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웅
어렸을 때 우연히 화성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개발된 도시의 사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의, 초기 화성의 모습이었다. 반절은 홍차 색 하늘, 나머지 반절은 온통 모래와 암석으로 뒤덮여 있던 황야. 그 모습은 다른 행성이라기보다는 지구 어딘가에 있을 자갈 사막처럼 보였다.
탐사선이 찍은 사진은 예술성이라곤 전혀 없었다. 무미건조하게 사실만을 그대로 전하는 자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서 어떤 아름다움을 느꼈고 꼭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단지 사막에 가고 싶은데 갈 수 없으니 비슷한 곳이라도 가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사막보다 화성에 가는 게 더 어려울 게 분명한데. 하지만 그 결심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새겨졌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릴 때의 꿈을 이루러 간다. 완전히 변해버린, 과거완 다른 별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화성에.
마치 중력이 약한 곳에 있는 것처럼 기묘한 부유감이 느껴졌다. 부드럽게 흔들리는 몸은 마치 요람에 뉘어진 아기 같다. 여기가 어디지? 한참을 생각한 끝에야 역으로 가는 차 안이라는 걸 떠올렸다. 움직이고 있다는 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자도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의식을 잠수시켰다.
가끔 인류가 왜 일부 동물처럼 겨울잠을 택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진다. 동면을 취하기 위해 가을 내내 살을 찌우는 건 싫지만 그래도 겨울잠을 자면 꽤 대단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따뜻하면 의미가 없으니까 모든 전기를 차단하겠지.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전부 사라진다. 밤이 되면 달과 별 외에는 아무런 불빛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소리도 없이 침잠하는 세계. 한밤중엔 눈이 수북이 내려 모든 것을 감춰버린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설국』의 첫 문장을 새기면 멋지겠다.
가끔 중간에 잠에서 깨는 일도 있을 것이다. 부스럭거리며 이불 밑에서 일어나 성에가 낀 창문을 보고 ‘아아, 아직 겨울이구나.’하고 아쉬움 반 설렘 반으로 중얼거리고 다시 눈을 감는다. 상상만으로 달콤하고 씁쓸한 감정이 잔뜩 밀려오는 것 같다.
“어이, 다 왔어.”
옆자리에서 K가 말을 걸어 잠에서 깼다. 가물가물한 눈으로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8시 20분이다. 열차 출발시간인 11시까지 아직 2시간 40분이나 남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렇게 일찍 와서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는 것 보다는 3, 40분 전쯤에 여유롭게 도착하는 게 더 좋다. 하지만 K는 피곤하게 밤늦게까지 운전하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내 바람을 무시했다. 데려다주는 보답으로 저녁까지 사줬으니 내 의견도 좀 들어주면 좋을 텐데 싶었지만 운전대를 잡는 건 K이므로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막 잠에서 깬 탓에 하품이 나온다. 참을 건 없었으므로 입을 크게 벌리며 하품을 했다. 예의 따윈 차리지 않는다. 그런 나를 보고 K가 혀를 찼다.
“정신 차려라.”
미안, 불가능.
한 시간만 더 자면 안 될까? 그렇게 묻기도 전에 K가 차 밖으로 나갔다. 나간 건 좋은 데 히터까지 다 끄고 나가버렸다. 이거야 원. 이래버리면 별 수 없다. 일단 밖으로 나가기 전에 기지개를 켰다. 한참동안 같은 자세로 잠들어 있던 탓에 온몸에서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난다. 어쩐지 벌써 늙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조금 우울해진다.
밖으로 나오자 놀라울 정도로 공기가 차서 잠이 확 깼다. 무심코 어깨가 움츠려들었다. K가 어디 갔나싶어서 주위를 둘러보자 저 멀리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아까 저녁 먹고 나서는 관심도 없더니 이제야 담배냐.
K가 헤비 스모커인건 아니다. 오히려 흡연자 중에서는 적게 피우는 편일 것이다.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운전을 하고난 뒤에는 꼭 담배를 피운다. 전에 어째서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단순히 버릇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버릇이라면 아무래도 좋았다. 내 옆에서 냄새를 심하게 피우는 것만 아니라면 담배 피는 것 정도야 그냥 넘어가는 것 정도야 문제가 아니다. 흡연을 해서 폐암에 걸리는 건 내가 아니라 녀석이니까.
