로스는 아이오리아처럼 짐을 더 얹어 주는 것도 아니고 미로처럼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는 것도 아니잖아요.”
음, 설마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두 사람은 교육 확정이다. 아이오로스는 미루려고 했던 계획을 당장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건 제 일이니까요. 세이야들에겐 엄청 응석 부리곤 있었지만 사실 제가 다 하는 게 맞는 거죠.”
담담하게 사라가 말을 이었다. 별로 반론을 원치 않아하는, 단단한 말이었다. 얼핏 그림처럼 옅은 미소가 사라의 입술에 그려진다. 아이오로스는 더욱 쓴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리─골드 세인트─에게도 응석 부리란 소리야. 그야 네 입장에선 우리를 친밀하게 대하긴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그럭저럭 적응해서 잘 지내고 있다지만 따지고 보면 원래 사라가 성역에 오게 된 계기는 전부 샤카의 납치 때문이었다. 즉, 사라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들은 그녀의 동료라기보다는 납치범과 공범자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지금이야 자본주의……가 아니라 아테나에게 감화되어 여기서 일하고 있긴 하지만.
여하튼 사라는 원래 성역이나 세인트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반인이다. 상식과 관념이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다 온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많고 힘든 일도 많겠지. 언젠가는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러므로 자신들과 심정적으로 가까워지는 게 쉽지 않을 거란 건 이해한다. 이해는 해도─
아이오로스는 사라가 자신들을 좀 더 편하게 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동료라고 생각하니까.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러니 그녀도 자신들을 동료로 여겨줬으면 했다.
갑자기 사라가 우뚝 멈춰 섰다. 사라? 조그맣게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어깨를 떨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음?”
느닷없는 사과에 아이오로스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라가 사과할 만한 일은 전혀 없다. 자신들이 사과할 일이라면 고생하지 않아도 너무 쉽게, 너무 많이 떠오르지만. 정말 의미를 모르겠다. 왜 그러나 싶어 표정을 살피려고 해도 약간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연해하는 아이오로스를 내버려두고 사라는 계속 말을 이었다.
“……저는 사람을 사귀는데 서툴러서요. 아무리 좋아해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몰라서, 혹시 제가 무심코 상대에게 심한 말을 하고 폐라도 끼칠까 걱정이 돼서 표현을 잘 못 하겠어요.”
아이오로스는 훅 숨을 들이켰다. 뜻밖의 고백이다.
“아무래도 고아라서 살아남는 것만 신경 쓰다 보니 주변을 둘러보는 법을 못 배워서 그런가 봐요.”
“사라…….”
“라고 하면 좋겠지만 그냥 천성인 것 같고.”
“……………….”
방금 전의 절절한 대사는 어디 갔어. 띠꺼운 눈으로 쳐다보자 사라가 고개를 들었다. 상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밝고 부드러운 얼굴이다.
“음, 그러니까,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오해하시게 한 건 죄송하단 소리에요. 저도 모두 의지하고 있고, 친밀하게 여기고 있고, ……많이 좋아하고 있어요.”
마지막은 부끄러운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결국 아이오로스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여태까지 생각하던 게 전부 바보 같은 짓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웃어버릴 수밖에 없다.
아이오로스는 팔을 뻗어 사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밤색 머리카락은 생각보다 매끄러워 손바닥에 간지러운 감촉을 남겼다.
“그래서. 어느 정도로 친하게 여기고 있지?”
다시 걷기 시작하면서 조금 장난을 담아 묻자 사라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고는 아이오로스와의 사이를 좁혀왔다. 서로 몸이 스칠만큼 좁은 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퍽 친근할 정도로.
“다들 이 정도?”
그리고는 그보다 반 보 더 몸을 붙인다.
“므우랑 카논이랑 아이오로스는 이 정도?”
“나도?”
예상 밖의 말에 아이오로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므우야 처음부터 사라를 도와주고 감싸주는 아군이었으니 당연하고 카논도 서로 죽이 잘 맞는 것 같으니 이상할 것은 없지만 자신은 별다른 일도 없는데 그들과 같다는 걸까.
이해할 수 없어 반문하자 사라가 눈을 똑바로 마주쳐 왔다. 둥근 눈동자 속에서 반짝이는 별이 보였다.
