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사가세이]Celebrate to my beloved
“사가는 뭔가 바라는 거 없어?”
갑작스러운 소년의 물음에 허를 찔린 사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현재 사가가 있는 곳은 교황궁의 집무실이다. 본래 사가 혼자서 서류를 처리하는 일이 많은 장소지만 최근에는 세이야가 곧잘 방문하곤 해, 이곳에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이 늘었다.
물론 세이야가 방문했다고 해도 일에 바쁜 사가로서는 소년을 제대로 신경 써줄 수 없었다. 대개는 세이야가 잡무를 도우며 수다를 떨면 사가가 거기에 짤막하게 대꾸를 해줄 뿐이다. 때때로는 직무 때문에 사가가 제대로 신경을 써주지 못해, 세이야가 혼자 떠들다 가는 일도 있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땐 세이야가 사가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사가가 세이야를 귀찮다고 여긴 적은 없다. 어쨌거나 사가는 이 소년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이런 뜬금없는 질문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세이야가 이전까지 얘기하고 있던 게 자신의 형제들에 관한 것이었다면 더욱.
“갑자기 무슨 소리지?”
의미를 알 수 없어 멍청히 입을 열면 세이야가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되물어왔다.
“오늘 사가 생일이잖아?”
“아?”
소년의 지적에 사가는 그제야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얼빠진 남자의 얼굴을 보고 세이야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까먹고 있었던 거야?”
사가는 대답 대신 쓴웃음을 되돌렸다. 확실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떠들썩하게 생일을 축하할만한 나이도 아닌 데다 최근에는 밀려드는 서류 때문에 날짜감각마저 흐려진 상태였던 것이다.
남자의 웃음만으로 모든 걸 알아차렸는지 세이야가 희미하게 한숨을 내쉰다.
“사가는 진짜 워커홀릭이네.”
“……그런가.”
실제야 어쨌든 자신이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각하고 있었기에 사가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세이야가 조금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어린아이다운 표정에 사가는 무심코 피기 시작한 입술을 손으로 눌렀다. 소년이 불쾌한 감정을 품는 것을 싫지만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은 기쁘다.
물론 사가의 복잡한 속마음을 알 리가 없는 세이야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불만 어린 표정을 지우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바라는 거 없어?”
생일이니까, 라며 세이야가 대화를 원래 궤도로 되돌렸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해도 갑자기 뭔가 생각날 리가 없다. 사가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애당초 자신은 죄가 깊은 남자다. 축복 같은 걸 받을 자격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세이야는 자신을 축복해 주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사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그렇지만 고집이 센 이 소년이 그걸로 납득할 리가 없었다.
가벼운 정적이 흐른다. 그것을 무엇으로 해석했는지 세이야가 한숨처럼 중얼거린다.
“카논은 묻자마자 바로 대답하던데.”
소년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이름에 사가는 무심코 미간을 찌푸렸다.
“카논에게도 물어봤는가?”
스스로도 유치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사가는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카논 또한 생일이고, 세이야라면 상대가 누구든 아낌없이 축하를 퍼부을 것이라고 머리로는 이해한다. 이해는 하지만. 이 조그만 소년에게 연심을 품은 몸으로서는 아무래도 질투를 할 수밖에 없다. 정말 중증이다.
사가의 말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세이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지만 사가는 본심을 숨기는 데 능숙하다. 결국 아무것도 잡아낼 수 없었기에 떨떠름해 하면서도 세이야는 순순히 긍정을 표했다.
“응. 그렇지만 누가 대신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든가 하루라도 좋으니 편안히 쉬고 싶다든가 내가 해줄 수 없는 일만 말했어.”
“…….”
천진한 소년의 대답을 듣고 사가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자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서류에 파묻혀 있을 카논의 모습이 뇌리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어쩐지 동생의 비명이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 사가는 생전 처음으로 카논을 동정했다.
“사가는 정말로 바라는 거 없어?”