시간이 시간인 만큼 굉장히 어두웠다. 주변에 불빛이 없어서 더욱 어둡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살짝 입술을 열자 하얀 입김이 공중에서 깨진다. 역시 춥다. 따뜻한 데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일단 차 옆에서 쪼그려 앉아 K가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기다린다.
저녁은 패스트푸드점에서 각자 햄버거 세트를 하나씩 주문해서 먹었다. 혼자 대충 식사를 때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와 이야기 하려 패스트푸드점에 온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마 학생 때가 마지막이었을 거다. 실제로 유리창에 비친 모습이 당시와 그다지 변한 게 없어 깜짝 놀랐다. 하긴 대학을 졸업한지는 고작 2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어머, 언제 이렇게 아줌마 아저씨가 되었담?’ 하고 감탄하려면 10년은 더 지나야 할 것이다.
실제로 오렌지색 조명 밑에서 K와 내가 나눈 대화도 학생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실없는 악담과 웃음을 나누는 모습은 시니컬하면서도 방관자의 위치에 서있던 어릴 때와 꼭 같았다. 소식하는 편인 내가 햄버거의 3분의 1을 떼어 K에게 준 것까지 모두.
‘그렇군, 여행이라. 나도 가고 싶은걸.’
문득 K가 중얼거렸다. 어쩐지 푸념조라 콜라를 마시면서도 나도 모르게 녀석을 빤히 봤다. 그러고 보니 K의 눈 밑이 이전보다 더 거뭇해진 느낌도 들었다.
하긴 프리랜서인 나로서는 실감이 나지 않지만 회사원들에게는 이맘때가 제일 어중간하고 바쁜 시간대일 것이다. 정월이 지나야 한숨 돌리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조금 신났었다. 그렇다면 여행지에도 막 수능을 마친 학생들 정도밖에 없을 터다. 내게는 사람이 많은 쪽보단 적은 쪽이 좋다. 시간을 얻기 위해 돈을 포기했으니 이럴 때 제대로 써주지 않으면 억울하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웃었고 그런 나를 보며 K는 질투로 얼굴을 찌푸렸다. 어쨌거나 덕분에 얘기의 궤도가 자연스럽게 여행으로 옮겨졌다.
‘화성에서만 있는 게 뭐 있지?’
‘환상 야구?’
‘아니, 그런 거 말고. 물질적인 걸로.’
‘글쎄. 어차피 다 지구에 있는 걸 가져간 거 아닌가. 그 외라고 해봐야 돌 정도?’
‘돌이 뭐냐, 돌이. 어차피 겉으로 보면 다 똑같은 거.’
‘그건 아니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의미가 있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법. 너에겐 다 똑같아도 학자들이나 일부에겐 다를 걸. 아니면 왜 운석덩어리가 몇 억씩이나 하겠어.’
K가 머리가 좋지만 사실은 바보인 점이 이런데서 다 드러났다. 내 말에 혹한 표정으로 귀를 쫑긋거리는 걸 보니 어쩐지 한심해졌다. 내버려두고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소꿉친구의 정이 있어 바보 같은 짓을 하기 전에 녀석의 꿈을 단념시켜 주었다.
‘뭐, 어차피 화성은 이주가 가능할 정도로 탐사와 개발이 끝난 곳이라 별 가치가 없겠지만.’
‘……너 일부러지?’
글쎄다. 나는 모른 척 감자튀김을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렇게 있으니 아까 저녁을 먹었던 일이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졌다. 고작 몇 시간 전의 일인데 이상한 일이다.
영화에서였나, 어디서 시간의 상대성은 심장 박동의 빠르기와 관련이 있다는 견해를 접한 적이 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내 심장은 평소보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뛰고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이 기대인지 불안인지는 나도 알지 못하지만.
“뭐하냐.”
어느새 담배를 다 핀 K가 다가와 나를 내려다봤다. 가까이 다가온 줄 모르고 있었다. 이 녀석은 어째 이상할 정도로 발소리를 내지 않는다. 딱히 할 말이 없어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자 K도 따라하듯 어깨를 으쓱였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차 트렁크에서 짐을 꺼냈다. 작은 크기의 캐리어 두 개─하나엔 옷, 다른 하나엔 책과 잡다한 물건이 들어있다─와 자주 쓰는 물건을 넣어놓은 청회색의 캐주얼한 백팩 그리고 카메라 한 개. 이게 내 짐의 전부다. 화성까지 가는 데 싸온 짐치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
캐리어 하나를 내가 끌자 다른 하나는 자연스럽게 K가 끌었다. K가 잡은 게 책이 든 캐리어라 좀 더 무겁다. 문득 평소 내가 어떻게 짐을 싸는 지 아는 K는 처음도 아닌 데 내 짐을 보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넌 옷보다 책이 더 많냐.”