“아이오로스는 상냥하고, 친절하고, 뭔가 로망 속의 큰오빠 같아서요. 괜히 친밀감이 느껴져요.”
오빠, 라고 사라가 다시금 중얼거린다. 동생이라고는 남자 하나밖에 없던 아이오로스에게 오빠라는 단어는 굉장히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나쁜 쪽은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간질간질한 느낌에 가까웠다.
이것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며 아이오로스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샤카는?”
사라의 행동에 급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그것도 일순이고, 사라는 곧 저 혼자 성큼성큼 걸어나가 거리를 벌리더니 아이오로스를 돌아보고 단호하게 고했다.
“이 정도에요.”
“………….”
너무하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이해가 되는 게, 전부 자업자득이려니. 마지막 남은 연민 하나로 아이오로스는 이 일만은 샤카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덤 1.
“그런데 세이야들과는 전혀 어색하지 않잖아. 그건 어떻게 된 거지?”
아이오로스의 질문에 사라는 한 점 부끄럼 없이 대답했다.
“세이야들이 너무 귀여워서 뭘 생각하기 전에 척수반사로 몸이 움직이거든요.”
짐 안 들어줘서 차별하는 것보다 더 심하지 않냐고 아이오로스는 생각했다. 그래도 일단 사라를 생각해서 어처구니없음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다. 흘끔 아이오로스를 올려다본 사라가 변명처럼 말을 덧붙였다.
“아이오로스가 아이오리아를 귀여워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과연.”
아이오로스는 완벽하게 납득했다.
덤 2.
아이오리아와 미로의 모습을 보고 사라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하루 사이에 굉장히 너덜너덜해졌네요. 아이오리아, 미로.”
너덜너덜이란 말대로 둘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다행히 심각한 상처는 아니고 전부 작은 멍이나 찰과상 정도에 불과했지만 수가 한둘이 아니니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그로테스크한 모습이다. 아니, 골드 세인트를 도대체 누가.
사라의 의문을 알아챈 것처럼 둘이 쓴웃음을 지었다. 대답해준 것은 아이오리아였다.
“형이…….”
“……아이오로스가요?”
그 상냥하고 친절한 아이오로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자 미로가 작게 코웃음 친다.
“그래 보여도 대련에 있어서는 인정사정없다고.”
대련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라고 말하려던 사라는 문득 아이오리아가 볼의 상처를 문지르며 기분 좋게 웃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조히스트? 하고 무심코 생각해버린 것은 사라의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것을 칭찬해줘야 할 것이다.
튀어나오는 탄식을 참지 못해 사라는 무심코 한숨을 포로록 내쉬었다. 이것만은 딴지를 걸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아이오리아는 왜 웃고 있나요…….”
“아, 아니. 이렇게 형에게 혼나는 것도 13년 만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뭉클해서.”
“그것도 그러네.”
이제는 미로마저 동의하며 웃는다. 정말로 즐거워 보이는 미소라 사라는 가정폭력─혹은 사내폭력─으로 아이오로스를 신고하려던 생각을 접었다.
덤 3.
“……요즘 아이오로스가 갑자기 자기를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는 데요….”
느닷없는 사라의 고민 토로에 아이오리아와 미로와 므우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서로 뭐라 말해줘야 할지 몰라서 대답을 떠 미루는 것이다. 무언의 치열한 공방 끝에 제일 먼저 항복한 사람은 사라를 제일 생각하고 있는 므우다.
“친해졌다는 증거가 아닌가요. 좋게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요, 사라.”
“그건 그렇지만…….”
조금 부담스럽단 말이에요, 라고 사라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므우는 그 기분을 알겠다는 듯 사라의 등을 토닥였다.
그때, 무언가 떠오른 것 같은 미로가 장난스럽게 손가락으로 사라를 찔렀다.
“그럼 아이오리아에게도 오빠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뜻밖의 공격에 아이오리아는 뿜었다. 허나 사라는 오히려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지만 제가 연상이잖아요?”
“……허?”
“뭐?”
“그러고 보니……”
잠시 침묵이 흐른다. 20살 연하들은 다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가 약속한 것처럼 합창했다.
“““누나?”””
“………………삼가주세요.”
정말 어울리지 않았기에 사라는 전력으로 거절하기로 했다.
어쩐지 본편보다 덤을 쓰려고 쓰고 있는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