돌연 세이야가 얼굴을 들이밀며 답을 구해왔다. 이걸로 벌써 세 번째다. 정말 포기를 모르는 소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사가는 부드러운 얼굴로 세이야에게 웃어 보였다.
“안타깝게도 없구나.”
변하지 않는 대답에 세이야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토라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맘에 들어 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그 모습에 사가는 조금 고민했다. 역시 화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사소한 거라도 아무거나 말해버리면 좋겠지만 거짓을 말하는 건 사가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
그렇게 고심하는 사이, 세이야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 이제 됐어! 더는 사가한테 안 물을 테니까!!”
크게 외친 세이야는 거친 몸짓으로 문을 열고 집무실 밖으로 나간다.
쿵쾅거리며 걸어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보고 사가는 잠시 아연해 있었지만, 이내 정말로 화나게 해버렸다며 성대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저녁, 모든 집무를 마치고 쌍아궁에 돌아가면서 사가는 당연한 것처럼 세이야를 떠올렸다. 낮에 화를 내고 나간 소년이 한 번 더 사가를 방문하는 일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사가는 그 사실에 조금 낙담하고 말았다.
화가 나게 만들었으니 사과하고 싶었다. 하지만 주어진 직무 때문에 사가에게는 자유시간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소년이 다시 찾아와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 것이지만.
물론 세이야라면 다음에 만났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웃어줄 것이다. 원래 그런 소년이다. 씩씩하고 올곧으면서도 상냥한.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 사가는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입안에 씁쓸함이 퍼졌다.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쌍아궁에 도착해 있었던 것 같다. 조금 싸늘한 공기가 사가를 맞이한다. 그것을 깨닫고 사가는 고소를 머금었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사람이 없다는 건 의외로 차가운 것이라는 걸 최근 깨닫고 있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 세이야의 탓이다. 소년이 사람의 온기를 가르쳐 주었기에 차가움을 알았다. 어느새 사고방식마저 소년을 중심으로 바뀌고 말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미묘한 부분이다.
천천히 나아가던 사가는 자신의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안에서 평소와 다른 기척이 느껴졌다. 의아해하며 방문을 열면, 예상외의 광경이 자신을 맞이해 사가는 두 눈을 깜빡였다.
“아, 어서 와. 사가.”
“세이, 야?”
얼떨떨하게 소년의 이름을 부르자 세이야가 한 점의 티끌도 없이 밝은 얼굴로 웃는다. 남자로서는 굉장히 드문 일이었지만 사가는 도대체 어떻게 반응을 해야 좋을지 알지 못했다.
“안 그래도 더 늦으면 데리러 갈까, 하고 생각했다고.”
세이야는 그렇게 말하면서 사가의 팔을 잡고 주방 쪽으로 이끌었다. 소년의 가느다란 팔이 의외의 강한 힘으로 자신을 붙잡아, 사가는 멍청히 세이야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주방에 들어서면 테이블 위에는 식사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누가 준비해준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답이 나왔다.
때문에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대신 사가는 세이야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를 알아챈 소년이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조그만 귀를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소곤소곤 조용한 세이야의 목소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요리,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일이니까.”
거기까지 들었는데 일련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사가는 멍청하지 않다. 더는 묻지 않겠다던 세이야의 말은 아무래도 축하 같은 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대로 축하해주겠다던 뜻이었던 것 같다. 즉, 이것은 소년 나름의 축하인 것이다.
세이야가 준 소박하지만 따뜻한 선물에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속에서 흘러넘친다. 무엇보다 세이야가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신경 써주고 있다는 사실이 기뻐 어쩔 수가 없었다. 저절로 뺨이 풀렸다. 사가는 계속해서 웃어버리고 마는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곁눈질로 그것을 확인한 세이야는 조금 안도하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시선을 깨달은 것인지 사가의 푸른 눈동자가 다시 소년에게로 떨어졌다.
자신이 한 일에 내심 만족하며 세이야는 커다란 꽃이 피는 것 같은 미소를 남자에게 보냈다.
“생일 축하해, 사가!”
결국 그린 카논...◐◐
생일 축하해!