“새삼스럽게 뭘. 거기 가서 잘 보일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여자가 옷차림과 화장에 신경 쓰는 건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자기만족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만 내게 그런 감성이 없다는 건 나도 K도 잘 알고 있다.
심플한 내 대답에 납득한 듯 K가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고 먼저 걸어갔다.
“하긴. 넌 여자가 아니었지.”
저걸 콱 그냥.
역 안으로 들어가자 따뜻한 공기가 뺨을 때렸다. 인공적인 히터 열기지만 덕분에 살았다. 천천히 몸이 이완된다. 노곤하니 기분 좋다. 아, 아버지. 엘리시온은 진짜 있었군요.
어중간한 시간 탓인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기실 의자에 띄엄띄엄 앉아 있는 몇 명이 전부다. 넓은 역은 정돈이 잘 되어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내원이 대기실을 가로질러 갔다. 피곤한 덕분에 상대가 미남이란 걸 인식하기까지 딱 3초가 걸렸다. 아깝다. 잘생겼지만 내 타입은 아니네.
캐리어를 끌고 제일 가까운 자리에 가서 앉았다. K도 따라와 털썩 옆에 주저앉았다. 체격이 좋기 때문인지 K가 바로 옆에 있으면 어딘가 답답하면서도 든든한 느낌이 든다. 든든함은 녀석이 내 아군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겠지만.
아, 조금 큰일이다. 다시 따뜻해진 덕분에 앉자마자 다시금 잠이 오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어느 정도의 소음이 더욱 잠을 유혹한다. 위험해. 차에서 자는 건 상관없지만 여기서 자는 건 안 되는 데.
안 자려고 눈에 힘을 줘봤지만 눈꺼풀이 계속 내려온다. 역시 중력은 위대하다. 결국 옆에 앉아있던 K를 툭툭 쳤다.
“졸리다. 커피 좀 뽑아와.”
“돈 줘라.”
“달아둬.”
지갑 꺼내기 귀찮아.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은 건지 K는 더 말하지 않고 순순히 일어났다. 이래저래 입은 거칠지만 의외로 사람 돌보는 걸 잘하는 녀석이다. 어렸을 때부터 훈련시킨 보람이 있다.
곧 K가 캔커피 두 개를 뽑아들고 돌아왔다. 차가운 탓에 캔 표면에 물방울이 맺혀 미끄럽다. 떨어트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캔을 따서 내용물을 마시자 달짝지근한 액체가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이 달콤함 때문에 나는 가끔 내가 확실히 커피를 마시는 게 맞는지 헷갈리게 된다. 하긴 어차피 커피 성분은 얼마 들어있지도 않겠지.
그래도 단 것을 먹으니까 좀 살 것 같다. 역시 단 게 최고다. 비바 스위츠! 이러니까 별 효과가 없다는 걸 알아도 캔커피를 마시는 거다. 옆에서 K도 얌전히 커피를 마셨다.
이러고 있으니 왠지 화성에 간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사실 이게 꿈일지도 모른다. 이대로 꾸벅꾸벅 졸다가 퍼뜩 눈을 뜨니 사실은 책상 앞, 그런 이야기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화성에 가기로 결심한 과정 자체가 흐리멍덩하니 더 그렇다.
사실 여행을 결심한 건 거의 충동이었다.
나는 뭔가를 하는 데 있어 반드시 시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책을 읽는 게 그렇다. 정말 읽고 싶은 책이 있고 표지가 계속 눈에 밟히는 데 정작 읽을 책을 선택할 때는 다른 책에 손이 갈 때가 많다. 그런 경우 억지로 읽고 싶은 책을 택해도 이상하게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고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반대로 저 책이다, 하고 바로 손이 가는 책이 있다. 예전부터 벼르던 책이 갑작스레 눈에 띄는 경우도 있고 새로운 책인 경우도 있고 읽으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던 책인 경우도 있다. 그 경우, 예전에는 지루하고 어쩐지 읽지 못하는 책이었더라도 이상할 정도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아마 두 경우 모두 시기의 문제였을 거다.
이번 여행으로 말하자면 ‘딱 지금이다!’ 하는 느낌이었다. 계기는 여러 가지였다. 제일 먼저는 최근 번역한 책이 화성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 그 다음에는 우연히 본 사진집에 어렸을 때 봤던 화성 사진이 찍혀 있었던 것. 마지막으론 얼마 전에 화성에 다녀온 지인이 여행 후기를 잔뜩 떠들어댄 것.
덕분에 처음에는 ‘그러고 보니 화성에 한 번 가보고 싶네.’하는 생각이 점점 ‘화성에 가볼까.’로 바뀌더니 결국 ‘화성에 가야겠다.’로 변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운명의 이끎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이미 화성에 갈 계획을 차근차근 세우고 있었다.
이쯤 되니 포기하기엔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다. 왠지 모를 오기 같은 게 생겨 결국은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더해서 근사한 저녁 한 끼로 K를 오늘 하루 운전수로 고용하는 것도 잊지 않고.
“네가 정말로 화성에 갈 줄은 몰랐다.”
갑자기 K가 말을 꺼내 나는 녀석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제 와서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K는 담담하게 계속 말을 이었다.
“너는 효율을 엄청 따지는 편이잖냐. 지금이야 화성에 갈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투입 대비 산출이 너무 적은데.”
과연. 뜬금없이 무슨 얘긴가 했더니. 괜히 웃음이 터져 나왔다.
확실히 화성에 가는 데에는 감정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이득이 될 부분이 없다. 어릴 적 간절하게 화성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추억이 퇴색됨에 따라 점점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래도 한번쯤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남아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 돈으로 가거든.”
“……쌈박하고 현실적이다 못해 속물적인 이유군.”
“갚을 거니까 상관없잖아.”
“그런 문제냐?”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K가 나를 쳐다봤다. 익숙한 일이니까 그냥 무시하고 캔커피나 마셨다. 덕분에 잠은 다 깬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니. 아버지 얘기를 하니까 생각나는 게 하나 있었다. 괜히 K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저기 가족들이 나에 대해 물어보면 얘기 좀 잘해줘.”
“……너, 설마 가족들한테 화성에 가는 거 얘기 안했냐?”
“화성에 가는 건 얘기 했어. 언제 가는지만 얘기 안했지.”
여행계획을 말할 때 어물쩍 넘겼다. 분명 아무도 눈치 못 챘을 거다. 자취는 이럴 때 편하다. 같이 살았다면 숨기는 게 불가능했겠지.
“소꿉친구한테는 얘기하면서 가족한테는 얘기 안하다니 어이가 없어서. ……왜 그랬는데?”
“신파극 찍기 싫어서.”
내 말에 K가 미묘한 표정으로 납득한다. 납득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아버지는 내가 화성에 간다는 데 반대하지는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으신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것저것 걱정하며 뭐라도 자신이 해주실 게 없는지 찾고 계셨다. 그것은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도 그렇긴 했지만 모두 주변에서 인정할 정도로 과보호가 지나쳤다.
그들의 행동이 애정에 기반 한 걱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기에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부담으로 다가온 것도 사실이었다. 딱 잘라 말하자면 애정과는 상관없이 개인주의적 성격을 가진 나에게는 지나친 참견으로 느껴져 귀찮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화성에 가는 게 뭐 대단한 거라고. 호들갑을 떨어주는 것보다 선물 사와라, 하고 깔끔하게 손 흔들어 주는 게 나한테는 더 기쁘다.
문득 뺨에 시선이 미끄러졌다.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K가 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런 표정일 땐 K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20년 넘게 이어온 인연이다. 녀석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많았다. 모르는 게 없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어렸을 때는 그랬다. 성장할수록 녀석에 대해 모르는 것은 늘어만 갔다.
어쩔 수 없다. 아이는 언젠간 어른이 된다. 어렸을 적, 우리의 세계는 상대와 가족이 전부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세계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리고 그 비대해진 세계가 중첩되는 일은 좀처럼 없다. 교집합의 범위가 자라는 속도 보다 전체 집합의 범위가 자라는 속도가 더 빠른 게 당연하다.
아니,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처음부터 녀석에 대해 아는 게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전부 알고 있다고 착각했을 뿐이고 점점 아는 부분이 늘어나면서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달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긴 전부 아무래도 좋은 일인가.
우리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K가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선물 사와라.”
“제일 싼 걸로 사올게.”
K의 손에서 캔이 와그작 우그러진다. 사실 사다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K는 도무지 포기할 줄을 모른다. 나는 바보 같은 K를 보고 비웃음 지어 주었다.
역시 이 녀석에게 배웅시키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